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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 나오토가 총리에 재임 중이던 2011년 3월 12일에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사고가 일어났다. 하지만 간 나오토와 [[일본 민주당]] 내각이 보여준 사고 대처 능력은 정말 형편없었다. ‘긴급재해대책본부’ ‘부흥대책회의’ 등 비슷한 이름과 성격의 기구 20여 개의 기구가 난립<ref>[https://weekly.donga.com/List/3/all/11/92087/1 주간동아 제787호 2011년 5월 16일]</ref>하여 어떤 업무 하나 제대로 처리하지 못했다. 간 나오토 총리의 조직관리능력 부재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였다. 이렇듯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사고에서 보여준 간 총리와 [[일본 민주당]]의 무능은 [[민주당(일본)|민주당]] 집권기의 경제실정과 함께 [[제46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 [[자유민주당(일본)|자유민주당]]이 압승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 간 나오토가 총리에 재임 중이던 2011년 3월 12일에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사고가 일어났다. 하지만 간 나오토와 [[일본 민주당]] 내각이 보여준 사고 대처 능력은 정말 형편없었다. ‘긴급재해대책본부’ ‘부흥대책회의’ 등 비슷한 이름과 성격의 기구 20여 개의 기구가 난립<ref>[https://weekly.donga.com/List/3/all/11/92087/1 주간동아 제787호 2011년 5월 16일]</ref>하여 어떤 업무 하나 제대로 처리하지 못했다. 간 나오토 총리의 조직관리능력 부재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였다. 이렇듯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사고에서 보여준 간 총리와 [[일본 민주당]]의 무능은 [[민주당(일본)|민주당]] 집권기의 경제실정과 함께 [[제46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 [[자유민주당(일본)|자유민주당]]이 압승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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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9월 19일 (토) 20:51 판
간 나오토 菅 直人 | |
직책 | 일본 제13대 부총리 겸 재무대신 (2010년 1월 7일~ 2010년 6월 8일) ←전임후임→ 일본 제94대 내각총리대신 |
출생일 | 1946년 10월 10일 |
학력 | 도쿄공업대학 이학부 응용물리학(학사) |
정당 | 민주당 |
소개
일본의 정치인으로 2010년에 하토야마 유키오 내각에서 재무대신을 역임했으며, 이후 하토야마 유키오 총리의 뒤를 이어 내각총리대신이 되어 2011년 9월 2일까지 직무를 수행하였다.
성향
관료에 적대적
2009년 10월에 간 나오토는 "관료는 바보다."라고 이야기했는데[1] 이는 그동안 잦은 정권교체 속에서 관료들의 영향력이 커졌음을 견제하는 동시에 이를 정치 주도로 바꾸고자 함이었다.
그러나 이런 그도 총리로 취임한 2010년 6월에는 "관료는 프로다"라는 말을 하여[2] 관료들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으려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아마도 관료 사회가 친(親)자민당인 상황에서 관료를 자극시켰다간 국정운영에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었기 때문으로 추측된다.
총리시절 행보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 관련
간 나오토가 총리에 재임 중이던 2011년 3월 12일에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사고가 일어났다. 하지만 간 나오토와 일본 민주당 내각이 보여준 사고 대처 능력은 정말 형편없었다. ‘긴급재해대책본부’ ‘부흥대책회의’ 등 비슷한 이름과 성격의 기구 20여 개의 기구가 난립[3]하여 어떤 업무 하나 제대로 처리하지 못했다. 간 나오토 총리의 조직관리능력 부재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였다. 이렇듯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사고에서 보여준 간 총리와 일본 민주당의 무능은 민주당 집권기의 경제실정과 함께 제46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 자유민주당이 압승하는 원동력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