이기붕
李起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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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적대한민국
출생일1896년 12월 20일
출생지조선 충청북도 괴산
사망일1960년 4월 28일
사망지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종로구 경무대에서 총살됨(아들 이강석이 쏜 총에 사망.)
주소지대한제국 충청북도 괴산
대한제국 전라북도 전주
대한제국 한성
대한민국 서울
직업정치가
의원 선수2
정당자유당
당내 직책대표최고위원 겸 대표전임고문
경력국회의장
국방부 장관
자유당 중앙위원
前 국민회 중앙총본부 최고위원
인하공과대학교 재단 이사장
학력미국 아이오와 주립 데이버 대학교 철학과 학사
종교유교(성리학) → 개신교(감리교)[1]
부모이낙의(부), 송정현(모)
배우자박마리아
자녀이강희(딸)
이강석(장남)
이강욱(차남)

이기붕(李起鵬, 1896년 12월 20일 ~ 1960년 4월 28일)은 대한민국 제3대 국방부 장관·재선 국회의원 등을 지낸 대한민국의 정치가이다.

병약했으며 권력욕이 강한 인물로 평가한다.

4.19는 엄밀히 말하면 이승만이 아니라 부통령인 이기붕을 당선 시키기 위한 부정선거였다. 이승만은 상대방 후보가 죽어서 거의 혼자 나왔기에(단독 입후보) 그냥 당선되는 것이었고, '이때도' 한국은 법이 아직 미비해서 런닝메이트 식 선거가 아니라 미국처럼 대통령이 당선되면 당연히 부통령도 같은 런닝메이트 같은당 후보가 당선되는 게 아니라, 부통령 선거를 따로 뽑아서 대통령과 부통령이 서로 다른 당 소속 후보가 될 수도 있었다. 대통령은 국힘당 부통령은 민주당 같은 일이 그 당시 제도로는 가능했던 것이다. 이승만은 당시 사실 지금 기준으로도 고령이었기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나이였고, 대통령이 죽어서 유고시에는 부통령이 대통령권한대행이 되기에 부통령 선거가 중요했다.

부정선거를 옹호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미국의 부통령제도를 가져오면서 런닝메이트 제도를 가져 오지 않았던 것도 부정선거가 일어난 결정적 원인 중 하나가 되었다.


아들에 의해 부인과 본인까지 권총으로 사살되면서 비극적인 최후를 맡게 된다.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