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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투에 참여한 항일연군 2사의 사장은 [http://baike.baidu.com/subview/52210/9567476.htm 조국안(曹國安, 1900~1937)]인데도, 북한이나 중국 측 모두 조국안이 1936년말 전사했다고 하면서, 2사장은 조국안의 후임 조아범이라고 하는데, 이는 사실이 아니다. 2사장 조국안은 1936년 후반부터 1937년 가을까지 지속적으로 6사장 김일성 부대와 연합해서 활동한 것이 국내 신문에 자주 보도되었고, 일본측 기록에도 그렇게 나온다. 그는 1936년이 아니라 1937년 말에 전사했다. 북한 김일성이 6사장이 맞다면 자신과 늘 같이 활동했던 조국안의 전사 시점을 잘못 알 수가 없으므로 이는 북한 김일성이 6사장이 아닌 가짜라고 자백하는 것이다.  
* 전투에 참여한 항일연군 2사의 사장은 [http://baike.baidu.com/subview/52210/9567476.htm 조국안(曹國安, 1900~1937)]인데도, 북한이나 중국 측 모두 조국안이 1936년말 전사했다고 하면서, 2사장은 조국안의 후임 조아범이라고 하는데, 이는 사실이 아니다. 2사장 조국안은 1936년 후반부터 1937년 가을까지 지속적으로 6사장 김일성 부대와 연합해서 활동한 것이 국내 신문에 자주 보도되었고, 일본측 기록에도 그렇게 나온다. 그는 1936년이 아니라 1937년 말에 전사했다. 북한 김일성이 6사장이 맞다면 자신과 늘 같이 활동했던 조국안의 전사 시점을 잘못 알 수가 없으므로 이는 북한 김일성이 6사장이 아닌 가짜라고 자백하는 것이다.  
* 북한은 일본군측 지휘관이 [https://ko.wikipedia.org/wiki/김석원 김석원(金錫源, 1893~1978)] 소좌라고 주장하나, 실제로는 김석원의 일본 육사 동기인 [https://ko.wikipedia.org/wiki/김인욱 김인욱(金仁旭, 1892~ ?)] 소좌이다. 김인욱은 해방 전 예편하고, 고향인 평안남도 용강에 살았으나, 소련군 진주후 소련으로 끌려간 뒤 소식이 끊어졌다. 북한은 엉뚱한 김석원에 대해 입에 담지도 못할 비방을 하고 있으나, 김석원은 해방전에는 김일성이나 항일연군과는 아무 관계도 없었고, 6.25 때 남침한 김일성의 군대에 맞서 싸운 일 밖에 없다.
* 북한은 일본군측 지휘관이 [https://ko.wikipedia.org/wiki/김석원 김석원(金錫源, 1893~1978)] 소좌라고 주장하나, 실제로는 김석원의 일본 육사 동기인 [https://ko.wikipedia.org/wiki/김인욱 김인욱(金仁旭, 1892~ ?)] 소좌이다. 김인욱은 해방 전 예편하고, 고향인 평안남도 용강에 살았으나, 소련군 진주후 소련으로 끌려간 뒤 소식이 끊어졌다. 북한은 엉뚱한 김석원에 대해 입에 담지도 못할 비방을 하고 있으나, 김석원은 해방전에는 김일성이나 항일연군과는 아무 관계도 없었고, 6.25 때 남침한 김일성의 군대에 맞서 싸운 일 밖에 없다.
* 북한은 김일성이 조선인민혁명군이라는 날조된 부대의 총사령관으로 동북항일연군과 공동 작전을 한 것으로 주장하며, 그가 6사장이나 제2방면군장이었다는 주장은 하지 않는다. 항일연군 6사장 김일성은 1937년말 전사했고, 제2방면군장 김일성은 북한 김일성이 맞으, 조선인민혁명군은 존재한 적이 없는 날조된 부대이다.
* 북한은 김일성이 조선인민혁명군이라는 날조된 부대의 총사령관으로 동북항일연군과 공동 작전을 한 것으로 주장하며, 그가 6사장이나 제2방면군장이었다는 주장은 하지 않는다. 항일연군 6사장 김일성은 1937년말 전사했고, 제2방면군장 김일성은 북한 김일성이 맞으며, 조선인민혁명군은 존재한 적이 없는 날조된 부대이다.


==각주==
==각주==

2019년 3월 27일 (수) 13:46 판

간삼봉 전투(間三峰 戰鬪)는 1937년 6월 4일의 보천보사건 직후인 6월 30일 함경남도 신갈파진(新乫坡鎭)[1]의 대안(對岸) 장백현 13도구(長白縣 十三道溝)에서 동북항일연군 1로군 2사(師), 4사, 6사 연합부대와 일본군 사이에 벌어진 전투를 말한다. 북한에서는 김일성이 지휘하여 일본군 1,500여명을 죽이고, 엄청난 대승을 거둔 것처럼 주장하나[2], 당시 신문에는 일본군 전사자 5명, 항일연군 전사자 50~60여명으로 일본군이 크게 승리한 전투로 보도되었다.[3][4]

개요

전투 결과에 대한 기록과 주장들

당시 신문 보도와 일본측 기록

북한의 주장

연변 학계의 주장

한국 학계의 입장

기록과 주장에 대한 검토

  • 전투에 참여한 항일연군 6사의 사장 김일성은 1937년 11월 13일 전사했고, 북한 김일성이 아니다.
  • 전투에 참여한 항일연군 2사의 사장은 조국안(曹國安, 1900~1937)인데도, 북한이나 중국 측 모두 조국안이 1936년말 전사했다고 하면서, 2사장은 조국안의 후임 조아범이라고 하는데, 이는 사실이 아니다. 2사장 조국안은 1936년 후반부터 1937년 가을까지 지속적으로 6사장 김일성 부대와 연합해서 활동한 것이 국내 신문에 자주 보도되었고, 일본측 기록에도 그렇게 나온다. 그는 1936년이 아니라 1937년 말에 전사했다. 북한 김일성이 6사장이 맞다면 자신과 늘 같이 활동했던 조국안의 전사 시점을 잘못 알 수가 없으므로 이는 북한 김일성이 6사장이 아닌 가짜라고 자백하는 것이다.
  • 북한은 일본군측 지휘관이 김석원(金錫源, 1893~1978) 소좌라고 주장하나, 실제로는 김석원의 일본 육사 동기인 김인욱(金仁旭, 1892~ ?) 소좌이다. 김인욱은 해방 전 예편하고, 고향인 평안남도 용강에 살았으나, 소련군 진주후 소련으로 끌려간 뒤 소식이 끊어졌다. 북한은 엉뚱한 김석원에 대해 입에 담지도 못할 비방을 하고 있으나, 김석원은 해방전에는 김일성이나 항일연군과는 아무 관계도 없었고, 6.25 때 남침한 김일성의 군대에 맞서 싸운 일 밖에 없다.
  • 북한은 김일성이 조선인민혁명군이라는 날조된 부대의 총사령관으로 동북항일연군과 공동 작전을 한 것으로 주장하며, 그가 6사장이나 제2방면군장이었다는 주장은 하지 않는다. 항일연군 6사장 김일성은 1937년말 전사했고, 제2방면군장 김일성은 북한 김일성이 맞으며, 조선인민혁명군은 존재한 적이 없는 날조된 부대이다.

각주

  1. 현재 북한 행정구역으로 양강도 김정숙군 김정숙읍이다. 신갈파진(新乫坡鎭)[신파] - 북한지역정보넷
  2. 김일성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 6권 제17장 "5. 간삼봉전투"
  3. 전투 쌍방 피해 보도 1937-07-02 동아일보
  4. 전투 쌍방 피해 보도 1937-07-02 매일신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