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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오동 전투를 보도한 1920년 6월 12일 및 15일자 대련신문(大連新聞).

대련신문(大連新聞) 6월 12일자 「不逞鮮人과 我軍 충돌」, 6월 15일자 기사 「支那에 소굴을 둔 불령선인들 거의 전멸상태에 직면」
1. 1920년 6월 12일 제2면

불령선인과 아군 충돌(不逞鮮人我兵衝突)
경성(京城) 10일 전보. 6월 4일부터 7일까지 약 200명에 달하는 불령선인들이 국경을 습격하여 아군 파견대와 교전을 벌였다. 그들의 사상자는 24명, 아군의 사상자는 12명에 달했다. 아군은 약간 명의 포로와 무기·탄약 다수를 노획했다(군 사령부의 발표).

2. 1920년 6월 15일 제3면
중국에 소굴을 둔 불령선인들이 거의 전멸 상태에 직면(支那領に巢ふ不逞鮮人全滅近にあり)

9일 군사령부에서 발표한 불령선인들이 습격하여 온 지점은 함경북도 온성군 강양동(咸鏡北道 穩城郡 江陽洞)으로서 두만강 연안에 위치한 부락이다. 불령단(不逞團)은 6월 4일부터 7일까지 강양동 대안(對岸) 중국령(支那領)에서 침습을 시도하였다. 아군 수비대는 헌병 경찰과 협력하여 그들을 대안(對岸)으로 격퇴하고 현재 엄중 경계 중에 있다. 그들의 총 인원이 얼마인지는 명확하게 파악되고 있지 않지만 약 200명 내외로 추산된다. 이번 접전에서 약간 명의 포로와 소총과 탄약을 노획하였다. 그들이 유기한 시체는 24구이다. 아군 사상자는 12명에 달하였다. 그들의 소굴은 대안(對岸) 중국령이다. 그들의 근거지를 소탕하기 위하여 당국에서도 상당히 고심하고 있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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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2021년 8월 31일 (화) 19:593,247 × 4,381 (207 KB)JohnDoe (토론 | 기여)봉오동 전투를 보도한 1920년 6월 12일 및 15일자 대련신문(大連新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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