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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1945-10-14 Kim Il-sung.jpg|1945년 10월 14일 평양시 도시민중대회에서 김일성이 해방 후 처음으로 대중들 앞에 나서는 자리에도 태극기가 걸려 있다.
파일:1945-10-14 Kim Il-sung.jpg|1945년 10월 14일 평양시 도시민중대회에서 김일성이 해방 후 처음으로 대중들 앞에 나서는 자리에도 태극기가 걸려 있다.
파일:조선인에 태극기를 넘겨주는 소련군.jpg|북한을 점령한 소련군이 일장기를 밟고 조선인에 태극기를 넘겨주는 그림. (북한 간행 해방 1주년 기념 사진첩)
파일:조선인에 태극기를 넘겨주는 소련군.jpg|북한을 점령한 소련군이 일장기를 밟고 조선인에 태극기를 넘겨주는 그림. (북한 간행 해방 1주년 기념 사진첩) 북한에서도 해방이 곧 태극기를 되찾는 것과 같은 의미였다.
파일:1946-02-08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 성립 경축 대회.jpg|소련군정은 1946년 2월 9일 김일성을 위원장으로 하는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를 발족시켰다.<ref name="prov">[http://contents.history.go.kr/mfront/ti/view.do?treeId=evn_060&levelId=ti_030_0250 북조선 임시 인민 위원회] 우리역사넷, 국사편찬위원회</ref> 사진의 현수막에 "(임시인민위원회)는 우리에 政府(정부)이다."라고 씌어 있고, 태극기도 매달려 있다.
파일:1946-02-08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 성립 경축 대회.jpg|소련군정은 1946년 2월 9일 김일성을 위원장으로 하는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를 발족시켰다.<ref name="prov">[http://contents.history.go.kr/mfront/ti/view.do?treeId=evn_060&levelId=ti_030_0250 북조선 임시 인민 위원회] 우리역사넷, 국사편찬위원회</ref> 사진의 현수막에 "(임시인민위원회)는 우리에 政府(정부)이다."라고 씌어 있고, 태극기도 매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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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7월 25일 (목) 13:55 판

태극기.png


태극기는 대한민국의 국기(國旗)이다.

조선시대부터 사용된 유서 깊은 국기이며 역사적으로 깊은 의미를 가지고 있는 깃발이다.

인공기, 한반도기와의 비교 및 기타 논쟁

친북 성향의 단체들은 북한과 통일한 후엔 태극기가 아닌 한반도기를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태극기는 19세기 조선 시대부터 사용하던 한반도 역사의 유일한 정통성이 있는 깃발이며, 현재 태극기를 좋게 보지 않는 북한도 소련에서 인공기 도안을 받기 전까진 태극기를 사용했다는 점을 볼 때 통일 이후에도 태극기를 국기로 사용해야 한다는 것은 자명하다.


그뿐만 아니라 친일파인 박영효가 디자인했으며 일장기를 베껴서 디자인했다는 근거없는 주장으로 공격받기도 하지만 사실이 아니다.

현재 사학계에선 태극기를 디자인한 건 이응준으로 보고 있으며, 조선 시대 때부터 조선 왕실에서 태극기와 매우 흡사한 전신격인 어기(御旗)를 왕을 상징하는 깃발로 쓰고 있던 점을 볼 때 이러한 주장은 태극기의 정통성을 깎아내리기 위한 음모에 가깝다.

태극기는 일제시대에 되찾아야 할 나라 조선의 상징이었다.

일제시대에 독립운동하던 선열들이 되찾고자 하던 나라 조선의 상징이 태극기였고, 태극기를 소지했다는 이유만으로도 체포되고 투옥된 분들이 많았다. 3.1운동 당시에도 전국 도처에서 태극기를 흔들었다. 3.1절 노래 가사에도 "태극기 곳곳마다 삼천만이 하나로"라고 나온다.

해방 직후 북한도 태극기 사용

북한은 1948년 7월 인민회의 제5차 회의에서 태극기를 폐지하면서 인공기로 국기를 교체했다.[1] 그 이전까지는 북한의 사진에서도 태극기가 국기로 등장한다.

각주

  1. 6.25 전후 미공개 북한 사진 공개 YTN 2009-11-16
  2. 북조선 임시 인민 위원회 우리역사넷, 국사편찬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