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 프레데리크 졸리오퀴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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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적 | |
| 출생일 | 1900년 3월 19일 |
| 사망일 | 1958년 8월 14일 |
| 직업 | 원자물리학자 |
| 부모 | 장인 피에르 퀴리, 장모 마리 퀴리 |
| 배우자 | 이렌 졸리오퀴리 |
| 상훈 | 노벨 화학상 (1935) |
장 프레데리크 졸리오퀴리는 프랑스의 물리학자이며, 핵화학 분야에서 중요한 업적을 남겼다.
그의 부인은 마리 퀴리와 피에르 퀴리의 첫째 딸인 물리학자 이렌 졸리오퀴리다.
말년에는 프랑스 공산당에 입당하여 활동했다. 또한 퍼그위시 회의 창립멤버로 활동하며 핵무기와 전쟁의 근절을 위한 과학자에 모임 활동도 하였다. [1]
==최연소 노벨 화학상 수상==
졸리오퀴리는 아내 이렌 졸리오퀴리와 함께 인공 방사능을 발견하여 1935년에 노벨 화학상을 수상하였다.
졸리오퀴리는 프랑스의 원자력 개발에 기여했으며,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나치에 저항하는 활동에도 참여하였다.
현재까지 최연소 노벨 화학상 수상자로 알려져있다. 프레데리크 졸리오퀴리는 1935년 화학상을 수상할 당시 35세였으며, 부인 이렌 졸리오퀴리와 함께 노벨 화학상을 수상하였다.
1901-19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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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6-195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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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1-1975 |
1951: 맥밀런 / 시보그 1952: 마틴 / 싱 |
1976-2000 |
1976: 립스컴 1977: 프리고진 |
2001-현재 |
2001: 놀스 / 노요리 / 샤플리스 2002: 펜 / 다나카 / 뷔트리히 |
1. 각주
- ↑ 퍼그워시 회의(Pugwash Conferences)의 정식 명칭은 '과학과 국제 정세에 관한 퍼그워시 회의'(Pugwash Conferences on Science and World Affairs)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