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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김혁.jpg|200픽셀|섬네일|오른쪽|김일성 회고록에 실린 김혁(金赫)의 사진. 실제 사진이 맞는지 의심스럽다.]]
[[파일:김혁.jpg|200픽셀|섬네일|오른쪽|김일성 회고록의 김혁 사진.]]
[[파일:김혁-혁명열사릉.jpg|250픽셀|섬네일|오른쪽|북한의 혁명열사릉에 있는 김혁(金赫)의 묘지 앞에 세워진 반신상. 하단에 새겨진 그의 사망일자는 틀린 것이다.]]
[[파일:김혁-혁명열사릉.jpg|250픽셀|섬네일|오른쪽|북한의 혁명열사릉에 있는 김혁(金赫)의 묘지 앞에 세워진 반신상. 하단에 새겨진 그의 사망일자는 틀린 것이다.]]
'''김혁'''(金赫, 1907.10.11 ~ 1930.08.25)<ref>그의 생몰년월일은 [[:파일:김혁-혁명열사릉.jpg|북한의 혁명열사릉에 있는 김혁(金赫)의 묘지 앞에 세워진 반신상]] 하단에 새겨진 것이나, 정확성에 대해서는 의문이 있다. 그의 사망일자는 명백히 틀렸다.</ref>은 1930년 무렵 만주에서 [https://ko.wikipedia.org/wiki/%EC%A1%B0%EC%84%A0%ED%98%81%EB%AA%85%EA%B5%B0_%EA%B8%B8%EA%B0%95%EC%A7%80%ED%9C%98%EB%B6%80 조선혁명군 길강지휘부(朝鮮革命軍 吉江指揮部)] 사령 [https://ko.wikipedia.org/wiki/%EC%9D%B4%EC%A2%85%EB%9D%BD 이종락(李鍾洛, 1907 ~ 1940)]의 부하로 활동하던 북한 [[김일성]]의 동료였다.
'''김혁'''(金赫, 1907.10.11 ~ 1930.08.25)<ref>그의 생몰년월일은 [[:파일:김혁-혁명열사릉.jpg|북한의 혁명열사릉에 있는 김혁(金赫)의 묘지 앞에 세워진 반신상]] 하단에 새겨진 것이나, 정확성에 대해서는 의문이 있다. 그의 사망일자는 명백히 틀렸다.</ref>은 1930년 무렵 만주에서 [https://ko.wikipedia.org/wiki/%EC%A1%B0%EC%84%A0%ED%98%81%EB%AA%85%EA%B5%B0_%EA%B8%B8%EA%B0%95%EC%A7%80%ED%9C%98%EB%B6%80 조선혁명군 길강지휘부(朝鮮革命軍 吉江指揮部)] 사령 [https://ko.wikipedia.org/wiki/%EC%9D%B4%EC%A2%85%EB%9D%BD 이종락(李鍾洛, 1907 ~ 1940)]의 부하로 활동하던 북한 [[김일성]]의 동료였다.

2024년 3월 30일 (토) 07:16 판

김일성 회고록의 김혁 사진.
북한의 혁명열사릉에 있는 김혁(金赫)의 묘지 앞에 세워진 반신상. 하단에 새겨진 그의 사망일자는 틀린 것이다.

김혁(金赫, 1907.10.11 ~ 1930.08.25)[1]은 1930년 무렵 만주에서 조선혁명군 길강지휘부(朝鮮革命軍 吉江指揮部) 사령 이종락(李鍾洛, 1907 ~ 1940)의 부하로 활동하던 북한 김일성의 동료였다.

본명은 김근혁(金根赫)이다. 당시 기록에는 본명 김근혁(金根赫)으로 나오나, 북한에서는 혁명시인 김혁(金赫)으로 널리 선전되고 있는데, 김혁이란 이름을 실제로 사용했는지는 알기 어렵다.

개요

1933년 8월 19일자 동아일보석간 2면의 최여정(崔汝貞) 체포 기사에 김근혁(金僅赫)이 1930년 10월 30일 밤 11시 하얼빈(哈尔滨, 哈爾濱)의 부가전(傅家甸) 북삼도가(北三道街)의 가토 우메요시(加藤梅吉)가 경영하던 복덕루(福德樓)를 습격하다 현장에서 체포되었다고 하였다.

기록에 나오는 김근혁(金根赫)의 행적은 1920년대 말부터 1930년까지 정의부 또는 그 후신 국민부의 부원으로 활동하다 1930년 여름 이종락을 따라 국민부를 탈퇴하고 나와서 조선혁명군 길강지휘부에 가담한다. 군자금 모집을 위해 1930년 10월 30일 밤 11시 하얼빈(哈尔滨, 哈爾濱)의 부가전(傅家甸) 북삼도가(北三道街)의 가토 우메요시(加藤梅吉)가 경영하던 복덕루(福德樓)를 습격하다 현장에서 체포되었다. 그후의 일에 대한 기록은 없으나 감옥에서 옥사한 것으로 보인다.

그다지 주목을 받을만한 행적도 없고, 이름이 널리 알려질만한 인물도 못되지만 북한에서는 김일성에게 "한별"이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한별을 칭송하는 "조선의 별"이라는 노래도 작사, 작곡해 동지들 사이에 보급했다며 찬양하고 있다. 한별을 한자로 처음에 일성(一星)으로 적다가 차광수의 제의로 일성(日成)으로 바꾸어 적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실제로는 없던 일을 꾸며내어 별 대단한 행적도 없는 김일성의 과거 선배들을 김일성 미화 찬양에 악용하고 있다.

북한의 혁명열사릉에 김혁의 묘지가 조성되어 있고 반신상도 세웠으나 시신없는 가묘로 보인다.

김혁의 아들 김환(金煥, 1929~2009)은 북한 부총리를 지냈다.[2][3]

참고 자료

북에서 ‘김혁 혁명투사 생일 100돌 기념 중앙보고회’ 열려 <조선신보>


각주

  1. 그의 생몰년월일은 북한의 혁명열사릉에 있는 김혁(金赫)의 묘지 앞에 세워진 반신상 하단에 새겨진 것이나, 정확성에 대해서는 의문이 있다. 그의 사망일자는 명백히 틀렸다.
  2. 김환(金煥, 1929~2009) 북한 정보넷
  3. 인물 - 북한을 움직이는 사람들(3) : 김환(金煥) 현대경제연구원 월간 「통일경제」 1995년 9월호 p.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