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金正日, 1941년 2월 16일 ~ 2011년 12월 17일)은 김일성의 장남으로 1994년 7월 8일 김일성이 사망한 시점부터 2011년 12월 17일 사망시까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하 북한)의 최고 권력자였다. 그는 1967년 갑산파 숙청 후부터 김일성의 후계자로 지명되어 차츰 권력을 확장하여 1980년대에는 실질적으로 김일성을 능가하는 권력을 갖게 되며 김일성은 허수아비로 전락하였다.

출생

북한은 그가 1942년 2월 16일 백두산 밀영에서 김일성과 김정숙 부부의 장남으로 태어났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의 생년과 출생지는 모두 조작이다. 남한의 친북학자들도 차마 그의 출생지가 북한 주장대로 백두산 밀영이라고 하지는 못하나, 생년은 북한의 주장을 그대로 따라서 1942년생이라고 하는 경우가 많다. 그는 실제로는 1941년 2월 16일 생이나, 후계자로 결정된 무렵부터 김일성과 소위 꺾어지는 해(5년 단위로 크게 기념하는 해)를 맞추기 위해 1942년이라고 조작하였다.[1][2]

그의 출생지는 당시 김일성이 소련에 있을 때이므로 소련의 어느 지역일 것이다. 이 경우도 김일성이 소속되었던 제88 독립저격여단이 있던 하바로프스크 인근 아무르 강변의 뱌츠코예( Вя́тское, Vyatskoye) 마을 이라는 설, 김일성이 소련으로 도피하여 처음 머물렀던 남야영(南野營, B 야영)이라는 설, 또 중앙아시아의 사마르칸트라는 설 등 3가지가 있다. 일반적으로 88여단이 있던 뱌츠코예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많으나, 김정일이 태어날 무렵 김일성 부부가 머물렀던 곳은 뱌츠코예 마을이 아닌 남야영이 있던 우수리스크 인근의 라즈돌노예(Раздольное, Razdolnoye) 마을로, 당시 지명은 하마탄(Хаматан, Hamatan, 虾蟆塘)이었다. 김일성은 88여단이 창설되던 1942년 7월 남야영에서 뱌츠코예 마을로 이주하였으므로 김정일의 생년이 1941년이든, 1942년이든 관계없이 당시 김일성 부부는 라즈돌노예 마을의 남야영에 있었고, 이곳이 김정일의 출생지임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


김정일 연보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