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1886년 미국 북감리회에서 파견된 미국인 선교사 메리 스크랜튼이 서울 정동에 여학교를 세웠으며 이듬해인 1887년 고종황제가 이화학당이라는 이름을 하사한다. 해방 이후 1946년 종합대학 인가를 받아, 이화여자전문학교에서 이화여자대학교로 승격하였다.

페미니즘

페미니즘과 뗄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이화여자대학교는 여성학대한민국에서 최초로 도입한 대학으로, 1977년에 여성학을 교양강의로 개설하였고 1982년에 여성학 석사과정 1990년에 여성학 박사과정을 개설하였다. 뿐만 아니라 이화여자대학교의 자체 신문인 이대학보는 2005년 기사에서 여성학을 '이화의 얼굴이자 역사 그 자체'[1]라고 언급했다.

논란

의과대학법학전문대학원을 보유하고 있다. 그런데 두 곳 모두 여자만 입학 가능하다는 점이 큰 문제가 되고 있다. 특히 법학전문대학원은 정원 100명이라는 어마어마한 규모로 설립되었음에도 남성의 입학을 불허하여 문제가 불거졌는데, 이런 문제의식으로 헌법재판이 진행되었지만 헌법재판소는 여대의 전통을 존중한다며 여성만 입학가능한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을 합헌이라 판결[2]하였다. 이는 일개 사학재단의 전통을 국민의 평등권에 우선한 것이라 많은 비판을 불러왔다.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