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 玄裝
1. 개요
현장(玄奘, 602년 4월 6일 ~ 664년 3월 7일)은 당나라 초기 중국의 승려이다.
인도에 가서 불경을 중국으로 가지고 와 한문으로 번역하여 보급하였다.
서유기에 나오는 삼장법사의 모델이 된 인물이다.
삼장이란 불교에서는 말하는 경(불경 경전), 율(승려들이 지켜야 할 계율에 관한 내용), 론(경율에 대한 주석 해석)인데 삼장법사란 이 세가지에 모두 능통한다는 말이다.
구마라집의 번역은 구역, 현장의 번역을 신역이라고도 한다.
구마라집의 번역이 의역에 가깝다면 , 현장의 번역은 원문 그대로를 살리는 직역에 가깝다는 평가가 있다.
대부분의 경전이 구마라집 번역이 더 유명하고 많이 쓰이는 것에 반해, 반야심경은 현장의 번역버전이 더 유명한다.
보통 불교 예불 행사에서 암송되는 반야심경 버전은 당 현장 번역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반야심경의 관자재보살은 관세음보살인데 현장은 관자재보살, 구마라집은 관세음보살로 번역했다.
현장이 살았던 시기가 당 태종 시기였는데 당 태종의 이름은 이세민(李世民)이었으니 현장은 황제의 이름 글자인 세(世)자를 쓸 수가 없었다.
당나라 시기 내내 세자를 쓸 수 없었기 때문에 관세음보살 대신 관음보살이라는 말이 굳어 지게 되었다.
원효는 <<판비량론>>이라는 저서로 당현장의 논리를 비판하였다. 이 비판이 중국에서도 반향이 있었다.
현장 당시에는 당나라가 외국인에게 개방적인 나라였지만, 당나라 사람이 국경을 넘어 외국에 나가는 건 불법이었다.
당 현장은 국법을 어기고 처벌 받을 것을 각오하고 인도에 간 것이다.
(당시 외국에 간다는 것 자체가 국법을 떠나서 이미 목숨을 건 여정을 각오한 것이었다.)
다행이 당현장이 불경을 갖고 당나라로 귀국했을 때는 국법을 어겨서 외국에 갔어도 대대적인 환영을 받았고,
당 태종은 그를 환속 시켜 고위 관리로 등용까지 하려고 했는데, 당현장은 당 태종의 그 제안은 거절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