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 운동가
국적 대한민국
출생일 1967년 9월 11일
출생지 대구광역시 동구 효목동
사망일 2013년 7월 26일
사망지 한강
가족 배우자 및 슬하 2녀
학력 대륜중학교

대륜고등학교
영남대학교 경제학과(학사)

생애

성재기는 1967년 9월 11일 대구직할시 동구 효목동(現 대구광역시 동구 효목동)에서 태어났다. 보수의 심장으로 묘사되는 대구의 분위기과 효목동을 흐르는 금호강은 성재기의 어린 시절 가치관 형성에 많은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성재기는 대구 수성구에 위치한 대륜중학교와 대륜고등학교를 거쳐 스무 살인 1986년 영남대학교 상경대학 경제학과(現 경제금융학부)에 입학했다. 대한민국의 건장한 아들이었던 성재기는 대학 재학 중이던 1987년, 육군에 입대하여 11사단에서 근무를 하였으며 1990년에 만기 전역하였다.

대학원에 진학하여 학업을 지속하고 싶었으나 집안 형편이 여의치 않았던 성재기는 1992년 영남대학교 졸업 후 보험 회사 영업사원으로 근무하였다. 한때 대구의 나이트클럽에서 근무하기도 했다. [1] 그러다 새천년을 앞둔 1999년 성재기는 인생에 큰 충격을 준 뉴스를 접하게 된다. 헌법재판소가 자행한 군가산점 폐지가 바로 그것[2]이었다. 성재기는 충격적인 소식을 접하고 이듬해인 2000년부터 남성 인권 신장을 위한 운동에 투신한다. 2006년 11월 30일부터는 날이 갈수록 악화되고 끝없이 추락하는 남성 인권을 위해 일생을 바치겠다는 각오로 그동안 운영하던 토마스 맥플라이라는 명칭의 창업 컨설팅 회사도 매각하고 남성 인권 운동에 전념했다.

2006년 11월 26일 남성연대라는 이름의 남성인권운동 단체를 설립하였다. 이후 성재기는 자신의 사비를 들여서라도 성폭행 무고 피해자, 성폭행 허위 신고 피해자, 이혼 소송 피해자 등등의 피해자들을 위해 소송 비용과 변호 비용을 지원하였다. 그러나 정부와 개인의 막대한 지원을 받는 여성단체들과 달리 남성연대는 설립 이후로 자금난을 겪었고 남성인권운동 단체의 자금난과 남성 인권운동의 대의(大義)를 알리기 위해 2013년 7월 26일 한강에 몸을 던지는 퍼포먼스를 실행하였으나 그 도중 사망한다.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