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콜라이 게오르기예비치 레베데프(러시아어: Николай Георгиевич Лебедев, Nikolai Georgievich Lebedev, 1901년 ~ 1992년 5월 10일)는 소련의 군인이다.[1] 1945년 8월 북한을 점령한 소련 제25군의 군사위원회 위원으로 평양 소련군정의 핵심 인물이었으며, 당시 계급은 소장이었다. 소련군이 교육시켜 데려 온 대리인 김일성을 지도자로 내세워 북한 정권을 수립해 가는 전 과정을 지휘하였다. 평양 소련군정을 총지휘한 연해주 군관구 군사위원 테렌티 스티코프 다음가는 위치에 있었다.
생애
- Лебедев, Николай Георгиевич (러시아어 wikipedia) : Lebedev, Nikolai Georgievich 구글 영역
- 니콜라이 레베데프 위키 백과
그는 상당히 장수하여 한국과 소련이 수교할 당시까지 생존해 있었기 때문에 1991년 모스크바의 자택으로 찾아간 한국 기자들의 인터뷰에 응하여 소련 군정 당시의 일에 대해 많은 증언을 하였다.[2][3]
레베데프 비망록
그가 남긴 비망록이 1994년 말 발굴되어 국내 언론에 공개되었는데, 1948년 김구, 김규식 등 남측 인사들이 방북하여 남북협상을 할 당시 일의 내막을 아는데 중요한 자료이다.
- 48년 남북정치협상은 蘇각본-蘇민정사령관 레베데프 비망록 [중앙일보] 1994년 11월 15일 종합 1면
- <평양의4김회담>1. 레베데프 비망록-자료적 가치 [중앙일보] 1994년 11월 15일 종합 8면
- <평양의4김회담>1. 46년만에 밝혀진 南北정치협상 진상 [중앙일보] 1994년 11월 15일 종합 8면
- <평양의4김회담>2. 金九 올때까지 대표자회의 연기 [중앙일보] 1994.11.16 종합 8면
- <평양의4김회담>2. <해설> 蘇군정 남한정세 손금보듯 [중앙일보] 1994. 11.16 종합 8면
- <평양의4김회담>3. 蘇,김일성에 신문보도 일일이 지시 [중앙일보] 1994.11.17 종합 8면
- <평양의4김회담>4. 白凡 "나는 김일성 만나러 왔을뿐" [중앙일보] 1994.11.21 종합 8면
- <평양의4김회담>5. 蘇 朴憲永도 빠뜨려선 안된다 [중앙일보] 1994.11.22 종합 8면
- <평양의4김회담>6. 蘇 南대표에 총선후 정부수립 약속받아라 [중앙일보] 1994.11.23 종합 8면
- <평양의4김회담>7. 끝 조만식 南行 白凡요구에 金日成침묵 [중앙일보] 1994.11.24 종합 8면
비망록의 전체 내용은 아래 책들에 나온다.
- 전현수 역, 『레베제프일기(1947~1948년)』, 한국연구재단 기초학문자료센터, 2006.
- 김영중(金英仲) 편, ≪레베데프 비망록 : 대구, 매일신문 1995.1.1.~2.28. 24회 연재기사 全文: 1947.5.14~1948.12.26 기록≫ (제주, 해동인쇄사, 2016) / (Naver 책 : ISBN 480B170805082)
함께 보기
- 레베제프, <수행해야 할 의무를 자각하고> ≪조선해방≫, 모스크바, 1976.[4]
- ≪비록(祕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상, 하 전2책, 중앙일보 특별취재반 편 중앙일보사/1992년) : 중앙일보 취재반이 1991년 레베데프 소장과 인터뷰한 내용이 들어있음
- 장준익(張浚翼), ≪북한인민군대사(北韓人民軍隊史)≫ (서문당, 1991년 11월 1일) : 1991년 8월 22일 소련 모스크바에서 레베데프 소장과 저자(전 육군사관학교 교장)가 대담한 내용 나옴.
각주
- ↑ Лебедев, Николай Георгиевич (러시아어 wikipedia) : Lebedev, Nikolai Georgievich 구글 영역
- ↑ ≪비록(祕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상, 하 전2책, 중앙일보 특별취재반 편 중앙일보사/1992년) : 중앙일보 취재반이 1991년 레베데프 소장과 인터뷰한 내용이 들어있음.
- ↑ 장준익(張浚翼), ≪북한인민군대사(北韓人民軍隊史)≫ (서문당, 1991년 11월 1일) : 1991년 8월 22일 소련 모스크바에서 레베데프 소장과 저자(전 육군사관학교 교장)가 대담한 내용 나옴.
- ↑ 해외사료총서 10권 쉬띄꼬프일기 > 해제 한국사데이터베이스 (국사편찬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