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요

한국의 경제학자이다. 세부 분야는 경제사이다.

젊었을 때 좌파었으나 우파로 전향하였다.

그는 좌파 운동권 활동으로 시간을 낭비하지 않았다면 지금쯤 프랜시스 후쿠야마 같은 사람이 되었을 것이라고 한다.


유튜브 이승만TV를 운영하고 있으며, 이승만학당 교장을 맞고 있다.



약력

서울대학교 대학원 경제학과 졸업

지곡서당 수료

한신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성균관대학교 경제학부 교수

서울대학교 경제학부 교수

경제사학회장

한국고문서학회 회장

낙성대경제연구소 이사장


수상

청람상(한국경제학회, 1990)

경암학술상(경암교육문화재단, 2013)

Coghlan Prize(Australian Economic History Review, 2015)



이영훈교수의 주장과 논란

일제는 토지 수탈하지 않았다

'일제 토지 수탈론은 잘못된 신화' ytn 2004.11.20

  1. 일제가 가져 간 것은 대부분 조선 왕실이 가지고 있던 국유지 였다. 2. 조선 농민들이 무식해서 일제가 한 토지조사사업에 등록을 안해서 토지를 빼겼다는 게 교과서 주장이었는데, 농민입장에서 토지란 곧 생활수단 먹고 사는 수단 그 모든 것이었다. 신라시대 때 금석문을 봐도 상당수 내용이 토지를 놓고 갈등을 빚었을 때 그에 대한 판결문에 가까운 내용들이 많다. 조선시대에는 조상 묘자리 갖고도 송사가 끊이지를 않았다. 당장 땅이라는 게 농민들 입장에서 입에 풀칠하는 수단인데 이걸 무식해서 그냥 뺏겼다?그럼 당장 호구수단이 끊겨 굶어 죽을 판인데? 게다가 일제는 토지조사사업 과정에서 누락이 되거나 잘못된 게 있다면 나중에 정정도 해줬다. 오죽하면 지금도 일제시대 토지대장이 남아 있기에 땅 갖고 분쟁이 일어나면 이걸 기준으로 연혁을 추적할 정도다. 토지 조사사업을 할 때 그렇게 주먹구구로 한 게 아니었다.


식민지근대화론 주장

경일본 역사·공민교과서 왜곡 파동과 한승조·지만원·조갑제 같은 인사들의 극우 발언 퍼레이드 등 뒤에는 ‘식민지근대화론’이 똬리를 틀고 있다. 일제 식민지 기간 동안 착취·수탈당했다는 것은 허구이자 신화이며 외려 그 기간 동안 오늘날과 같은 경제발전과 근대화의 토대를 닦았다는 이론이다.

식민지 근대화론 발끈만 할 일인가 서울신문 2005.04.28


식민지 근대화론은 공격하기 위한 말이고, 근대화란 사실 서구화인데 일제시대 때 무수한 서구가 이식 된 건 그냥 부정 할 수 없는 팩트다.

일제시대 때 최초의 서양식 학제 최초의 대학, 최초의 공항 등등 서양의 것 중 최초로 따지면 일제시대 때가 처음이었던 게 무수하게 많다.

철도 항만 전산기업 근대식 교육등 유무형의 일제가 이식한 서구의 문물이 독립 6.25전쟁 이후에도 남았는데 이걸 부정 할 수 있나

일제 때 근대화가 이루어졌다는 건 부정 할 수 없는 팩트다. 그게 기분이 나쁘든 뭐든 간에 자본주의 맹아론 같은 게 도리어 망상이다.

일본이 서구의 개념을 번역한 한자조어인

경제 문화 사회 철학 산업 자동차 철도 방송 야구 대통령 의회 민주주의 자본주의 변호사 검사 지구 과학 전기 전자 교과서 학교 논리 등등 이거 말고도 많은데 이게 다 일본인이 서양의 개념을 번역한 화제한어다.

일본이 도래인에 의해 대륙의 문물을 받아 들였다면 한국은 일본을 통해서 서구의 개념을 받아 들였다 이걸 부정 할 수 있나



수량경제사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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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한말 맹목적 反日감정이 망국 초래

2005년 12월, 뉴라이트닷컴 인터뷰에서 조선왕조가 20세기 세계사 지도에서 지워질 수도 있었던 엄청난 비극을 발생시킨 원인은 맹목적 반일주의 때문이다.

맹목적 반일감정과 문화적 우월감이 실용주의적 외교를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또한 일본의 초대통감인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도 당초 한국 병합을 반대했었다. 일본이 1876년부터 한국을 침입할 계획을 세워 단계별로 추진해왔다.

즉 일본이 처음부터 한반도 병합의도를 분명히 했던 것처럼 이야기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하였다.

“구한말 맹목적 反日감정이 망국 초래” 이영훈 서울대교수 발언 파문 서울신문 2005.12.31


'해방 전후사의 재인식' 우파적 사관 대변 논란

2006년 2월, 객관적 사실에 기초한 한국 현대사를 표방한 ‘해방 전후사의 재인식’이란 역사책이 출간 전에 ‘뉴라이트’ 논란에 휘말렸다.

지금까지 한국현대사의 주류적 역사해석을 제공해 온 ‘해방전후사의 인식’(해전사, 1979년)을 반박한 것이어서 논란이되었다.

●“반대증거 제시가 우파적이라 할 수 있나”

이 책의 한 필자는 진보와 좌파적 역사관을 대변하는 ‘해전사’가 제시한 역사해석이나 사실에 반대되는 증거를 제시한다고 어떻게 우파적이라거나 뉴라이트적인 관점을 대변한다고 할 수 있느냐고 반문했다.

●“잘못된 역사 사실 바로잡겠다는 것”

그동안 ‘해전사’로 대표되는 주류적인 한국현대사 해석이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였고, 이런 왜곡된 사실을 토대로 파시즘적 민족주의를 주창해 왔다고 비판하고 있다.

‘해방 전후사의 재인식’ 우파적 사관 대변 논란 서울신문 2006.02.02

‘해방전후사 재인식’ 이념논쟁 가열 서울신문 2006.02.11


역사교과서 포럼 419단제 점거

2006년 11월, 4.19 헉명동지회 유족회등 회원 50여명이 포렁장에 들어와 발표자 멱살을 잡는등 난장판을 벌여 교수등 4명 부상당하였다.

언론에서는 군사정권과 유신체제를 미화하는 내용을 담은 역사 교과서 편찬이라며 논란을 키웠고 뉴라이트 계열 `교과서 포럼'이라 규정하였다.

뉴라이트 `교과서 포럼' 점거 시위로 무산 연합뉴스 2006.11.30

mbc 기자 폭행.

mbc 기자가 반일 극우로 몰려고 인터뷰를 한 것으로 보이는데, 인터뷰를 거부하였음에도 이영훈이 도보로 이동 중에도 찾아와 끈질기게 인터뷰를 요청하였다. 이영훈 교수는 인터뷰를 재차 거부하며 기자를 폭행까지 했는데,

아무리 mbc 기자가 귀찮게 해도 폭행까지 하는 건 쉴드를 치기 힘들다. 폭행까지는 가지 말고, 다르게 대응을 했어야 한다고 본다.

여러가지 일화를 볼 때 성격이 무척 다행질인 것으로 보인다.


주요 저서

《조선후기 사회경제사》(한길사, 1988)

《수량경제사로 다시 본 조선후기》(서울대학교 출판부, 2005)

《대한민국 이야기》(기파랑, 2007)

《대한민국 역사》(기파랑, 2013)

《한국경제사(1,2)》(일조각, 2016)

세종은 과연 성군인가》, 백년동안, 2018

반일종족주의》(공저), 미래사, 2019

반일 종족주의와의 투쟁》(공저), 미래사, 2020


링크

이승만학당-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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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문서

낙성대경제연구소
이승만학당
《반일 종족주의》 저자 테러 사건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