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자 5명의 중간 판 20개는 보이지 않습니다)
1번째 줄: 1번째 줄:
==김재규==
==김재규==
김재규는 [[박정희]] 전 대통령을 암살한 군인, 정치인이다.  
김재규는 박정희 전대통령을 암살한 군인, 정치인이다. 1979년 10월 26일
 
==생애==
1926년에 경상북도 선산군에서 태어났다. [[박정희]] 대통령과 동향사람이다. 1943년 안동공립농림학교를 졸업하고, 중등교원양성소에 입학해 1945년에 수료하였다. 그 사이 일본 육군 특별 간부 후보생 교육을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1945년 해방 후에는 [[경상북도]] [[김천시]]에 위치한 김천중학교에서 교사로 근무하다가 조선국방경비사관학교 2기생으로 입교하였으며 이때 처음 박정희와 인연을 맺었다. 고향도 같고, 둘 다 교사를 했던 경험이 있었던 것이 친해지는 계기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
 
===정계 진출 및 중앙정보부장 임명===
1973년에 육군 중장으로 전역하였으며 이후 국회의원으로 활동하다, 1974년 건설부 장관에 임명되고, 이어 1976년에는 중앙정보부장에 임명되었다.
 


===10.26사태===
1979년 10월 26일, 궁정동 안전가옥에서 권총으로 [[박정희]] 대통령을 사살했다. 이를 [[10.26사태]]라 한다. 자세한 사항은 [[10.26사태]]를 참고할 것.


==여담==
===뇌물 수뢰===
===뇌물 수뢰===
   1979년 8월15일 전에 김재규는 김정사의 아버지로부터 6천만엔을 받았다 한다.  
   1979년 8월15일 전에 김재규는 김정사의 아버지로부터 6천만엔을 받았다.  
   김정사는 재일동포 간첩단 사건으로 당시에 1심 무기징역,2심에서 10년형을 구형받았다.
   김정사는 재일동포 간첩단 사건으로 당시에 1심 무기징역,2심에서 10년형을 구형받았다.
   김정사는 1979년 8월 15일에 석방되었다.  
   김정사는 1979년 8월 15일에 석방되었다.  
   재일동포 간첩단 사건으로 [[재일한국민주통일연합]]은 '[[한통련]]','[[한민련]]'으로 약칭되며 반국가단체로 규정되었다.
   재일동포 간첩단 사건으로 [[재일한국민주통일연합]]은 '[[한통련]]','[[한민련]]'으로 약칭되며 반국가단체로 규정되었다.
   6천만엔은 당시 환율로 당시 금액으로 1억 3천 3백만원에 상당한다.<ref>https://mardream.tistory.com/261</ref> (엔화 100엔=원화 222.26원, 1979년 환율)
   6천만엔은 당시 환율로 당시 금액으로 1억 3천 3백만원에 상당한다.<ref>https://mardream.tistory.com/261</ref> (엔화 100엔=원화 222.26원, 1979년 환율)
    
   김재규는 6천만엔의 뇌물을 수뢰하고 2개월뒤 박정희 전대통령을 시해하였다.
   노컷뉴스 - 재일동포 김정사 "34년 묵은 간첩누명 한, 누가 알아주나" -<ref>https://www.nocutnews.co.kr/news/4207738</ref> <ref>https://www.cbs.co.kr/cbsboard/2006/?pn=read&skey=&sval=&anum=4002&vnum=1223&bgrp=4&page=&bcd=007C055E</ref> 기사에서 발췌
 
   노컷뉴스 - 재일동포 김정사 "34년 묵은 간첩누명 한, 누가 알아주나" -<ref>http://rainbowtv.cbs.co.kr/radio/view.asp?num=194276&page=114&program=sisa_spe&bt=&skey=title&sval=</ref>,<ref>https://www.nocutnews.co.kr/news/4207738</ref> <ref>https://www.cbs.co.kr/cbsboard/2006/?pn=read&skey=&sval=&anum=4002&vnum=1223&bgrp=4&page=&bcd=007C055E</ref> 기사에서 발췌
   
   
   ' ▶정관용> 알겠습니다. 그리고 유죄판결을 받으셨고. 처음에는?
   ' ▶정관용> 알겠습니다. 그리고 유죄판결을 받으셨고. 처음에는?
33번째 줄: 45번째 줄:
     ▷김정사> '''예'''.
     ▷김정사> '''예'''.
     ▶정관용> 이야... 그러니까 그렇게 풀어준 거예요?
     ▶정관용> 이야... 그러니까 그렇게 풀어준 거예요?
     ▷김정사> 그런 셈이지요. 그리고 일본 국회의원들, 아주 자민당 간부도 좀 구출운동을 했었고.
     ▷김정사> 그런 셈이지요. 그리고 '''일본 국회의원들, 아주 자민당 간부도 좀 구출운동을 했었고'''.
     ▶정관용> 참... 그리고는 일본으로 돌아가셨나요?
     ▶정관용> 참... 그리고는 일본으로 돌아가셨나요?
     ▷김정사> 예.
     ▷김정사> 예.
39번째 줄: 51번째 줄:
     ▷김정사> 아버님이 건설회사를 하셨으니까 그 회사에 근무하고...
     ▷김정사> 아버님이 건설회사를 하셨으니까 그 회사에 근무하고...
     ▶정관용> 지금도 일본에 거주하고 계시고? 재판 있을 때만 한국에 오시고?
     ▶정관용> 지금도 일본에 거주하고 계시고? 재판 있을 때만 한국에 오시고?
     ▷김정사> 예.'
     ▷김정사> 예. '
 
 
김재규는 민주화 투사인가??
 
 
 
보안사에 끌려 가서 심문을 받을 때는 순순히 집권 욕심에서 거사를 했다고 인정했지만,
 
 
 
재판에서 좌익 변호사들 무료 심문을 대거 자청하고 상황이 좀 달라지자.
 
 
마치 민주화를 위해 유신의 심장을 쏴다는 듯이 증언이 바뀐다.
 
김형욱이랑도 비슷. 좌익쪽에서는 무슨 민주화 투사인냥 영웅화하는 데.
 
김재규는 자신이 대통령이 되고 싶어서 박정희를 암살한 것이다. 이 사건 까지 중정부장으로 거의 충실히 일했는데, 임무에 실패하고 자신이 해임 될 처지 등에 처하고 자기 외에는 대통령이 될 사람이 없다는 과대망상 등에 빠져 이런 일을 저지른 것으로 보인다. 
 
무능을 숨길 수 없는 조직인 군대에서 김재규의 평판은 무능하기로 유명했던 것으로 보인다.
 
사단장이 브리핑을 시켰는데 어버버 해서 사단장을 분노시킨 적도 있고 보짐해임 당하고 군복을 벗을 위기에 처하기도 했고(그를 구해준 것이 이종찬 장군), 김재규가 장성으로 진급하자 아니 어떻게 김재규가 장성이 돼? 참 별일도 다 있네 라며 황당해 한 동료 장교도 있었을 정도. 
 
이런 사람을 동기고 동향이라고 요직에 앉힌 박정희의 명백한 인사실패 였다.     
 
김재규는 평소 간이 굉장히 안 좋았다고 한다. 간이 안 좋으면 무리를 해서는 절대 안돼고, 주기적으로 휴식을 취해야 한다. 본인도 건강관리를 굉장히 했다고 한다. 보안사에서 김재규를 연행하고 고문했다는데 (노무현 때 5공 악마화 역사왜곡 제5공화국 같은 드라마 등에서도 이렇게 묘사된다. ) 사실이 아니다. 김재규의 건강상태는 고문을 견딜 수 있을 정도로 좋지 못했다. 
 
 
 
 
 
 
==김재규 살펴보기==
 
* 이명인의 역사체크 '첫번째 체크' 김재규는 의인인가?
{{깨짐|<center><youtube>https://youtu.be/VzLkkmQ7Wyw</youtube></center>}}
 
 


==각주==
<references/>




[[분류:현대사]]
[[분류:한국 현대사]]
[[분류:재일한국민주통일연합]]
[[분류:박정희]][[분류:정치인]][[분류:암살자]]
[[분류:뇌물수뢰]]
{{분류|한양대학교 출신| 제9대 국회의원|1924년 출생|1980년 사망|김녕 김씨|구미시 출신|민주공화당 |유신정우회| 육군사관학교 출신 |육군 중장 | }}

2023년 8월 1일 (화) 02:29 기준 최신판

김재규

김재규는 박정희 전 대통령을 암살한 군인, 정치인이다.

생애

1926년에 경상북도 선산군에서 태어났다. 박정희 대통령과 동향사람이다. 1943년 안동공립농림학교를 졸업하고, 중등교원양성소에 입학해 1945년에 수료하였다. 그 사이 일본 육군 특별 간부 후보생 교육을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1945년 해방 후에는 경상북도 김천시에 위치한 김천중학교에서 교사로 근무하다가 조선국방경비사관학교 2기생으로 입교하였으며 이때 처음 박정희와 인연을 맺었다. 고향도 같고, 둘 다 교사를 했던 경험이 있었던 것이 친해지는 계기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

정계 진출 및 중앙정보부장 임명

1973년에 육군 중장으로 전역하였으며 이후 국회의원으로 활동하다, 1974년 건설부 장관에 임명되고, 이어 1976년에는 중앙정보부장에 임명되었다.


10.26사태

1979년 10월 26일, 궁정동 안전가옥에서 권총으로 박정희 대통령을 사살했다. 이를 10.26사태라 한다. 자세한 사항은 10.26사태를 참고할 것.

여담

뇌물 수뢰

 1979년 8월15일 전에 김재규는 김정사의 아버지로부터 6천만엔을 받았다. 
 김정사는 재일동포 간첩단 사건으로 당시에 1심 무기징역,2심에서 10년형을 구형받았다.
 김정사는 1979년 8월 15일에 석방되었다. 
 재일동포 간첩단 사건으로 재일한국민주통일연합은 '한통련','한민련'으로 약칭되며 반국가단체로 규정되었다.
 6천만엔은 당시 환율로 당시 금액으로 1억 3천 3백만원에 상당한다.[1] (엔화 100엔=원화 222.26원, 1979년 환율)
 김재규는 6천만엔의 뇌물을 수뢰하고 2개월뒤 박정희 전대통령을 시해하였다.
  노컷뉴스 - 재일동포 김정사 "34년 묵은 간첩누명 한, 누가 알아주나" -[2],[3] [4] 기사에서 발췌

  ' ▶정관용> 알겠습니다. 그리고 유죄판결을 받으셨고. 처음에는?
    ▷김정사> 무기였어요.
    ▶정관용> 무기징역? 그러다가?
    ▷김정사> 2심에서 10년.
    ▶정관용> 10년. 그리고 언제 풀려나셨어요?
    ▷김정사> 79년 8월 15일날.
    ▶정관용> 그럼 오래 안 사셨네요?
    ▷김정사> 2년 4개월.
    ▶정관용> 어떻게 그렇게 빨리 나오실 수 있었어요?
    ▷김정사> 글쎄요, 뭐 제 아버님이 좀 여러 가지 힘을 쓰셨나봐요.
    ▶정관용> 어떻게요?
    ▷김정사> 아유, 정보부 간부에게도 한 6천만엔인가 돈을 줬다네요. 그 당시...
    ▶정관용> 6천만엔? 우와, 어마어마한 거액인데요? 누구한테 줬답니까?
    ▷김정사> 이름을 얘기해도 되나요?
              김재규에 6000만엔 전달하고 조기석방
    ▶정관용> 아, 이야기해도 상관없지요.
    ▷김정사> 김재규.
    ▶정관용> 김재규 씨한테?
    ▷김정사> .
    ▶정관용> 이야... 그러니까 그렇게 풀어준 거예요?
    ▷김정사> 그런 셈이지요. 그리고 일본 국회의원들, 아주 자민당 간부도 좀 구출운동을 했었고.
    ▶정관용> 참... 그리고는 일본으로 돌아가셨나요?
    ▷김정사> 예.
    ▶정관용> 그리고 일본에서 학업 마치시고? 어떻게 생활해오셨어요, 그 동안에?
    ▷김정사> 아버님이 건설회사를 하셨으니까 그 회사에 근무하고...
    ▶정관용> 지금도 일본에 거주하고 계시고? 재판 있을 때만 한국에 오시고?
    ▷김정사> 예. '


김재규는 민주화 투사인가??


보안사에 끌려 가서 심문을 받을 때는 순순히 집권 욕심에서 거사를 했다고 인정했지만,


재판에서 좌익 변호사들 무료 심문을 대거 자청하고 상황이 좀 달라지자.


마치 민주화를 위해 유신의 심장을 쏴다는 듯이 증언이 바뀐다.

김형욱이랑도 비슷. 좌익쪽에서는 무슨 민주화 투사인냥 영웅화하는 데.

김재규는 자신이 대통령이 되고 싶어서 박정희를 암살한 것이다. 이 사건 까지 중정부장으로 거의 충실히 일했는데, 임무에 실패하고 자신이 해임 될 처지 등에 처하고 자기 외에는 대통령이 될 사람이 없다는 과대망상 등에 빠져 이런 일을 저지른 것으로 보인다.

무능을 숨길 수 없는 조직인 군대에서 김재규의 평판은 무능하기로 유명했던 것으로 보인다.

사단장이 브리핑을 시켰는데 어버버 해서 사단장을 분노시킨 적도 있고 보짐해임 당하고 군복을 벗을 위기에 처하기도 했고(그를 구해준 것이 이종찬 장군), 김재규가 장성으로 진급하자 아니 어떻게 김재규가 장성이 돼? 참 별일도 다 있네 라며 황당해 한 동료 장교도 있었을 정도.

이런 사람을 동기고 동향이라고 요직에 앉힌 박정희의 명백한 인사실패 였다.

김재규는 평소 간이 굉장히 안 좋았다고 한다. 간이 안 좋으면 무리를 해서는 절대 안돼고, 주기적으로 휴식을 취해야 한다. 본인도 건강관리를 굉장히 했다고 한다. 보안사에서 김재규를 연행하고 고문했다는데 (노무현 때 5공 악마화 역사왜곡 제5공화국 같은 드라마 등에서도 이렇게 묘사된다. ) 사실이 아니다. 김재규의 건강상태는 고문을 견딜 수 있을 정도로 좋지 못했다.




김재규 살펴보기

  • 이명인의 역사체크 '첫번째 체크' 김재규는 의인인가?

[깨진 링크][5]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