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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외의 실물은 전하지 않는 듯하다. 일제시대에 신문들이 호외를 간행하는 일은 흔했고, 특별한 일도 아니었다. 문맹률이 80%를 상회하고 신문독자 수도 얼마되지 않던 시절에 호외에 난 사건이라고 특별히 유명해지고 오래 기억될 형편도 아니었다.)
:(호외의 실물은 전하지 않는 듯하다. 일제시대에 신문들이 호외를 간행하는 일은 흔했고, 특별한 일도 아니었다. 문맹률이 80%를 상회하고 신문독자 수도 얼마되지 않던 시절에 호외에 난 사건이라고 특별히 유명해지고 오래 기억될 형편도 아니었다.)


* [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37060600239202005&editNo=1&printCount=1&publishDate=1937-06-06&officeId=00023&pageNo=2&printNo=5768&publishType=00020 共軍大部隊 越境襲來(공군대부대 월경습래)] 조선일보 1937-06-06 석간(5일 토) 2면
[[분류:보천보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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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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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0월 20일 (화) 02:47 판

파일의 설명

보천보사건을 보도한 1937-06-06 조선일보 기사. 기사의 첫부분 말미에 호외재록(號外再錄)이라 하였으므로 당시 동아일보 뿐만 아니라 조선일보도 호외를 간행했다.

(호외의 실물은 전하지 않는 듯하다. 일제시대에 신문들이 호외를 간행하는 일은 흔했고, 특별한 일도 아니었다. 문맹률이 80%를 상회하고 신문독자 수도 얼마되지 않던 시절에 호외에 난 사건이라고 특별히 유명해지고 오래 기억될 형편도 아니었다.)

파일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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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2020년 8월 27일 (목) 13:292,298 × 1,708 (1.5 MB)JohnDoe (토론 | 기여)보천보사건을 보도한 1937-06-06 조선일보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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