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주국 육군군관학교(滿洲國 陸軍軍官學校)는 만주국(滿洲國)에 있었던 장교 양성 기관이다. 1932년 3월 만주국 수립 후 급증하는 장교 수요를 충당하기 위해 처음에는 봉천(奉天)에 6개월 ~ 2년의 단기과정을 설치했다가 나중에 정규 사관학교의 필요성이 생겨 만주국 수도 신경(新京, 지금의 장춘)에 4년제 육군군관학교를 설립하게 된다.[1]

봉천(奉天) 군관학교

6개월 ~ 2년의 단기과정으로 1932년에 설치되어 9기까지 배출했다. 조선인은 4기부터 입학이 허용되었다 한다.

조선인 졸업자

정일권(丁一權, 1917~1994)[2], 김백일(金白一, 1917~1951)[3]

9기 : 백선엽(白善燁, 1920 ~ )


신경(新京) 육군군관학교

정규 사관학교로 예과 2년, 본과 2년, 사관 실습 6개월을 거쳐 소위로 임관하는 과정인데, 1939년 1기생이 입학한 이래 7기생까지 입학했으나 1945년 만주국 패망으로 3기까지만 졸업, 임관했다.

조선인 졸업자

아래 글에 신경 군관학교 조선인 입학자 전체 명단이 나온다. 각자 주장하는 명단들이 조금씩 차이가 있다.


1기 13명 : 1939년 입학, 1943년 임관.[1]

박임항(朴林恒), 최창언(崔昌彦), 김동하(金東河), 이주일(李周一), 윤태일(尹泰日), 방원철(方圓哲), 김영택(金永澤), 김민규(金敏奎), 최창륜(崔昌崙), 방재순(方在淳), 이순(李淳), 조영원(趙永遠), 이기건(李奇建, 1919~2001)


2기 (?)명 : 1940년 입학, 1944년 임관.[4]

아래 7명은 만주군관학교 2기생 중 일본육사 57기 졸업자임.
박정희(朴正熙, 1917~1979), 이한림(李翰林, 1921~2012)[5], 김영수(金泳秀), 김호량(金鎬梁), 정상수(鄭祥秀), 이섭준(李燮俊), 김재풍(金在豊).[6]
김영수는 필리핀전에서, 정상수는 오키나와전에서 전사했다.[6]


3기 8명 : 1941년 입학[7]

최주종·강봉민 (본과는 일본육사 58기), 강문봉 등 6명 (본과는 일본육사 59기)

참고 자료

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3556) - 제79화 육사졸업생들(9) <장창국> 중앙일보 1982.11.05 종합 7면
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3557) - 제79화 육사졸업생들(10)-국군 수뇌부 <장창국> 중앙일보 1982.11.06
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3558)-제79화 육사졸업생들(11) - 만주군관학교 한인생도 <장창국> 중앙일보 1982.11.08 종합 7면
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3559)-제79화 육사졸업생들(12) <장창국> 중앙일보 1982.11.09 종합 11면
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3560)-제79화 육사졸업생들 (13) 중앙일보 1982.11.10 종합 7면
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3562)<제79화>육사졸업생들(15)|장창국 중앙일보 1982.11.12 종합 7면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