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전체주의(Totalitarismo, totalitarianism)는 국가나 집단의 전체를 개인보다도 우위에 두고, 개인은 전체의 존립과 발전을 위한 수단으로 여기는 사상이며, 극우와 권위적 극좌의 정치 성향에서 공통분모로 나타나는 성향이다.

개요

전체주의가 지배하는 사회는 독단주의가 발달되고, 회의주의가 부정된다.

전체주의는 야당을 금지하고 국가의 정책에 대한 개인의 반대를 제한하며 공공 및 사생활을 극도로 통제할 수 있는 정부 형태를 정의하는 정치 개념이다. 가장 극단적이고 완전한 형태의 권위주의라고 할 수 있다.

전체주의 국가의 정치 권력은 보통 한사람의 지도자의 통치, 국가가 통제하는 대중 매체를 통한 모든 선전 운동, 정치적 억압, 1인 숭배, 경제활동의 통제 및 언론의 제한, 대규모 감시와 광범위한 테러 등을 포함한다. 전체주의 국가는 공적 또는 사적 삶의 영역에서 권위에 대한 어떠한 제한도 허용하지 않는다.

전체주의 정권은 권위주의 정권과는 차이가 있다. 후자는 하나의 권력 보유자—한 사람의 "독재자", 위원회 또는 집단 또는 작은 규모의 정치 엘리트 집단—가 정치 권력을 독점하는 국가를 의미한다. 권위주의 국가는 정치 권력에 도전하지 않으면 사회에 일정한 자유를 부여한다. 권위주의는 “세계와 인간 본성을 변화시키려 하지 않는다." 반면에, 전체주의 정권은 경제, 교육, 예술, 과학, 사생활 및 시민의 도덕을 포함하여 사회 생활의 거의 모든 측면을 통제하려고 시도한다. 또한 정부의 목표를 추구하는 데 전 국민을 동원한다.


전체주의에 대한 학술적 규정

1951년 한나 아렌트의 '전체주의의 기원'이 나온 후 전체주의적 정권을 특징짓는 특성들을 정리해 보려는 가장 유력한 시도는 1954년 칼 프리드리히 교수에 의해 이루어졌다. 그의 논문 [전체주의적 사회의 독특한 성격]이 말해주듯이, 그의 분석은 이후 광범위하게 논의되어 온 두가지 명제를 제기했다. 첫째, 전체주의는 과거 역사에 없었던 새롭고 독특한 정치지배 형태라는 것이고, 둘째 그 특성은 파시스트형과 공산주의형 양자에 있어서 공통적이라는 것이다.[1]

한나 아렌트

"조직되지 않고 구조화되지 않은 대중, 절망적이고 증오로 가득 찬 대중은 지도자들에게서 구원을 기대한다."

벤자멩 콩스탕은 “사회계약론은 모든 종류의 전체주의의 가장 끔찍한 보조자가 되었다”고 꼬집었다. 루소는 결코 전체주의 정권을 찬성하지 않았지만, 일반의지라는 이념이 많은 문제의 소지를 담고 있어 애초 취지와 다른 파장을 일으킨 것이다.[2][3]


칼 포퍼. 열린사회와 그 적들. 신중섭

열린사회를 정의하면, 비판과 토론이 자유롭게 허용이 되고, 그 비판과 토론이 정부의 정책에 영향을 미쳐서 정책이 수정될 수 있는 사회. 그런 사회를 포퍼는 열린사회라고 봤다.

열린사회의 적들은 누구냐? 비판과 토론이 허용되지 않을 뿐 아니라 비판과 토론이 허용된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정책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사회이다. 구체적으로 열린사회와 그 적들이 쓰여졌던 그 당시 유럽의 상황. 히틀러의 나치즘이 1930년대 중반에 출현하고 점점 국가와 사회를 장악한다. 그것도 철저하게 민주적인 방법으로 히틀러는 정권을 잡았다. 그리고 이탈리아의 파시즘. 그리고 공산주의. 물론 공산주의와 나치즘은 대척점이 있었다. 공산주의자들은 나치즘을 반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산주의는 나치즘을 방관했는데 그 이유는 공산주의자들은 나치즘은 결국 망하게 되어있고 오히려 공산주의의 필요성을 더욱 보여주는 그런 계기가 될 것이라고 생각을 했었기 때문이다.

포퍼는 그 당시에 준동하고 있던 히틀러의 나치즘이나 파시즘이나 공산주의가 모두 유럽의 암흑기를 초래하고 있다고 보고 1938년 열린사회와 그 적들을 쓰기 시작한다. 이건 나쁜 것이다. 이 조류들의 가장 기본적인 공통적 특징은 전체주의라고 하는 것이다. 전체주의가 정치적으로 표현된 것이 바로 나치즘, 파시즘, 공산주의라는 것이고 그것을 포퍼는 닫힌 사회라고 불렀다.

우리가 여기서 주목해야할 것은 말도안되는 나치즘, 파시즘, 공산주의 전체주의가 어떻게 많은 사람의 공감을 받았느냐는 것이다. 흥미롭지만 이런 문제의식을 그 당시 사람들은 별로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러나 뒤에 와서 봤더니 히틀러의 나치즘에 대해서 독일 국민들의 95%가 찬성했다는 것. 극소수의 사람만이 반대 저항운동을 벌이고 절대 다수의 사람들이 두손을 들어서 환영을 했다.

도대체 이런일이 왜 일어나는가. 공산주의도 똑같지만, 일반적 논리로 보면 사람들은 전체주의 철학적 표현같은 이런 체제들이 나쁘다고 생각할 것 같은데도 불구하고 거기에 공감하고 찬성하고 박수를 보낸다. 그것은 왜 그럴까. 달리 애기하면 전체주의의 정치적 표현인 나치즘,파시즘,공산주의에 많은 사람들이 열광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다른말로 하면 전체주의의 매력이 무엇인가. 에리히 프롬도 이런 주제를 가지고 '자유에서의 도피'라는 책을 썼다. 그 핵심적 이슈는 1930년대와 40년대의 유럽의 시민들은 자기의 조상들이 피를 흘리면서, 죽음을 각오하면서까지 얻은 소중한 자유를 왜 버리느냐 하는 것이다.

여기에 에리히 프롬이나 포퍼가 관심을 가졌다. 이런 주제는 오늘날 우리사회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데, 기본적으로는 인간의 약점하고 관련이 있다. 우리는 자유가 좋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자유에는 책임이 있다. 실질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자유가 주어줬을 때 공포감을 느낀다. 고등학교와는 달리 대학에 오면 자기 스스로 판단하여 수강 과목을 선택, 신청하고 결과를 책임지는데 그것에 적응하기가 두렵다. 그래서 인간은 한편으로는 자기가 선태을 원하고 선택한 삶을 살고 싶어하지만, 그 선택 자체를 두려워 하고 선택을 피하고 싶어하는 마음도 있다. 특히 선택이 초래하는 책임에 대해서는 도망가고 싶어한다는 거다. 이런 심리가 인간에게 있다.

그래서 전체주의는 바로 그것을 공략한 것이다. 또 인간이라는 것은 자기보다 큰 존재, 중세의 신 같은. 그런 것에 자기를 무조건 맡기고 무조건 따르고 싶어하는 욕망이 있다. 내가 선택하고, 결단하고, 책임지는 것 보다는 나 보다 월등하게 우월하고 강한 존재가 있으면 거기에다 나를 위탁하고 자기를 동일시 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 사람이 나의 모든 것을 해결해 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나와 그 지도자를 동일시 시키는 것, 이게 일종의 원시사회의 특징이라 할까...원시사회에서는 지도자를 따라가면 모든게 해결되는 것이다.

지도자를 따라서 살아가면서 그 지도자와 나를 동일시 한다. 그 당시 독일사람들의 대부분은 히틀러를 자기와 동일시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히틀러가 나타나면 환호하고, 막 박수치고, 요즘 연예인 보고 젊은이들이 열광하는 것처럼 독일국민들이 그랬다는 거죠. 이걸 포퍼는 원시사회가 그랬다는 것이다. 원시사회는 누구도 책임지지 않고 지도자만 따라가면 된다. 그것이 현대에와서 나타난 것이 바로 나치즘이다.

이런 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근대라고 하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근대를 중세와 비교해서 개인이 출현하고 자유가 출현했다 라고 이야기하지만 결국 근대에 새로운 세기가 열렸다고 하는 것은, 개인이 등장했다고 하는 것은 그 개인을 보호해 주던 큰 안전망으로 부터 벗어났다는 것을 의미한다. 어떻게 보면 중세때 사람들이 대단히 편하게 살았다. 심리적으로. 그래서 근대 개인의 탄생을 안전을 버리고 자유를 선택했다고 이야기 하는 사람이 있고, 그 다음 자존심(계급이 주는 자존심) 댓가로 평등을 택했다는 사람이 있고, ...중세 계급사회. 평등을 택하면 자기의 자존심을 보장해 주던 계급사회와 계층을 버려야 한다. 그리고 마음의 평화를 댓가(버리는 대신에)로 비판적 자기의식을 가지게 되었다. 오늘날 말하는 자유란 근대적 개인의 출현과 맥을 같이 하는데 결국 그것은 고독한 개인의 탄생이다.

자기가 선택하고 자기가 책임지는. 이것을 사람들은 부담으로 느꼈다는 것이다. 그래서 끊임없이 사람들은 일종의 과거로 회귀하고 싶은, 프로이드의 용어를 빌리면 엄마의 자궁으로 되돌라가고 싶은, 보호받으면서 편안하게 살고 싶은 욕망이 있다는 것이다. 민주주의 사회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정치적 지도자가 자신의 문제를 해결해 줄거라고 기대하고 그 사람을 열광하는 것이다. 이런 사회에서는 열린사회가 발전할 수 없다는 것이다.

개인 스스로가 자신의 삶의 주인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스스로 선택하고 거기에 책임을 지고 살아가야되는데 사람들은 그것으로 부터 불안을 느끼고 고독을 느끼니까 거기서 도망가려고 한다. 이런 마음의 잠재적 의식이 우리속에 있다는 것이다. 어느 사회든지 대중들의 그런 의식정서에 호소하여 정치적 지지를 얻으려고 하는 잘못된 정치가들이 있으니 그걸 경계 해야한다.

달리 이야기 하면, 정치가들은 자신의 목적을 위해 닫힌사회를 원하지만, 시민들은 자신의 불안을 피하기 위해 닫힌사회를 동경하고 있다. 그래서 엄마의 자궁과 같은 안정감과 무비판 상태로 나가고 싶어서, 완전한 사회에 대한 동경, 그것이 과거지향이라면 씨족사회로의 복귀이고, 미래를 꿈구면 유토피아 세계로 전진하고 싶어하는, 결국 그런 사람들의 심성이 전체주의를 동경하게 하고, 전체주의 사회에 힘을 실어주게 된다.

피터 드러커 <경제인의 종말> 서문

우리시대의 문제들은 1920~30년대의 그것과 매우 다르고, 또한 우리들의 현실도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우리 시대의 문제들에 대해 대중들이 보인 반응들 중 일부는 불길하게도, 유럽을 히틀러 전체주의로 그리고 2차대전으로 몰고 간 '대중의 절망'을 반영하고 있다. 일부 집단들, 예컨데 인종차별주의자들 뿐만 아니라, 소위 좌파 '행동주의' 학생들의 일부는 그 행동이 놀라울 정도로 히틀러의 돌격대와 닮았다. 예를 들면, 어떤 사람에게 발언의 자유를 포함하여 어떤 권리도 허용하지 않거나, 인격 말살 운동을 벌이거나, 그리고 파괴와 야만적인 행동을 즐기거나 하는 것 등이 바로 그것이다. 그런 집단들이 사용하는 수사학을 보면, 히틀러의 연설과 가증스러울 정도로 닮았고, 마오쩌둥에서 부터 마르쿠제에 이르는 증오의 예언자들에게 공통적인 음산한 허무주의도 히틀러와 유사하다.

그들의 직계 조상은 1910~1930년 사이에 일어난 독일의 '청년운동'이다. 긴 머리에 기타를 치며 민속음악 등을 즐기는 것도 닮았다. 그리고 독일의 청년운동은 이상적인 '사회주의'로 출발했으나 히틀러에게 가장 광신적인 핵심 추종자들을 공급하는 것으로 끝났다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그런 집단들이 우익 혹은 좌익이든 간에, 30년전 전체주의자들과 마찬가지로, '아니요'라고 말하는 것이 적극적인 정책이라고 믿고 있으며, 동정심을 갖는 것을 약한 사람이나 할 짓으로 여기고 있고, 권력추구를 위해 이상주의를 조작하는 것을 '이상적'으로 생각한다. 그들은 우리의 가까운 과거로 부터 경험한 바로부터 하나의 커다란 교훈을 배우지 못했다. <증오가 절망에 대한 해답이 아니>라는 사실을 배우지 못했다는 말이다.

이 책을 나는 1933년, 그러니까 히틀러가 (1933년 1월30일) 독일의 권좌에 앉은지 몇 주뒤에 쓰기 시작했다. 이 책의 일부인 [나치 악마학에 있어 반유대주의가 차지하는 역할과 그것이 호소력을 지닌 이유에 관한 연구]는 1935년인지 1936년인지는 정확하지 않으나 오스트리아 가톨릭계 반나치 출판사에 의해 소책자로 출판되었다...

노명식 <자유주의의 역사>

제11장 20세기의 자유주의

자유주의자들을 몸서리치게한 것은 공격적이고 호전적인 이데올로기들의 주의, 주장들의 내용만 아니라 그 정신과 기질에 있었다. 즉 그 이데올로기들은 한결같이 전투적이고 자신에 넘쳐 자기들의 신념과 비전을 누구에게나 강요하려고 했는데, 그러한 자세와 정신은 자유주의자들의 비위에 전혀 맞지 않는 것이었다.

자유주의자의 눈에는 그러한 정신자세는 일찌기 계몽사상적 자유주의자가 싸워 승리를 거둔 바 있는 종교적 광신주의와 교조주의가 이제 아주 흉악한 세속적 형태로 다시 나타난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20세기의 이 세속적 광신주의는 18세기의 종교적 광신주의 보다 훨씬 더 위헙했다. 그 까닭은 자기들의 사상과 체제에 대한 지지를 강요하고 반대파들을 탄압하는 수단이 과학기술과 정치조직의 엄청난 발달에 의해 그 전보다 훨씬 더 효과적이 되었기 때문이다.

20세기는 버트란트 러셀의 말대로 "종교들의 전쟁 시대이고 그 종교는 이제 이데올로기라고 불리우는 종교이다."

자유주의자들은 그러한 종교가 역겨웠다. 자유주의자들도 제각기 자신의 의견이 있었다. 그러나 그 의견을 절대로 진리라고 우겨대지 않았다. 모든 진리는 과학적 실험에 따라 달라질 수있는 것이고 따라서 그것은 일정한 가설하에서만 진리일 뿐이었다. 자유주의자는 회의적 태도를 유지해야한다.

3. 냉전자유주의(2) 전체주의에 대한 분석

냉전이 열전으로 화한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에 열린 한 심포지엄에서 대체적으로 합의된 보고서에 의하면 현대 세계의 모든 전체주의 사회에 기본적으로 공통된 요소를 다음 5가지로 지적하고 있다.

1) 인간 존재의 모든면을 지배하는 어용 이데올로기. 이 이데올로기의 특성은 천년왕국적인 관점에서 인류전체의 최후의 완전한 사회를 강조하고 있다.
2) 거대한 일당 독재정치
3) 거의 완전한 무력독점
4) 거의 완전한 매스컴 독점
5) 비밀경찰에 의한 공포정치
6) 경제 전체의 중앙통제
7) 대중 동원 내지  대중 열광

좌익 전체주의의 본질을 파헤치려는 자유주의 학자들은 전체주의의 기원을 프랑스 혁명이래의 혁명적 자유주의에서 찾았다.

혁명적 사회주의 전통에는 일관해서 흐르는 중요한 전체주의적 요소가 하나 있는데 그것은 인류 역사의 마지막 단게에서 실현되는, 역사의 궁극적 목표인 천년왕국적 유토피아 사상이었다.

이 유토피아 사상이 전체주의로 하여금 사회의 개조뿐만 아니라 인간성 자체의 개조를 향해 전력을 기울이게 한다는 것이었다.

한나 아렌트는 전체주의가 거창하게 설계한 이 사상이 가져올 이 무서운 결과에 관해 "강제수용소는 인간성 변화를 실험하는 실험실"이라고 단언했다.

그러면 왜 좌익적 유토피아 사상이 그렇게 끔찍한 결과로 가게 마련일까? 유토피아 사상가들은 완전한 미래라는 사회적 비전에 집착하고 지나치게 열중하다 보니까, 현재의 개인들의 권리와 사람들의 고통에 무관심하게 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A.까뮈는 이를 두고 "한 사람의 희생이 전 인류의 구원에 공헌하는데 그까짓 개인들의 희생 따위가 무슨 상관이 있는가!"라며 마르크스를 빗대어 빈정대기도 했다.

자유주의 학자들 가운데는 좌익 전체주의의 세속적 유토피아 사상의 뿌리는 기독교의 천년왕국사상에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스도의 재림후 인류역사는 1,000년동안 에덴의 낙원과 같은 시대가 온다는 기독교 사관에 공산주의 유토피아 사상의 뿌리가 있다는 것이다. 마르크스 유물사관에 의하면 인류역사는 원시 공산사회에서 출발하여 노예제 사회, 봉건제 사회, 자본제 사회를 거쳐 일체의 사회적 모순도 계급투쟁도 없는 지상낙원의 사회주의 사회로 발전한다.

이 역사의 발전단계설은 마르크스가 헤겔에서 배운 것이고 헤겔은 아우구스티누스의 기독교 사관에서 배운 것이다.

좌익 유토피아 사상이 메시아주의적, 광신적 종교사상의 세속판이라면 그것은 자유주의의 합리주의와 관용정신에 전혀 맞지 않음은 말할 나위 없다. 공산주의에 대한 자유주의자들의 가장 유력한 비판은 그들의 유토피아 사상이 비과학적이라는 점인데, 비판의 두 기수는 칼 포퍼와 이사야 벌린이었다.

포퍼는 어떤 고상한 목표를 정해놓고 그 목표에 따라 사회 전체를 변경시키거나 재건하려는 시도를 <유토피아적 사회공학>이라고 부르면서, 그러한 시도는 목표달성에 필요한 모든 사실을 미리 다 알고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는데, 그런 전제야말로 무엇보다도 비과학적이라고 했다.

"사회실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시행착오에서 배운 과학적 지식을 현실의 사회에 적용시켜 나가는 것인데 유토피아적 사회공학은 과학의 그러한 기본 룰을 무시하는 것이다"

앞서 본 바와 같이 포퍼는 유토피아적 사회공학을 '홀리즘'이라고 했는데, 벌린은 이를 모니즘이라고 불렀다. 인간의 경험과 사회와 역사적 사실들은 한없이 다양하고 복잡해서 궁극적 진실은 누구도 미리 알 수 없는 것인데도 그 다양하고 복잡한 사실들은 하나의 체계나 하나의 사회질서에 통합하여 인간과 사회와 역사의 궁극적 본질을 하나의 체계로 설명할 수 있다는 단호한 태도가 '모니즘'이다.

이사야 벌린은 모니스트들은 사회적 진실을 사실 그대로 보지 못하는 오류로 말미암아 결국 정치를 생체해부로 만들고 사람들을 끔찍한 불구로 만드는 결과를 낳는다고 주장했다.

로버트 팩스턴 <파시즘. 열정과 광기의 정치혁명> 정규재

2014. 05

역사를 선과 악. 순수와 타락의 싸움으로 보는 음모론적이고 이분법적인 시각이 있다. 물론 자신들의 공동체나 민족은 그 속에서 희생양이 되어왔다고 본다. 잘 들어 보면 우리사회의 어떤 세력의 주장과 똑같다.

'역사를 선과 악. 순수와 타락의 싸움으로 보는 음모론적이고 이분법적인 시각' '우리민족은 항상 희생양이고 박해를 받아왔다하고하는 강박관념' 이런 사회진화론적 역사이야기속에서 선택된 민족은 정치적 당파,사회계급,전체에 동화되지 않은 소수, 합리적 사상가 때문에 지속된다.

결집된 열정은 다음과 같은 파시즘의 정서적 기초를 놓았다. 어떤 전통적인 해결책도 소용없다는 불가항력적인 위기감. 개인의 권리보다 집단의 대한 의무를 우선시하며 개인은 집단에 복종해야한다는 집단 우월관. 자신 또는 사고의 희생자들이 거대한 힘을 가진 세력,집단의 희생자라는 믿음. (예를들어 세월호 또는 위안부 문제로 통분해 하며 정부에 호통치는 자들). 내부,외부의 모든 적에게는 법률적,도덕적 한계가 없이 어떤 행동도 정당화 된다는 생각, 개인적 자유주의 때문에 공동체가 몰락할 것이라는 믿음, 필요하면 배제적 폭력이라도 동원해서 공동체를 더 깨끗하고 더 긴밀히 통합해야 한다는 요구. 타고난 지도자의 권위의 요청. 공동체의 운명을 구현할 국가지도자에 대한 갈망. 지도자의 본능이 추상적이고 보편적인 가치보다 우월하다는 믿음.

이런 느낌을 자신이 갖고 있다면 그것이 바로 파시즘적 충동인 것이다. 파시즘은 머리속에서 생겨난 것이 아니라 가슴속에서 부터 솓아오른 것이다.

지도자는 국민들을 한층 높은 정치영역으로 이끌어 그들로 하여금 정체성과 역사적 운명과 힘을 완전히 자각한 하나의 새로운 인종에 속한다는 탄생한다는 격앙된 느낌. 거대한 집단적 창조행위에 참여하고 있다는 흥분. 서로 공유하고 있는 물결속에 푹 잠겨서 전체의 선을 위해 개인의 사소한 이해관계 따위를 잊어버리게 해주는 것 따위에 감사하는 마음. 그리고 지배자가 되었다고 하는 느낌에서 오는 전율. 이런 것을 그야말로 육감적으로 경험하게 해주려 하는 것.

파시즘은 이성적인 논쟁을 직접적인 감각의 경험으로 교묘히 뒤바꿔 침으로써 정치를 미학으로 변형시킨다.


2017.05

우리 사회에서 지금 무슨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이해하려면, 이 정권의 본질이 무엇인지 이해하려면, 87년 이후 대중민주주의, 대중독재, 광화문 촛불시위가 무엇인지 이해하려면, 우리나라 사법부에서 어떤일이 일어났는지 이해하려면 이 책을 보라. 독일 나치스에서 무슨일이 일어났는지 가만히 들여다 보면, 대한민국의 촛불 혁명의 이야기와 그대로 똑같다. 촛불광장의 집단열광,증오가 바로 파시즘이다.

군중들은 파시즘적 미학, 파시즘적 행동양식에 열광하게 되고 몸에 익히게 된다. 소설가 토머스 만은 히틀러가 독일총리에 취임하고 난 두발 후인 1933.3.27일자 일기에서 이전에 한번도 본적이 없는 종류의 혁명을 목격했다면서 내재된 이념도 없이 다른 이념을 무조건 반대하고, 고상하고, 섬세하고, 점잖은 것은 모조리 반대하며, 자유와 진실, 정의에 반대하는 혁명이 일어나고 있다. 그리고 저속한 인간쓰레기들이 대중의 열렬한 환호를 통해서 권력을 잡았다.

파시스트들은 자유주의적 의회주의와 해이한 부르조와 개인주의를 경멸했고 민족의 병약함과 분열을 치유해야한다 급진적 목소리를 냈다. 초기의 파시스트들은 급속한 산업화와 세계화로 인해 희생된 사람들, 즉 근대화 과정에서 낙오된 사람들의 반발심리를 이용했다. 하지만 파시스트들이 사용한 선전양식과 기법은 극히 현대적이었다.

예를들어 '수정의 밤'사건을 보자. 1938년11월9일 밤. 나치당의 행동대원들은 나치의 선전장관 여제프 괴벨스가 당 지도자들 앞에서 한 연설에 자극받아 독일의 유대인 공동체를 습격했다. 폴란드의 유대인 청년이 독일로 이민간 부모가 추방당하자 이에 격분해 파리에서 독일외교관을 살해한 사건은 이 사건의 좋은 빌미가 되었다. 그들은 수백채의 유대교 회당을 불태웠고 7천개의 유대인 상점을 부쉈고, 2만명의 유대인을 수용소에 몰아넣었고 91명의 유대인을 그자리에서 때려죽였다.

파시즘은 독트린,이론구조의 진리성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대중의 역사적 운명과 지도자 사이의 신비한 합일에 의존했다. 파시즘 지도자들은 국민들을 한층 높은 정치영역으로 이끌어, 그들로 하여금 '정체성, 역사적 운명과 힘을 완전히 자각한 하나의 인종에 속한다고 하는 격앙된 느낌', 우리는 하나의 자각한 인종이다'고 하는 격앙된 느낌.

광주사태의 한부분이 연상. '우리는 민주주의의 대오에 서서 어떤 희생을 치루더라도 역사를 전진시킬거야'하는 격앙된 느낌.

거대한 집단적 창조행위에 참여하고 있다는 흥분. 서로 공유하고 있다는 느낌의 물결속에 푹 잠겨서, 모두의 선을 위해 개인의 사소한 이해관계 따위를 잊어버리게 해주는 것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 그리고 지배자가 되었다는 느낌이 불러일으키는 전율을 그야말로 육감적으로 경험하게 해주려고 했다.

촛불광장 모습들이 그대로 여기있다.

파시즘은 이성적인 논쟁을 직접적인 감각의 경험으로 교묘히 바꿔침으로써 정치를 미학으로 변형시켰다. 나치당 당원들이 뱃치를 달고 다니는 것이 바로 그 기능을 하고 있는 것. 뭔가 숭고한 아름다움, 숭고한 비극적 드라마에 참여하고 있다는 미학적 충동 이런 것들이다. 그래서 여린 아이들일 수록 공감하게 되는 것이다. 1936년 발터 벤야민은 파시즘의 최종적인 미학적 경험은 전쟁이 될 것이라고 예언했다.

파시즘적 자각은 유사 민주주의에서 나온다. 우리 촛불광장에서 나온 구호를 보자.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주권자가 국민이다. 국민의 명령이다. 박근혜 나가라."하는 것.

그 주권자의 의식. '우리는 민주주의 나라이고 민주주의의 주인은 우리 대중이다. 그러므로 대중은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라고 하는... 이상한 자각이 생기는 것이다.

저마다 촛불을 들고 스크럼을 짜고 앉아서 격동적인 노래를 부르면서 숭고한 아! 드디어 마치 우리민족의 미래가 열리고, 뭔가 구악이 일소되고 새로운 무엇인가가 알을깨고 나오는 것 같은 아름다운 미학적 혁명의 열기와 충동을 느끼게 된다. 그래서 어린아이들이 대중의 역사적 운명과 지도자 사이의 신비한 합일에 도달한 것 같은 기분을 더없이 흥분되게 느끼는 것이다.

이것은 바로 민주주의가 옆길로 잘못들어서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 것인지 잘 보여주는 것이다. 군중의 미학적 폭력 행사. 중국의 문화혁명, 캄보디아의 킬링필드, 러시아의 스탈리니즘이 생긴 것이 바로 그것이다.

혹자는 '파시즘은 극우이지 어떻게 좌익이 한거냐?' 고 반문한다. 그러나 파시즘과 스탈리니즘은 본질적으로 똑같은 것이다. 하나는 우익의 세계에서 출발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좌익의 세계에서 출발한 것이지만, 둘 다 하나의 가지위에 핀열매와 꽃이 되는 것이다. 둘 모두 사이비 민주주의라고 하는 가지위에 붉은 꽃이 피는 것이다. 파시즘, 스탈린니즘이 똑같은 복제물, 쌍둥이들이다.

아이작 도이처(폴란드 사회주의자)의 발언. "나치와 스탈린은 쌍생아이다"

영문위키 Isaac Deutscher (3 April 1907 – 19 August 1967) was a Polish writer, journalist and political activist who moved to the United Kingdom at the outbreak of World War II. He is best known as a biographer of Leon Trotskyand Joseph Stalin and as a commentator on Soviet affairs.

...In 1931, he toured the Soviet Union, seeing the economic conditions under the first Five Year Plan. Here Moscow University andMinsk University offered him posts as a professor of the history of socialism and of Marxist theory. He declined these offers and returned to his underground work in Poland.[2] On his return, Deutscher co-founded the first anti-Stalinist group in the Polish Communist Party, protesting the party line that Nazism and Social Democracy were "not antipodes but twins.

연관 문서

공산주의
파시즘
아돌프 히틀러


각주

  1. L. 샤피로 저. 김학준 역. 전체주의. 삼성문화문고. 1972.3
  2. 신동아. <세상을 바꾼 책 이야기> 2013.07.19
  3. 647호 김학순. 장 자크 루소 사회계약론. 민주주의의 교과서인가 전체주의의 보조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