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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은 김근혁(金根赫)이다.
본명은 김근혁(金根赫)이다.


[[파일:김혁-혁명열사릉.jpg|400픽셀|섬네일|오른쪽|북한의 혁명열사릉에 있는 김혁(金赫)의 묘지 앞에 세워진 반신상. 하단에 새겨진 그의 사망일자는 틀린 것이다. 김일성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 2권에는 김혁의 사진은 한 장도 남아 있지 않다고 했다가 조금 뒤에 김혁의 사진이라면서 이 사진을 싣고 있어 앞뒤가 맞지도 않아 실제로 김혁의 사진이 맞는지 의심스럽다.]]
[[파일:김혁-혁명열사릉.jpg|400픽셀|섬네일|오른쪽|북한의 혁명열사릉에 있는 김혁(金赫)의 묘지 앞에 세워진 반신상. 하단에 새겨진 그의 사망일자는 틀린 것이다. 김일성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 2권에는 김혁의 사진이라면서 이 사진을 싣고 있으나 조금 앞에는 김혁의 사진은 한 장도 남아 있지 않다고 하여 말이 앞뒤가 맞지도 않아 실제로 김혁의 사진이 맞는지 의심스럽다.]]


==개요==
==개요==

2024년 3월 30일 (토) 05:00 판

김일성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 2권 p.83에 실린 김혁(金赫)의 사진.

김혁(金赫, 1907.10.11 ~ 1930.08.25)은 1930년 무렵 만주에서 조선혁명군 길강지휘부(朝鮮革命軍 吉江指揮部) 사령 이종락(李鍾洛, 1907 ~ 1940)의 부하로 활동하던 북한 김일성의 동료였다.

본명은 김근혁(金根赫)이다.

북한의 혁명열사릉에 있는 김혁(金赫)의 묘지 앞에 세워진 반신상. 하단에 새겨진 그의 사망일자는 틀린 것이다. 김일성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 2권에는 김혁의 사진이라면서 이 사진을 싣고 있으나 조금 앞에는 김혁의 사진은 한 장도 남아 있지 않다고 하여 말이 앞뒤가 맞지도 않아 실제로 김혁의 사진이 맞는지 의심스럽다.

개요

1933년 8월 19일자 동아일보석간 2면의 최여정(崔汝貞) 체포 기사에 김근혁(金僅赫)이 1930년 10월 30일 밤 11시 하얼빈(哈尔滨, 哈爾濱)의 부가전(傅家甸) 북삼도가(北三道街)의 가토 우메요시(加藤梅吉)가 경영하던 복덕루(福德樓)를 습격하다 현장에서 체포되었다고 하였다.

참고 자료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