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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金日成) 일파가 정도익(鄭道益) 을 납치했다는 경성일보(京城日報) 1936년 11월 27일 (26일 석간) 4면 기사 "長白荒しの不敵な强盜, 共匪金日成一味の廻し者の嫌疑濃厚" : 1936년 11월 6일 김일성 부대에 납치된 정도익(鄭道益)은 《國境의 匪賊首魁 金日成 會見記 (국경의 비적수괴 김일성 회견기)》 (삼천리 제9권 제5호 1937년 10월 01일)에 나오는 사람으로, 1937년 3월 3일 토벌대에 구조되었다.

長白荒しの不敵な强盜, 共匪金日成一味の廻し者の嫌疑濃厚

【惠山鎭】 旣報、共匪金日成一味の密偵の嫌疑で過般惠山署高等刑事に逮捕された住所不定、自稱普面堡興里李基鑛(二二)は密偵の疑ひ濃厚であるが容易に自白せず單に共匪を装ふ强盜であるといひ張つてゐる。
同人は今月六日長白府藥水浦(惠山西北一里) 移住朝鮮人鄭顯春の長男道益(二0)が金日成一味に拉致されたことを知り同七日夜 同地に至り鄭顯春に『自分は 金日成一味の者であるが三百圓を出さねば道益の命はない』と 脅迫し現金がなければ畜牛でも よいとて時價百二十圓の牛一頭を强奪し立去る時に區長外有志 七八名を同家に集め『今夜金日成一味百名が當部落へ來るから 夕食の用意をしておけ』といひ殘し、同夜鴨綠江を渡つて惠山に入込み奪つた畜牛を九十圓で賣却、金齒を入れ、洋服を新調し料亭で豪遊、數日間に無一物となり更に越境、再び強盗を働 からとしてゐたところを逮捕 れたものでなほ餘罪ある見込み

장백의 용감한 강도, 공비 김일성 일파의 밀정 혐의 농후
앞서 보도한대로 공비 김일성 일당의 밀정 혐의로 지난번 혜산서 고등형사에게 체포된 주소 부정, 자칭 보면 보흥리 이기광(22)은 밀정 혐의는 농후하나 쉽게 자백하지 않고 단순히 공비를 가장한 강도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 사람은 지난 6일 장백부 약수포(혜산 서북1리) 이주 조선인 정현춘(鄭顯春)의 장남 도익(道益, 20)이 김일성 일당에게 납치된 사실을 알고 같은 날 밤 그곳에 와서 정현춘에게 '자신은 김일성 일당 사람인데 삼백원을 내야 도익의 목숨을 구할 수 있다'고 협박하고 현금이 없으면 축우라도 좋다고 시가 백이십원짜리 소 한 마리를 강탈하고 떠날 때 구장(區長) 외 유지(有志) 칠팔명을 그 집에 모아 '오늘 밤 김일성 일당 백명이 이 부락에 오니 저녁식사 준비를 해 두어라'는 말을 남기고, 같은 날 밤 압록강을 건너 혜산으로 들어가 빼앗은 축우를 90원에 매각, 금니를 넣고, 옷을 새로 장만하여 요정에서 호기롭게 놀다(豪遊), 며칠 사이에 무일푼이 되어 다시 월경, 또 강도를 하다 체포된 것으로 여죄(餘罪)가 있을 전망.

「廻し者」: 間諜, 工作員, 犬, 間者, 探, 諜報員, 諜者, 密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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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2022년 10월 29일 (토) 18:141,448 × 1,266 (672 KB)JohnDoe (토론 | 기여)김일성(金日成) 일파가 정도익(鄭道益) 을 납치했다는 경성일보(京城日報) 1936년 11월 27일 (26일 석간) 4면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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