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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 集會

개요

촛불 집회는 범진보진영이 광장 등에서 촛불을 들고 벌이는 집회이다. 주로 야간에 이루어진다.
촛불시위는 시각적 효과가 크고, 일과를 끝낸 시민들의 참여가 용이하며 다른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특징이 있다.


언론에서는 촛불은 이원 생중계도 할 정도로 직접민주주의의 승리라며 찬양하는데 비해, 태극기 집회는 무슨 박사모 보수 혹은 극우집회로 폄하하고 제대로 조명도 안한다.


박근혜 때 국정교과서를 반대했고 집권하자마자 국정교과서를 파기한 문재인 정부 들어서 역사 교과서에는 아예 표지에다가 촛불소녀를 박아 놓고,


촛불에 대한 챕터를 따로 만들어서 촛불시위를 민주주의의 승리라며 찬양하는 서술로 일관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현정부인데 아직 역사적 평가가 끝나지 않은 당대사인 촛불시위를 역사교과서에 싣는 건 적절치 못한 짓이다. 역사교과서를 국정호보서로 만들어 놓았다.

연혁

대한민국에서 일어난 크고작은 촛불시위의 역사

2002년 효순·미선양 사건으로 인한 반미 시위

최초로 촛불이 등장하게 되는 시위이다.

실제로는 미군이 훈련 중 낸 교통사고로 사망한 두 여중생 추모를 빙자한 노무현 대통령 당선 목적의 국민 선동용 반미 시위였다. 정작 두 여중생의 부모는 딸들의 죽음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이들의 시위를 불편해 하였다.


촛불 시위를 최초로 제안한 자는 아래 기사에 나오는 인물이다.

효순·미선 추모열기를 '반전·평화운동'으로 승화 노력


월드컵 열기에 묻혀 잊혀져 가던 이 사건에 불을 지펴 되살려낸 인물이 있다. 당시 법무부 검찰4과장 유재만 검사이다. 법으로 금지된 공무원의 교묘한 선거 개입이며, 본인은 고의가 아니라고 우기겠지만 결과적으로 사실상 선거 부정을 저지른 것이다. 아래 블로그에 당시 시위의 전말에 대해 잘 정리해 놓았다.

7월, 효순 미선양의 죽음에 대한 국민적 관심은 월드컵의 응원열기 속에서 하락세를 맞이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흐름을 급변하게 한 사건이 있다. 7월 10일, 한국 검사가 사상최초로 미국 측에 재판관할권을 넘겨달라고 요구한 것이다. 이 검사는 당시 김대중 정부 청와대에 파견을 갔다가 법무부 검찰4과장으로 영전해 온 유재만 검사였다.

미국 입장에선 당연히 받아들일 수 없는 요구였다. 작전 중 교통사고를 일으킨 미군에 대한 재판관할권은 미국에 있다. 이는 미국뿐만이 아니다. 파병을 실시하는 대부분의 국가가 자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주둔국과 협정을 맺어둔다. 생각해보라. 이라크에 파병간 우리나라 군인이 작전 중 실수로 교통사고를 냈는데, 이라크 법에 따라 재판을 받을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파병군인이 작전 중 일으킨 고의성 없는 사고인데, 재판관할권을 한국에 넘겨달라는 유 검사의 청은 받아들여질 리 없는 청이었다.

여기서 잠시, 이런 무리한 요청을 한 유재만 검사가 누구인지 한 번 살펴보자. 유 검사는 DJ 정부 초기에 청와대에서 근무했으며, 2005년에는 사상 처음으로 국정원에 대한 압수수색을 지휘하였고, 이후 민주당에 영입된 인물이다. 친좌익 반우익적 정치색이 너무나 뚜렷한 인물이다. 이렇다 보니 일각에서는 “이 모든 것이 유 검사의 계획이었다”라 평가하기도 한다. 무슨 말이냐고? 유 검사는 미 정부가 재판관할권을 절대 넘겨주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미리 예상하고 그런 요청을 했다는 것이다. 미 정부의 거부가 반미시위를 불러오고, 이를 통해 좌익세력이 우세해지는 결과를 노렸다는 것이다. 당시 유재만 검사에게 어떤 의도가 있었는지 알 길은 없지만, 이러한 추측이 아주 억지스러운 것이라 말하지는 못하겠다. 실제로 유 검사의 억지 요청이 범국민적 반미시위의 도화선이 되었으니까.

이때의 첫 촛불 시위에 재미를 톡톡히 본 것이 좌파들이 툭하면 촛불 들고 나오는 단초가 되었다.

2008년 광우병 시위

박근혜 대통령 탄핵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당시 촛불시위대가 박 전 대통령 형상에 수갑을 채우고, 포승줄로 묶어 끌고 다니고 있다. 이 밖에 프랑스 혁명 때 왕을 처단했던 단두대, 박 전 대통령 목에 주사기를 꽂은 조형물도 등장했다.
트럼프의 구호가 박근혜 파면의 피켓으로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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