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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4·3 사건(濟州四三事件)은 1947년 3월 1일 경찰의 발포사건을 기점으로 하여 1948년 4월 3일 발생한 봉기로부터 1954년 9월 21일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력 충돌과 진압 과정에서 민간인들이 희생당한 사건이다.

정의

제주4 3사건은 1947년 3월 1일 경찰의 발포사건을 기점으로 하여, 경찰서청의 탄압에 대한 저항과 단선 단정 반대를 기치로 1948년 4월 3일 남로당 제주도당 무장대가 무장봉기한 이래 1954년 9월 21일 한라산 금족지역이 전면 개방될 때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장대와 토벌대간의 무력충돌과 토벌대의 진압과정에서 수많은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이다.인용 오류: <ref> 태그를 닫는 </ref> 태그가 없습니다

  1. 남로당제주도(島)당은 1948년 5․10제헌의원 선거 때 전국 200개 선거구 중 유일하게 북제주 2개 선거구 선거를 파탄 내어 대한민국 건국을 방해하였다.[1]
  2. 선거인 등록율 91.7%, 투표율 95.5%로 국민 절대 다수의 참여와 지지로 1948년 8월 15일 건국된 대한민국 정부에 반대하여 남로당제주島당은 8년 7개월 17일 간 항적하였다.[2]
  3. 4․3 주동자 제주인민해방군 초대 사령관 김달삼은 박헌영 지령에 따라 살인 방화 테러로 지하 선거를 실시하여 52,350명 투표지를 가지고 월북하여 북한 정권 수립에 앞장섰다. [3]
  4. 4․3 주동자 제2대 제주인민해방군 사령관 이덕구는 1948년 10․19여순반란사건 직후인 10월 24일 대한민국을 상대로 선전포고하고 항적했다.[4]
  5. 4․3주동자 김달삼, 안세훈, 강규찬, 고진희, 이정숙, 문등용은 월북하여 북한 제1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이 되어 북한정권 수립에 앞장섰고,[5] 안세훈, 강규찬, 고진희, 조몽구 등은 월북했다가 6․25 때 북한인민군과 함께 남침하여 대한민국을 적화시키기 위해 앞장섰다.[6]
  6. 1948년 4․3사건 발발 후부터 1954년 9월 21일 한라산을 개방할 때까지[7] 제주도내 모든 마을 주위에 성을 쌓고 남로당 공비들의 습격 살인 방화 약탈 납치를 막기 위하여 남녀노소가 총동원되어 밤낮으로 경비를 섰다. 마을 주위 축성(築城) 시기는 마을마다 일정하지 않다. 특히 중산간 마을은 소개령과 그 해제로 인한 복귀 및 파괴된 주택재건 시기와 연계되어 있기 때문인데 예를 들면 안덕면 화순리는 1948년 8월, 애월읍 납읍리는 1949년 4월 29일 소개령 해제 이후부터이다.
  7. 6․25전쟁 직후 남로당제주도(島)당은 각 읍․면 별로 인민군지원환영회를 조직하여 빨치산과 함께 공세를 강화하고, 북한인민군이 상륙하면 그들과 합세하여 대한민국 전복을 획책했다.[8]
  8. 남로당제주도당 인민해방군들은 인공기를 곳곳에 게양하여 김일성 장군 만세를 부르며 건국 인사들을 살해하고 방화 약탈을 자행하였다. [9][10]
  9. 대한민국 정부는 1948년 11월 17일 국무회의에서 제주도지구 계엄선포를 의결하면서 제주4․3사건의 성격을 ‘제주도 반란’이라고 규정했다. [11]
  10. 제주4․3발발의 주체는 남로당이고 남로당은 조선공산당의 후계체이며 남로당 강령은 마르크스레닌 사상에 입각한 공산주의체제 국가 건설을 목표로 했다.
  11. 1998년 11월 23일 김대중 대통령은 미국 CNN방송에 출연하여 ‘제주4․3사건은 공산당의 폭동으로 일어났다’고 전 세계에 천명하였다. [12]
  12. 4․3폭동의 주체인 남로당 세력들이 남긴 유일한 문서인 <제주도인민유격대 투쟁보고서>에는 1948년 3월 중순경 상부로부터 무장 반격 지령을 받아 폭동을 일으켰다고 밝히고 있다.
  13. 남로당제주도(島)당 대정면당 위원장 이운방은 “4․3주동자는 빨갱이로 봐야지, 최종 목적은 공산주의니까. 그들의 우선 목적은 통일조국 건설이고”라고 증언했다.[13]
  14. 남로당 제주도민전 문화부장으로 4․3폭동의 두령급이었던[14] 김봉현은 김달삼 휘하 2․7지대장으로 나타난다.

각주

  1. <제주4․3사건진상조사보고서>, 제주4․3사건진상규명 및 희생자명예회복위원회, 210쪽, 2003.12.15
  2. <대한민국 건국사>, 양동안, 현암사, 571쪽, 2001.12.5
  3. <4.3은 말한다> 3권, 제민일보4․3취재반, 전예원, 258~259쪽, 1995.3.20
  4. <제주도인민들의 4.3무장투쟁사>, 김봉현․김민주, 오사카 문우사, 165쪽, 1963.12.15
  5. <남로당 연구> 1권, 김남식, 돌베개, 530~531쪽, 1984.4.25
  6. <20세기 제주인명사전>, 김찬흡, 제주문화원, 39~40, 84, 279~280, 379~380쪽, 2000.3.10.
  7. <제주4․3사건진상조사보고서>, 제주4․3사건진상규명및희생자명예회복위원회, 356쪽, 2003.12.15.
  8. <제주도인민들의 4.3무장투쟁사>, 김봉현․김민주, 오사카 문우사, 257쪽, 1963.12.15.
  9. ≪제주항쟁≫ 창간호, 제주4․3연구소, 실천문학사, 181쪽, 1991.
  10. <제주도인민들의 4․3무장투쟁사>, 김봉현․김민주, 일본 오사카 문우사, 153~154쪽, 1963.12.15.
  11. ≪관보≫ 제14호, 1948.11.17.
  12. ≪한라일보≫, ‘4.3’ 공산당 폭동으로 발생. 1998.11.24.
  13. <이제사 말햄수다> 1권, 제주4․3연구소, 한울, 198쪽, 1989. 4. 3.
  14. <제주사람들의 설움>, 김봉현 고문승, 32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