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문서: 리카싱, 리자청 (李嘉誠,Sir Ka-shing Li, 1928.6.13~)) 홍콩 본토 발음으로 리카싱으로 부른다. 중국 최대의 기업 집단 청쿵그룹의 창시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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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카싱, 리자청 (李嘉誠,Sir Ka-shing Li, 1928.6.13~ | {{일반인 | ||
|이름 = 리자청 (이가성, 리카싱)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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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카싱, 리자청'''(李嘉誠,Sir Ka-shing Li, 1928.6.13~ ) 홍콩 본토 발음으로 리카싱으로 부른다. 중국 최대의 기업 집단 청쿵그룹의 창시자이다. [[중국]]과 [[동아시아]] 전역에서 가장 부유한 인물이며, 중국인 중 세계 최대의 부자 중 한 사람이다 | |||
==서훈== | |||
*2000년 대영 제국 훈장 2등급(KBE, 작위급 훈장) | |||
*2001년 홍콩 최고 훈장(Grand Bauhinia Medal, GBM) | |||
*2005년 레지옹 도뇌르 훈장 코망되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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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카싱의 신문광고== | ==리카싱의 신문광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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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3월 22일 (월) 19:18 기준 최신판
리자청 (이가성, 리카싱) 李嘉誠, Sir Ka-shing Li | |
인물 사진을 등록하세요. | |
국적 | 홍콩, 캐나다 |
성별 | 남 |
출생 | 1928년 6월 13일 차오저우시 차오안구 |
직업 | 사업가, 리자청 재단 의장 |
학력 | 고등학교 중퇴 명예법학박사 (1986) 명예사회학 박사 (1994) |
수상 | 2000년 대영 제국 훈장 2등급(KBE, 작위급 훈장) 2001년 홍콩 최고 훈장(Grand Bauhinia Medal, GBM) |
리카싱, 리자청(李嘉誠,Sir Ka-shing Li, 1928.6.13~ ) 홍콩 본토 발음으로 리카싱으로 부른다. 중국 최대의 기업 집단 청쿵그룹의 창시자이다. 중국과 동아시아 전역에서 가장 부유한 인물이며, 중국인 중 세계 최대의 부자 중 한 사람이다
서훈
- 2000년 대영 제국 훈장 2등급(KBE, 작위급 훈장)
- 2001년 홍콩 최고 훈장(Grand Bauhinia Medal, GBM)
- 2005년 레지옹 도뇌르 훈장 코망되르
리카싱의 신문광고
홍콩 최고갑부 리카싱, 신문에 전면 광고를 8.16일자 신문들에 폭력을 반대하는 표현을 하였으나[1] 그 속뜻은 홍콩시민을 응원하고 있다.[2] 삼성 이재용은 기생충영화도 아직 안 보았나. 박사장이 누구라고 보여지는가.
- 명쾌 해설, 리카싱의 신문광고/ 박상후의 문명개화
' ’황대지과, 하감재적‘는 측천무후의 둘째 아들 이현이 쓴 ‘황대과사’에서 나온 문구로, ’황대 아래 심은 오이, 모두 따서 더 딸 것이 없다‘는 뜻으로 ’골육상쟁의 결과는 멸망‘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측천무후는 고종이 죽은 후 자신의 큰 아들 이홍을 태자로 세웠지만 이홍이 자신의 말을 듣지 않자 독살했고, 이후 둘째 아들 이현을 태자로 세웠지만 동일한 이유로 살해했다. '
각주
- ↑ http://kr.people.com.cn/n3/2019/0816/c203281-9606785.html 홍콩 매체, ‘폭력 반대’ 입장 밝힌 리자청 회장 명의 광고 성명 게재
- ↑ https://youtu.be/joz4PvzOgu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