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토르 표도로비치 그루시코(Виктор Фёдорович Грушко, Viktor Fyodorovich Grushko, 1930.07.10 ~ 2001.11.20)는 구 소련 국가보안위원회(KGB) 요인으로 제2인자인 부의장까지 지냈다. 1991년 8월 고르바초프 정부를 전복하려는 쿠데타에 가담했다가 실패한 후 체포되어 기소되었으나 병으로 석방되었다. 이 실패한 쿠데타는 구 소련 붕괴의 단초가 되었다.
아들 알렉산드르 그루시코는 현재 러시아 외무차관이다.[1]
개요
- Грушко, Виктор Фёдорович (Grushko, Viktor Fyodorovich) 러시아어 위키
- Viktor Fyodorovich Grushko (1930-2001) wikidata
- Viktor Fyodorovich Grushko
북한 김일성의 KGB 요원 전력이 담긴 전문 유출
그가 1978년 4월 20일 KGB 홍콩 지부로 발송한 전문이 1985년 영국으로 망명한 부하 Oleg Gordievsky에 의해 유출되어 폭로되었는데, 거기에는 북한 김일성이 해방 전 소련군 88여단에서 대위로 근무하면서 동시에 NKVD (KGB 전신) 요원이었다고 나와 있다. 아래는 그가 발송한 전문의 관련 부분이다.
KGB는 배신의 감정과 경멸의 감정을 가지고 김일성 그 사람을 대했다. 김일성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화려한 유격대 활동을 펼치고 나서 1945년 8월에 일본의 굴레에서 자신의 나라를 해방시킨, 전쟁 시절의 레지스탕스 영웅인 것처럼 행세하였다. 하지만 본부는 김일성이 심지어 1945년 8월에 조선에 있지도 않았음을 잘 알고 있었다. 조선이 소련군에 의해 해방되고 있었던 동안에, 김일성은 러시아에 서 붉은 군대 대위이자 동시에 NKVD(KGB의 전신) 첩보원으로 일해오고 있던 중이었다.
All three of the countries where the Centre found intelligence operations most difficult to conduct - Albania, China and North Korea - were Communist states outside the Soviet bloc. Tight security in Kim Il Sung's neo-Stalinist police state made the work of the KGB Residency in Pyongyang as difficult as in Beijing. Moscow viewed with alarm Kim's growing flirtation with China during the early 1970s. In 1973 the Soviet Union suspended arms shipments, and the PRC became North Korea's main arms supplier. Two years later during what the North Korean press portrayed as a triumphal tour of foreign capitals, Kim Il Sung visited Beijing and Bucharest but missed out Mosc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