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만원
지만원.jpg
대한민국 국방부 국방연구원 예하 책임연구위원
1981년 12월 1일 ~ 1987년 1월 31일


대통령
총리
남덕우 국무총리

유창순 국무총리 서리
유창순 국무총리
김상협 국무총리 서리
김상협 국무총리
진의종 국무총리 서리
진의종 국무총리
신병현 국무총리 권한대행
노신영 국무총리 서리

노신영 국무총리
장관
주영복 국방부 장관

윤성민 국방부 장관

이기백 국방부 장관
차관
박찬긍 국방부 차관

한상권 국방부 차관 직무대리
권영각 국방부 차관

황인수 국방부 차관
개인 정보
본명
池萬元
출생
1942년 12월 27일 (81세)
일제 강점기 조선 강원도 횡성
성별
본관
충주 지씨
국적
태극기.jpg 대한민국
정당
자유당
경력
일반 경력

미국 해군대학원 이학박사 출신
군인, 교육인, 정당인
경희대학교 겸임교수
서울특별시 시정개혁위원
자유민주연합 당무위원 겸 전임위원
국가안보정책연구소 자문위원
자유당 고문 겸 당무위원
군사 경력 베트남 전쟁 당시 포대장 등 역임

대령 예편
병역
대한민국 육군 (1966년 ~ 1987년)
학력
육군사관학교 졸업 (22기)
미국 해군대학원 경영학 석사
미국 해군대학원 시스템공학 박사
배우자
최현숙
자녀
1남 4녀
웹사이트

개요

지만원((池萬元, 1942년 12월 27일)5.18 에 대한 연구자이다.

대한민국의 육군 대령 출신이며, 시스템공학 박사이다. 본업은 군사 평론가와 칼럼니스트이다.


518, 위안부 등 한국의 성역에 대해서 도전해 온 애국자다. 518에 대해서 다른 이야기를 했다가 수많은 재판과 고초를 겪고 좌익판사 노정희에 의해 징역행이 확정되어 수감 중이다.

518왜곡 처벌법 자체가 위헌적이고, 지만원 판결도 일사부재리 원칙에 어긋난다.



생애

육군 사관 학교 22기로, 졸업 이후 포병 장교로 임관하였다. 베트남 전쟁에 참전하여 인헌 무공 훈장을 받았고, 1970년대 말 미국에 유학하여 미국 해군 대학원에서 행정 과학 석사, 경영 과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때부터 시스템 경영에 따른 군혁신을 연구했다고 한다. 귀국 후 국방연구원육군사관학교에서 근무하다가 1987년 대령으로 예편하였다.

육사 22기인 지만원이 육군 장교로 근무하던 때는 하나회를 포함한 TK(대구경북) 인맥의 정치 군인들이 군대를 마음대로 주무르던 시기이다. 고급 장교로 갈 수록 능력과 실적보단 고향과 인맥이 진급의 절대 기준이던 시절에 육사 졸업, 월남전 참전, 미국 박사 경력은 아무 소용이 없었고, 숫자도 적은 강원도 출신에 비 하나회인 지만원은 비 주류일 수 밖에 없었다. 게다가 국방연구원 정책연구원으로 근무하면서 무기 도입 과정의 비 효율성과 예산 낭비를 지적하다가 정치 군인들에게 미운털이 밖혀서 결국 전역한다. 당시의 무능한 정치 군인들에게 강한 반감을 가지게 되었다.

예편 이후 군사 평론가 활동을 시작하였다. 1990년대까지는 군 시절의 경험을 살려서 '하나회(정치 군인)의 청산'과 과감한 군 혁신을 강하게 주장하였다. 특히 강릉 무장 공비 사건 때는 조타수 이광수의 진술을 예언해서 큰 주목을 받았다.(하지만 지만원은 12.12에 대해서 정승화 장태완 쪽을 비판하는 입장이고, 하나회에 일원이었던 전두화에 대해서도 굉장히 우호적인 편이다. 신군부라는 용어도 북한이 만든 용어라고 하며, 12.12 때는 장태완 측이 가담했던 당시 육군참모차장이었던 윤성민이 5공 때 최장수 국방부장관 등 요직을 엮임해놓고 김영삼 때는 또 역사 거꾸로 세우기 재판에서 또 12.12 등을 비판하는 등 5공을 배신하는 행태를 보이자 12.12 등의 역사를 정리할 때 윤성민을 비판하기도 했다. 지만원 본인은 윤성민이 국방부장관 시절 총애를 많이 받았지만, 역사학자로서는 그런 것을 초월해서 평가를 해야 한다는 지론이라서 그렇게 서술했다고 한다. 사실 윤성민이 기회주의적으로 놀기는 했다. 지만원의 윤성민에 해당 평가는 사실 맞는 말이다. 12.12 자체도 하나회 비하나회같은 구도도 아니었지만 말이다. 하나회는 김영삼 때 필요이상으로 과장된 단체다 )

군사 평론가 뿐만 아니라 시스템공학을 강의하는 프리랜서로 활동했다. 기업체를 방문해서 생산성에 방해가 되는 요소를 찾아내고 처방을 내리는 일이다.

특히 1991년 <70만 경영체 한국군 어디로 가야 하나>, 1992년 <군축시대의 한국군 어떻게 달라져야 하나> 등의 저서를 펴내면서 군 내부에 팽배해있던 비효율과 조직 비대화 현상을 지적하고, 시스템 경영에 따른 군 개혁 방안을 제시하였다. (비록 군 출신일지라도) 민간인 군사 전문가는 사람들에게 매우 생소했기 때문에 언론에서도 많이 주목하였다. 이 시기에는 정치적으로 보수 성향을 보이면서도 자신과 정반대 성향의 위치한 월간지 말(잡지)와도 인터뷰하고, 한겨레 신문에도 거리낌없이 칼럼을 기고하였다.

[군사문화][평화는 군축에 달려있다] 특히 1996년에는 <통일의 지름길은 영구 분단이다>라는 저서를 출간하면서 사회적인 주목을 받았다. 법률적 통일 말고 미국ㅡ캐나다 모델로 가자는 이야기로 당시로서는 대단히 획기적인 발상이었다. [실천가능한 겁니까]

김대중은 정계 은퇴 후 1994년 아시아 태평양 평화 재단을 창립하였고, 잠시 영국에서 유학하고 귀국하여 보수 성향의 군인, 관료, 기업인들을 대거 영입하였다. 이때 합류한 인물중 한 명이 지만원이다. 그는 김대중의 실체를 뒤늦게나마 알아채고 그를 떠났다.

그리고 그의 실체로 폭로하기 시작했다.


학력

1966년 육군사관학교 22기 학사
1967년 육군공병학교 졸업
1968년 육군보병학교 졸업
1969년 미국 미주리 군사종합학원 졸업
1970년 미국 버지니아 군사종합학원 졸업
1972년 육군대학 전략정보과정 1년 수료
1975년 미국 해군대학원(NPS) 행정과학석사
1980년 미국 해군대학원 이학박사


저서 목록

  • <70만 경영체 한국군 어디로 가야 하나> (1991년)
  • <군축시대의 한국군 어떻게 달라져야 하나>(상)(하) (1992년)
  • <신바람이냐 시스템이냐> (1993년)
  • <문민 IQ> (1994년)
  • <싱크로경영> (1994년)
  • <통일의 지름길은 영구분단이다> (1996년)
  • <추락에서 도약으로 시스템 요법> (1997년)
  • <국가개조 35제> (1998년)
  • <시스템을 통한 미래 경영> (1998년)
  • <한국호의 침몰 이대로 가면 진짜 망한다> (2000년)
  • <나의 산책세계>1,2 (2005년) : 자서전 격인 책이다. 주로 군 복무 시절 여러 가지 에피소드를 담고 있다.
  • <뚝섬 무지개> (2009년) : 내용의 상당부분은 <나의 산책세계>의 재탕이다.
  • <발상전환을 위한 ACTIVATOR 시스템 경영> (2009년)
  • <12.12와 5.18-수사기록으로 본 다큐멘터리 역사책 압축본> (상)(하) (2009년)
  • <솔로몬 앞에 선 5.18> (2010년)
  • <사상 최대의 군 의문사: 530GP> (2010년)

<오욕의 붉은 역사 제주 4.3 반란 사건> (2011년)

  • <5.18분석 최종 보고서> (2014년)
  • <조선과 일본> (2019년)

나무위키에서의 지만원

지만원은 친일파를 옹호하고 친일적 발언을 했다라고 주장하며 허위 사실을 유포한다. "조선은 먹힐만해서 먹혔다." 그들이 근거로 삼고 있는 이 말은 맥락을 살펴보면 일본이 점령한 것을 옹호한 것이 아니라, 한국이 국제정세를 너무 몰랐다는 의미로 해석해야 한다. 그가 일본이 한국 점령을 정당하다고 한것은 아니다. 원래 나라는 스스로를 망친 이후에 외부에서 위협이 오는 경우가 많다. 조선도 마찬가지다. 일본을 원망하고 탓해봐야 알량한 자존심은 지키지만 한국에는 플러스가 되지 않는다. 도리어 왜 스스로 근대화 하지 못했는지를 되돌아 보는게 낮다. 일본은 우리나라도 아니다 백날 사과해라 배상해라 해 봤자다. 사실 일본은 사과도 여러번 했고 배상도 이미 했다.

대일관에 대해서는 반일 민족주의에 함몰된 좌빨 나무위키보다 지만원이 훨씬 진보적인 입장으로 보인다. 지만원과 진중권 토론을 보면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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