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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 피격사건'''은 [[2010년]] [[3월 26일]]에 [[백령도]] 근처 해상에서 [[대한민국 해군]]의 [[포항급 초계함|초계함]]인 [[PCC-772 천안]]이 뇌격되어 침몰한 사건이다. [[대한민국 정부]]가 발표한 공식 명칭은 '''천안함 피격 사건'''이다. 이 사건으로 [[대한민국 해군]] [[병사 (군인 계급)|장병]] 40명이 사망했으며 6명이 실종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천안함의 침몰 원인을 규명할 민간·군인 합동조사단을 구성하였고, 대한민국을 포함한 [[오스트레일리아]], [[미국]], [[스웨덴]], [[영국]] 등 5개국에서 전문가 24여 명으로 구성된 합동조사단은 2010년 5월 20일 천안함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어뢰공격으로 침몰한 것이라고 발표했지만 스웨덴은 "합조단에 지원으로 참여했으며, 스웨덴이 참여한 부분에 대해서 동의한다"고 하여 조사결과 동의에 침묵했다.<ref>[http://www.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439547.html 스웨덴, 천안함 북한 공격론에 ‘노코멘트’ ]</ref><ref>{{뉴스 인용|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1&aid=0003286391|제목=합조단 "천안함, 북 어뢰 폭발로 침몰"|출판사=연합뉴스|날짜=2010-05-19}}</ref><ref>{{뉴스 인용|url=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10051901030627026002|제목=<‘천안함’ 공식발표 D-1> ‘스모킹 건’ 곳곳서 확인|출판사=문화일보|날짜=2010-05-19|저자=정충신 기자}}</ref> 이러한 조사 결과 발표는 [[미국]]과 [[유럽 연합]], [[일본]] 외에 [[인도]] 등 비동맹국들의 지지를 얻어<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38&aid=0002071400 정몽준 "정세균의 천안함 입장표명, 늦었지만 다행"] 한국일보 2010년 5월 26일</ref>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안건으로 회부되었으며<ref>{{뉴스 인용|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 mid=sec&sid1=100&oid=057&aid=0000133082|제목="천안함 군사도발, 유엔 안보리 회부"|출판사=mbn|날짜=2010-06-05|저자=강상구 기자}}</ref> 안보리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천안함을 공격했다는 조사결과에 비추어 우려를 표명한다"는 내용과 함께 "공격을 규탄한다"는 내용의 의장성명을 채택하였다.<ref>{{뉴스 인용|url=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0/05/31/2010053100113.html|제목='對北조치' 이후 한반도, 우군없는 北… '천안함 외교전' 완패|출판사=조선일보|날짜=2010-05-31|저자=정우상 기자}}</ref> 그러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자신들과 관련이 전혀 없다고 주장하고, [[중국]]과 [[러시아]]가 반대하면서 '안보리는 이번 사건과 관련이 없다고 하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반응, 그리고 여타 관련 국가들의 반응에 유의한다'는 형식적으로나마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입장이 반영됐다는 것이 외교가의 평가다.<ref>{{뉴스 인용|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1&aid=0003373564|제목=<안보리 '천안함 의장성명' 내용과 의미>|출판사=연합뉴스|날짜=2010-07-09|저자=노효동 기자}}</ref><ref>{{뉴스 인용|url=http://news.hankooki.com/lpage/world/201006/h2010061902431822530.htm|제목=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 "천안함 철저 조사해야"|출판사=한국일보|저자=이대혁 기자|날짜=2010-06-19}}</ref>
2010년 3월 26일 북괴군이 어뢰를 쏘아서 남한의 천안함을 폭침시킨 사건


합동조사단의 조사결과에 "특대형 모략극"이라며 반발했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안보리 성명을 사실상 수용하는 모습을 보였다.<ref name="北, 안보리 성명 사실상 수용… 대화 통한 출구전략’ 가능성"/><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3&aid=0003765838 北 "천안함 사건, 특대형 모략극"] 뉴시스 2011년</ref><ref name="서울신문1"/> 천안함의 침몰에서 인양, 조사 발표까지 대한민국 사회와 주변국의 관심을 끌었으며, 침몰 원인에 여러 주장이 제기되었고 규명과정에서 언론과 각계 인사들은 다수의 문제를 제기하였다. 사건으로 인해 남북간의 긴장이 고조되었으며, 대한민국에서는 침몰 원인에 대해 각기 다른 해석으로 갈등을 빚었다.<ref>{{뉴스 인용|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1&aid=0003292806|제목=<천안함 논란.의혹 남남갈등만 부추겨>|출판사=연합뉴스|날짜=2010-5-25|저자=이상정 기자}}</ref>
== 사건 개요 ==
2010년 3월 26일(금) 21:22경 백령도 인근 해상(37˚55'45'N, 124˚36'02'E, 백령도 서남방 25km)에서 정상적인 임무수행 중이던 해군 2함대 소속 천안함(초계함)북한의 어뢰 공격에 의해 침몰되었으며, 승조원 총 104명 중 46명이 전사하고 58명은 생존하였다.


== 개요 ==
=== 사건 발생 전 ===
[[파일:2010.4.16 천안함 마지막 훈련 모습 (7445518816).jpg|thumb|250px|left|PCC-772 천안함의 마지막 훈련 모습]]
천안함의 함교에 당직사관 등 7명, 전투상황실 7명, 통신실 2명, 함수포 상비 탄약고 3명, 기관조종실 7명, 유도조종실 1명, 디젤기관실 2명 등 총 29명이 당직근무 중이었고, 기타 인원은 식당, 침실 등에서 휴식 및 취침하고 있었다. 함장은 21:05경 함내 순찰을 마치고 함장실로 들어와 컴퓨터 e메일·게시판과 KNTDS2) 화면을 확인 중이었다. 천안함의 당시 상황은 21:22경 근무상황에 비추어 볼 때 정상적으로 임무수행 중에 있었다.
[[파일:열상 카메라로 촬영한 천안함 침몰 사건.jpg|섬네일|[[열상 카메라]]로 촬영한 폭침 당시의 모습]]
[[2010년]] [[3월 26일]]에 [[백령도]] 해상에서 [[대한민국 해군]]의 [[포항급 초계함|초계함]]인 [[PCC-772 천안|천안함]]이 북한의 뇌격에 굉침된 사건이다. 사건 발생 직후 출동한 인천해양경찰서 소속 해안경비정에 의해 천안함에 탑승하고 있던 승조원 104명 중 58명이 구조되었으며 나머지 46명은 실종되었다. 이후 실종자 수색과 선체 인양이 진행되면서 [[2010년]] 4월 24일 17시 기준으로 실종자 46명 중 40명이 사망자로 확인되었으며 6명이 실종자로 남아 있다.<ref>{{뉴스 인용 |저자 = 안은별 기자|제목 = 천안함 함수 인양 완료…애타는 실종자 가족들 바지선 승선 |url =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10100424120654&section=05|출판사 = [[프레시안]]|날짜 = 2010-04-24|확인일자 = 2010-04-24|인용 =}}</ref>


한편 일반에 공개되지 않은 수색과정에서 [[3월 30일]]에는 UDT 대원인 [[한주호]] 해군[[준위]]가 작업 중 실신하여 병원으로 후송되었으나 순직하였다. 김현진 상사, 김정호 상사는 실신해 치료를 받았다. [[4월 2일]]에는 저인망어선 금양98호가 천안함 실종자 수색을 마치고 조업구역으로 복귀하던 중 서해 대청도 서쪽 55km 해상에서 침몰해 탑승 선원 9명 중 2명이 숨지고 7명이 실종됐다.<ref>{{뉴스 인용 |저자 = 최정인 기자|제목 = 금양98호 수색작업 본격화 |url =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1&aid=0003227321|출판사 = 연합뉴스|날짜 = 2010-04-16|확인일자 = 2010-04-16|인용 =}}</ref>
=== 사건 발생 후 ===
천안함의 생존자 58명은 후미의 충격과 함께 ‘꽝! 꽈~아앙’(1~2초간) 소리를 들었고 정전과 동시에 일부 격실에 해수가 유입되면서 갑자기 우현으로 90° 기울어졌다고 진술하였다. 함장은 사건 발생 시의 충격으로 함장실에 갇혀 있다가 통신장 등 4~5명의 승조원이 내려준 소화호스를 허리에 묶고 외부 좌현갑판으로 탈출하였으며, 이때 천안함의 생존자 중 20여 명이 갑판에 모여 있었다.


사고 원인은 초기에는 어뢰설, 기뢰설, 내부폭발설, 피로파괴설, 좌초설 등 다양했으나 <ref>{{뉴스 인용 |저자 = 이세영 기자|제목 = 천안함 침몰 의혹 4대 쟁점|url =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1&aid=0003193970|출판사 = [[연합뉴스]]|날짜 = 2010-03-28|확인일자 = 2010-03-28|인용 =}}</ref> 조사가 진행되면서 북한의 뇌격으로 좁혀졌다. 당초 정부와 민군 합동조사단은 뇌격설과 좌초설의 가능성을 조사했었다.<ref>{{뉴스 인용|제목 = 천안함 침몰, 0.000000000146그램 화약성분으로 논란|url =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152&aid=0001942823|출판사 = 참세상|저자 = 홍석만 기자|쪽 = |날짜 = 2010-05-07|확인일자 = 2010-05-08}}</ref><ref>{{뉴스 인용|제목 = 합조단, 천안함 검출 화약 성분 '어뢰' 결론|url = http://imnews.imbc.com/replay/nwtoday/article/2619389_5782.html|출판사 = 문화방송 |저자 =백선영 기자|쪽 = |날짜 = 2010-05-09|확인일자 = 2010-05-09}}</ref>
함장이 함미쪽을 확인한 결과, 연돌 이후 부분이 보이지 않았고, 약한 기름냄새를 맡았으며, 승조원이 모여 있는 함수 부분은 우현으로 90° 기울어져 있는 것을 보고 필요한 조치를하였다. 함장은 먼저 부장에게 함정 내부에 갇힌 승조원 구출을 지시하고 작전관에게 인원을 파악하고 구조함 접근 시 함에서 내릴 수 있는 곳을 확인하도록 지시하였다. 또한 중위 등 6 명에게 부상을 당해 움직일 수 없는 하사(요추골절), 하사(대퇴부골절), 상사(대퇴좌상), 상사(어깨손상), 상사(늑골골절)를 부축하거나 등에 업어 구조하도록 조치하였다. 함장은 함수에 있는 생존자를 구조한 후 인원을 점검한 결과 총 58명이었으며, 고속정이 올 때까지 대기할 것을 지시하였다.
<ref>{{뉴스 인용|제목 = 합조단 “천안함 화약은 西方어뢰 성분”|url=http://www.segye.com/Articles/News/Politics/Article.asp?aid=20100508000080&subctg1=&subctg|출판사 = 세계일보 |저자 =박병진 기자|쪽 = |날짜 = 2010-05-09|확인일자 = 2010-05-09}}</ref><ref>{{뉴스 인용 |제목    = "천안함 침몰 어뢰, 우방국 성분"|url=http://www.sisaseoul.com/news/articleView.html?idxno=21263 |출판사  = 시사서울 |저자=최봉석 기자|쪽=|날짜 = 2010-05-08 |확인일자 = 2010-05-08}}</ref><ref>{{뉴스 인용|url=http://www.segye.com/Articles/News/Politics/Article.asp?aid=20100520004493&subctg1=&subctg2=|제목=천안함 침몰사건 조사결과 발표문 전문|출판사=세계일보|날짜=2010-05-21}}</ref>
<ref>{{뉴스 인용|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1&aid=0003286088|제목=천안함 침몰사건 조사결과 발표문 전문|출판사=연합뉴스|저자=노재현 기자|날짜=2010-05-20}}</ref>


=== 일지 ===
함장은 22:32~22:42경 2함대사 22전대장과 전화통화를 하였고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파일:Cheonan stem sterm map.svg|썸네일|250px|침몰된 천안함의 함수와 함미 발견.]]
{{인용문|“뭐에 맞은 것 같습니다."  
[[파일:ROKS Cheonan salvage and recovery site, toward island.jpg|thumb|250px|인양 현장 모습]]
[[파일:US Navy 100913-N-4366B-501 Rear Adm. Hyun Sung Um, commander of Republic of Korea (ROK) Navy 2nd Fleet, and Rear Adm. Seung Joon Lee, deputy comman.jpg|right|thumb|250px|평택 제2함대 사령부로 옮겨진 천안함, 2010년 9월 13일 한미 해군 장성들이 인양된 천안함을 둘러보고 있다.]]
* [[2010년]] [[3월 26일]] 21시 12분 : 천안함 승조원이 해안 통신병에게 부상사실 통보(러시아보고서), 국방부는 사적통화로 해명 <ref name="한겨레러시아">[http://www.hani.co.kr/arti/politics/diplomacy/432288.html 정부 ‘러시아 천안함 보고서’ 반박과 엇갈린 주장] 한겨레, 2010.07.27</ref>
* [[2010년]] [[3월 26일]] 21시 15분 : 해경이 "(배에) 물이 샌다"는 통보를 받음, 이후 천안함은 경비기동의 3.5배 속도(18노트)로 이동<ref>[http://m.ohmynews.com/NWS_Web/Mobile/at_pg.aspx?cntn_cd=A0001357986 9시15분 천안함에선 대체 무슨 일이] 오마이뉴스, 2010.04.04</ref>
* [[2010년]] [[3월 26일]] 21시 15분 : 평택 해군 2함대사령부가 해군작전사령부에 최초 상황보고, 2함대사령관과 해작사 작전처장의 통화<ref name="MBC상황일지">[http://imnews.imbc.com/replay/nwdesk/article/2600562_5780.html 軍 상황관련 일지, 밤 9시 15분에 상황 발생] MBC, 2010.04.03</ref><ref name="통일뉴스문건">[http://www.tongil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90854 21:15분경 천안함이 침수되어 조치 중] 통일뉴스, 2010년 07월 01일</ref><ref>[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0/06/11/2010061101809.html, 천안함 사건시간 15분 'ㄴ' 그려 45분으로 조작] 조선일보, 2010.06.11</ref> 최고보고는 침수로 인한 좌초추정,사건당일은 어뢰보고없음<ref name="통일뉴스문건" /><ref name="미디어오늘 좌초">[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97434 해작사 작전처장 "천안함 '9시15분 좌초'라 보고했다"] 미디어오늘, 2011-09-20</ref>
* [[2010년]] [[3월 26일]] 21시 16분 : 백령도에 있는 방공33진지에서는 폭음을 감지 <ref name="MBC상황일지" /><ref name="통일뉴스문건" />
* [[2010년]] [[3월 26일]] 21시 16분 : 천안함 승조원이 부친과 통화를 하던 중 지금 비상이라며 전화를 끊음 <ref name="MBC상황일지" /><ref name="통일뉴스문건" />
* [[2010년]] [[3월 26일]] 21시 17분 : 천안함 내부 폐쇄회로카메라(CCTV) 영상중지(러시아보고서), 국방부는 날짜오류로 해명 <ref name="한겨레러시아"/>
* [[2010년]] [[3월 26일]] 21시 22분 : 대한민국 해군 제 2 함대 소속 포항급 1, 200톤 급 초계함 '천안함'이 침몰(발생 시간)
* [[2010년]] [[3월 26일]] 21시 28분 : 2함대사, 천안함 침몰 상황 접수
* [[2010년]] [[3월 26일]] 21시 30분 : 2함대사, 대청도 고속정편대(5척) 긴급출항 지시
* [[2010년]] [[3월 26일]] 21시 31분 : 2함대사, 속초함에 사건현장으로 전속력 항해 지시
* [[2010년]] [[3월 26일]] 21시 32분 : 2함대사, 인천해경(해경 501함, 1002함), 관공선 긴급지원 요청
* [[2010년]] [[3월 26일]] 21시 34분 : 2함대사, 긴급조치반 소집
* [[2010년]] [[3월 26일]] 21시 40분 : 2함대사, 위기조치반 소집, 전 작전요소 전투배치
* [[2010년]] [[3월 26일]] 21시 47분 : 2함대사, 덕적도 LYNX 헬기 백령도 전개 지시
* [[2010년]] [[3월 26일]] 21시 56분 : 고속정편대(3척) 현장 도착 및 인명구조 시작
* [[2010년]] [[3월 26일]] 21시 57분 : 2함대사, 대잠경계태세 발령
* [[2010년]] [[3월 26일]] 21시 59분 : 2함대사, 공군 탐색 및 구조전력 지원 요청
* [[2010년]] [[3월 26일]] 22시 07분 : 2함대사, 인천해경에 501함, 1002함 RIB 지원 요청
* [[2010년]] [[3월 26일]] 22시 10분 : 고속정편대(2척) 현장 추가 도착 및 인명구조 시작
* [[2010년]] [[3월 26일]] 22시 28분 : 고속정편대(참수리 322호) 1명 구조(천안함 작전관 대위)
* [[2010년]] [[3월 26일]] 22시 41분 : 해경 501함, RIB 2척 현장 도착 및 인명구조 시작
* [[2010년]] [[3월 26일]] 22시 50분 : 관공선(214, 227) 인명구조 시작
* [[2010년]] [[3월 26일]] 23시 13분 : 생존자 58명 이함 및 구조 완료
* [[2010년]] [[3월 26일]] 23시 13분 ~ [[2010년]] [[3월 27일]] 04시 35분 : 천안함 침몰 해역 야간 수색, 환자 후송
* [[2010년]] [[3월 26일]] 23시 30분 : [[대한민국 해양경찰청|해양경찰청]]은 본청과 [[인천지방해양경찰청|인천지청]]에 [[갑호비상|갑호비상령]], [[태안해양경찰서|태안]]{{·}}[[속초해양경찰서|속초지서]],[[동해지방해양경찰청|동해지청]]에 [[갑호비상|을호비상령]]을 발령했다.
* [[2010년]] [[3월 26일]] 23시 50분 : [[대한민국 경찰청|경찰청]]은 [[서울지방경찰청|서울]]{{·}}[[인천지방경찰청|인천]]{{·}}[[경기지방경찰청|경기]]{{·}}[[강원지방경찰청]]에 을호비상령을 발령했다.<ref>{{뉴스 인용 |저자 = 이재준 기자|제목 = 해경 '갑호 비상'…경찰청 '을호 비상' 발령|url = http://www.cbs.co.kr/nocut/Show.asp?IDX=1429632|출판사 = 노컷뉴스|날짜 = 2010-03-27|확인일자 = 2010-03-28|인용 =}}</ref>
* [[2010년]] [[3월 27일]] : [[정운찬]] 국무총리는 [[대한민국 행정안전부|행정안전부]]를 통해 전 행정기관에 당직근무를 강화하고 모든 공직자가 유선 상으로 대기하도록 비상대비 체계를 발령했다.<ref>{{뉴스 인용 |저자 = 윤종석 기자|제목 = `1시간 내 출근하라' 공무원 6년만의 총대기령|url =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1&aid=0003192550|출판사 = 연합뉴스|날짜 = 2010-03-27|확인일자 = 2010-03-28|인용 =}}</ref>
* [[2010년]] [[3월 29일]] : 함미에 공기 주입 시작.
* [[2010년]] [[3월 30일]] : 용트림 바위 앞에서 수색작업을 벌이던 잠수요원 [[한주호]] 준위 사망<ref>{{뉴스 인용|제목 = 잠수요원 1명 순직...사고 직후 동영상 공개|url =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52&aid=0000292305|출판사 = YTN|저자 = 김지선 기자|쪽 = |날짜 = 2010-03-30|확인일자 = 2010-03-31}}</ref><ref name=hanjuho_mediatoday>http://m2.mediatoday.co.kr/articleView.html?idxno=100561</ref>
* [[2010년]] [[3월 31일]] : 기상 악화로, 구조작업에 차질이 빚어졌다. 구조팀은 선내진입에 주력할 것이라고 밝혔다.<ref>{{뉴스 인용 |제목 = <nowiki>[천안함]</nowiki>침몰 6일째, 기상악화로 구조작업 ‘난항’|url = http://www.newsis.com/ar_detail/view.html?ar_id=NISX20100331_0004779767|저자=차성민 기자|출판사 = 뉴시스|날짜 = 2010-03-31|확인일자 = 2010-03-31}}</ref>
* [[2010년]] [[4월 2일]] 22시 30분 : 수색작업을 나서던 저인망어선 금양 98호가 조난신호를 보내고 실종됐다.<ref>{{뉴스 인용 |제목 = <천안함><1보>대청도 근해서 수색 지원 어선 연락 두절|url = http://www.newsis.com/ar_detail/view.html?ar_id=NISX20100402_0004805069&cID=10201&pID=10200|저자=이종열 기자|출판사 = 뉴시스|날짜 = 2010-04-02|확인일자 = 2010-04-02}}</ref>
* [[2010년]] [[4월 3일]] 18시 10분 : 남기훈 원사의 시신 식당 안에서 발견 <ref>{{뉴스 인용 | 저자 = 김인유 기자|제목 = <남 상사 시신 첫 발견 SSU 요원 문답>(종합)|url =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1&aid=0003205252|저자=김인유 기자|출판사 = 연합뉴스|날짜 = 2010-04-03|확인일자 = 2010-04-03}}</ref>
* [[2010년]] [[4월 7일]] 16시경 : 함미 절단면에서 김태석 상사의 시신 발견.<ref>{{뉴스 인용 |제목 = 천안함 [[김태석]] 상사 시신수습(2보)
|url = http://news.naver.com/main/hotissue/read.nhn?mid=hot&sid1=100&gid=467439&cid=466441&iid=206562&oid=001&aid=0003211993&ptype=011|출판사 =연합뉴스|저자=김귀근, 이상헌 기자|날짜 = 2010-04-07|확인일자 = 2010-04-07|인용 =}}</ref>
* [[2010년]] [[4월 8일]] 실종자 가족과, 생존자 가족들의 만남<ref>{{뉴스 인용|제목 = 실종자 가족-생존장병, 눈물의 만남|url = http://imnews.imbc.com/replay/nwdesk/article/2603729_5780.html|출판사 = MBC|저자 = 허유신 기자|쪽 = |날짜 = 2010-04-08|확인일자 = 2010-04-14}}</ref>
* [[2010년]] [[4월 11일]] 천안함 사고 원인 규명할 민간, 군인 합동 조사단 구성<ref>{{뉴스 인용|제목 = 천안함 침몰 민군합동조사단 구성|url = http://imnews.imbc.com/replay/nwdesk/article/2605174_5780.html|출판사 = MBC|저자 = 김대경 기자|쪽 = |날짜 = 2010-04-11|확인일자 = 2010-04-15}}</ref>
* [[2010년]] [[4월 12일]] 끌어올린 함미가 물 밖으로 모습을 드러냄<ref>{{뉴스 인용|제목 = 17일 만에 모습 드러낸 함미|url = http://imnews.imbc.com/replay/nwdesk/article/2605788_5780.html|출판사 = MBC|저자 = 최형문 기자|쪽 = |날짜 = 2010-04-12|확인일자 = 2010-04-15}}</ref>
* [[2010년]] [[4월 15일]] 천안함의 함미가 침몰 20일 만에 인양되었다.
* [[2010년]] [[4월 15일]] 오전 11시 이후 방일민 하사, 서대호 하사, 이상준 하사 등을 포함한 36구의 시신 수습<ref>{{뉴스 인용|제목 = 천안함 실종자 시신 36구 수습|url =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23&aid=0002141441|출판사 = 조선일보|저자 = 이재호 기자|쪽 = |날짜 = 2010-04-15|확인일자 = 2010-04-15}}</ref>
* [[2010년]] [[4월 22일]] 오후 9시 20분 박보람 하사, 연돌(굴뚝) 안에서 발견.<ref>{{뉴스 인용 |제목 = [천안함]실종 박보람 하사 시신 발견|url = http://www.newsis.com/ar_detail/view.html?ar_id=NISX20100422_0004966159&cID=10201&pID=10200|출판사 = 뉴시스|저자 = 온라인뉴스팀|쪽 = |날짜 = 2010-04-22|확인일자 = 2010-04-22}}</ref>
* [[2010년]] [[4월 24일]] 천안함의 함수가 침몰 29일 만에 인양되었다.
* [[2010년]] [[4월 24일]] 오전 10시 54분 박성균 하사, 함수 자이로실에서 발견.<ref>{{뉴스 인용 |제목 = [천안함]박성균 하사 주검으로 복귀|url = http://www.mdtoday.co.kr/mdtoday/index.html?no=125806|출판사 = 매디컬투데이|저자 = 남연희 기자|쪽 = |날짜 = 2010-04-24|확인일자 = 2010-04-24}}</ref>
* [[2010년]] [[4월 29일]] 천안함 침몰로 사망한 46명에 대한 영결식이 엄수됨.<ref>{{뉴스 인용|제목 = 천안함 46명 용사 영결식 오늘 오전 엄수|url =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52&aid=0000296795|출판사 = YTN|저자 = 권준기 기자|쪽 = |날짜 = 2010-04-29|확인일자 = 2010-04-29}}</ref>
* [[2010년]] [[5월 19일]] 민.군 합동조사단이 천안함이 침몰한 백령도 해상에서 수거한 어뢰 파편에 '한자'가 표기된 사실을 근거로 이 어뢰가 중국제 '漁-3G' 음향어뢰로 사실상 결론낸 것으로 알려졌다고 발표<ref>{{뉴스 인용|제목 = 천안함 타격추정 '魚-3G' 음향어뢰|url =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1&aid=0003285466|출판사 = YTN|저자 = 권준기 기자|쪽 = |날짜 = 2010-05-19|확인일자 = 2010-05-20}}</ref>
* [[2010년]] [[5월 20일]] 천안함 침몰 원인을 조사한 민군합동조사단이 천안함의 침몰 원인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뇌격에 의한 것이라고 공식 발표하였다.<ref>{{뉴스 인용|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214&aid=0000141470|제목="천안함, 북한 잠수정에 의한 어뢰 공격" 결론|날짜=2010-05-20|저자=이학수 기자|출판사=MBC}}</ref>
* [[2010년]] [[5월 24일]] 이명박 대통령 천안함 사건 관련 담화문 발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무력 도발시 엄중 대처하고 남북간의 교역 단절
* [[2010년]] [[6월 1일]] 천안함 침몰 원인을 조사하기 위해 [[러시아]] 전문가팀이 방한하여 조사에 착수했다.<ref>{{뉴스 인용|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52&aid=0000301408|제목=러시아 조사단 방한...천안함 조사 착수|출판사=YTN|날짜=2010-06-01}}</ref>
* [[2010년]] [[7월 8일]] 러시아 조사팀의 조사결과가 일부언론에 보도되었으나 러시아정부는 이를 부인했다.
* [[2010년]] [[7월 9일]] [[안전보장이사회]]의 의장성명이 발표되었다.
* [[2010년]] [[9월 13일]] 국방부의 천안함 최종 보고서 발간<ref>[http://news.nate.com/view/20100913n20801 천안함 보고서 발간..."북 어뢰에 피격"] YTN 2010년 9월 13일</ref>


=== 실종자 수색 및 천안함 인양 ===
"뭔거 같애?
[[대한민국 해군]]은 27일 오전 수상함 10여 척과 해난구조함 [[평택함]]을 포함한 대부분의 병력을 사건 지점에 배치했다. 사건 지점에 배치된 100여 명의 [[대한민국 해난구조대|해군 해난구조대]](SSU) 잠수 요원들은 선체의 구멍을 조사했다.<ref>{{뉴스 인용|제목=軍, 초계함 침몰 원인규명 본격 착수|url=http://www.yonhapnews.co.kr/politics/2010/03/27/0521000000AKR20100327049300043.HTML|저자=김귀근, 이상헌 기자|출판사=연합뉴스|날짜=2010-03-27|확인일자=2010-03-28}}</ref> 28일에는 실종자 수색을 위해 [[광양함]]을 추가로 배치했다.<ref>{{뉴스 인용|제목=3천t급 광양함 현장 도착..탐색 지원|url=http://news.nate.com/view/20100328n04946?mid=n0208|저자=김귀근, 이상헌 기자|출판사=연합뉴스|날짜=2010-03-28|확인일자=2010-03-28}}</ref> 수색 과정에서 [[대한민국 해군]]은 침몰 지점으로부터 서남방 16마일 부근에서 구명복 상의 22개와 안전모 15개를 발견했다.<ref>{{뉴스 인용|제목=軍 "천안함 구명복.안전모 등 수거"|url=http://news.nate.com/view/20100328n06195|저자=김귀근, 이상헌 기자출판사=연합뉴스|날짜=2010-03-28|확인일자=2010-03-28}}</ref>
해군 SSU, [[대한민국 해군 특수전전단|UDT]] 대원들과 [[특전사|육군 특전사]]의 잠수요원들이 수색,구조작업에 투입되었다.<ref>{{뉴스 인용|제목=2함대 "한미, 사고현장 합동수색중"|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1&aid=0003194976|저자=김명균.이우성.고은지 기자|출판사=연합뉴스|날짜=2010-03-29|확인일자=2014-04-16}}</ref>
29일 밤, 아시아 최대의 수송함인 [[LPH-6111 독도|독도함]]을 침몰한 천안함의 탐색 및 구조 활동을 지휘하기 위해 현장 해역에 긴급 투입했다.<ref>{{뉴스 인용|제목=수색·구조 난항… 軍 “69시간 생존” 오늘 고비|url=http://www.daejonilbo.com/news/newsitem.asp?pk_no=874623|저자=송원섭 기자|출판사=대전일보|날짜=2010-03-28|확인일자=2010-03-29}}</ref> 31일 함수쪽을 수색한 잠수사는, 격실 안에 물이 가득 차 있다고 증언했다.<ref>{{뉴스 인용|제목=잠수요원 “함수 격실 안에 물 차 있었다”|url=http://news.naver.com/main/hotissue/read.nhn?mid=hot&sid1=100&gid=467439&cid=466441&iid=181299&oid=214&aid=0000138226&ptype=011|저자=송양환 기자|출판사=MBC|날짜=2010-03-31|확인일자=2010-03-31}}</ref>


[[4월 2일]] 수색작업을 돕던 쌍끌이 어선 [[금양98호]]가 22시 30분쯤 조난신호를 보낸 뒤 실종됐다. 이 배는 캄보디아 화물선과 충돌하여 침몰해 탑승 선원 전원이 숨졌다.<ref>{{뉴스 인용|제목=금양98호 수색작업 본격화 |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1&aid=0003227321|저자=최정인 기자|출판사=연합뉴스|날짜=2010-04-16|확인일자=2010-04-16}}</ref>
"어뢰 같은데요, 함미가 아예 안 보입니다.
"함미? 함미 어디부터?


[[4월 3일]] 천안함에서 시신 2구를 발견했는데, 그중 한 명은 남기훈 상사로 확인됐다.<ref>{{뉴스 인용|제목='천안함'서 사망,남기훈 상사는 누구?|url=http://www.mt.co.kr/view/mtview.php?type=1&no=2010040319115382342&outlink=1|저자=김성현 기자|출판사=머니투데이 사회|날짜=2010-04-03|확인일자=2010-04-03}}</ref> 4월 3일 실종자 가족 측이 실종자 수색 작업을 중단해달라는 요청을 했으며, 해군은 실종자 가족 측의 요청을 받아들였다.<ref>{{뉴스 인용 |저자 = 석남훈 기자|제목 = 해군 "4일부터 선체 인양작업 중심으로 전환"|url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0/04/03/2010040300771.html?Dep1=news&Dep2=top&Dep3=top|출판사 = 조선일보|날짜 = 2010-04-03|확인일자 = 2010-04-03}}</ref><ref>{{뉴스 인용 | 저자 = 김홍남 기자|제목 = 천안함 실종자 가족, "군 수색작업 중단을"(1보)|url = http://www.mt.co.kr/view/mtview.php?type=1&no=2010040321511794380&outlink=1|출판사 = 머니투데이|날짜 = 2010-04-03|확인일자 = 2010-04-03}}</ref>
"연돌이 안 보여요, 고속정이나 RIB 빨리 조치해 주십시오.


그리고 4월 7일 함미 절단면에서 김태석 상사가 발견되었다.<ref>{{뉴스 인용|제목=천안함 함미서 발견된 시신은 김태석 상사(6보)|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1&aid=0003211981|출판사=연합뉴스|날짜 = 2010-04-07|확인일자 = 2010-04-07}}</ref>
"생존자는?


=== 기타 수색작업 ===
"8명이고 다수가 피를 흘리며, 못 일어서는 중상자가 2명입니다.}}
30일, 백령도 용트림바위 앞 부표에서 목적이 알려지지 않은 수색 작업을 하던 UDT 대원 [[한주호]] 준위가 작업 도중 실신해 후송 치료 중 사망, 순직했다.<ref name=hanjuho_mediatoday /><ref>{{뉴스 인용|url=http://www.ytn.co.kr/_ln/0103_201003311449301990|제목="당신은 진정한 군인입니다"|출판사=YTN|날짜=2010-03-31|저자=홍선기 기자}}</ref>


=== 사망자 실종자, 생존자 명단 ===
=== 상황 보고 전파 ===
21:28경 천안함 포술장은 정전으로 함내 유·무선을 이용한 통신이 제한되어 휴대전화를 사용하여 2함대 상황장교에게 구조를 요청하였다. 2함대 상황반장이 통화내용을 듣고 상황장교의 휴대전화를 넘겨받아 “배가 우측으로 넘어갔고 구조가 필요하다.”는 내용을 확인한 후 21:30경 문자정보망을 이용하여 대청도에 있던 고속정편대에 긴급출항을 지시하였다.


사망자와 실종자는 모두 1계급 특진과 [[화랑무공훈장]]이 추서되었다. 아래 목록은 모두 특진 후의 계급이다.
21:30경 2함대 당직사관은 지휘통제실에서 천안함 전투정보관으로부터 “천안함이 백령도 근해에서 ‘좌초’되어 함정이 침몰되고 있으니 빨리 지원병력을 보내 달라”는 전화를 받고, 지휘통제실장에게 보고한 후 직통전화로 인천해양경찰서 부실장에게 전화하여 “현재 백령도 서방 우리 함정에서 ‘좌초되었다’는 연락이 왔는데 일단 급한 상황이니 인근에 있는 해경 501함, 1002함을 백령도 서방으로 빨리 보내 달라”고 요청하였다.


* '''사망자 명단'''
인천해양경찰서 부실장은 즉시 대청도 남방 해역에 있던 501함과 소청도 남방 해역에 있던 해경 1002함에 출동할 것을 지시하였다.
* 원사 : 김태석(기관 조정실), 남기훈(원사, 상사 식당), 문규석(중사 휴게실)
* 상사 : 박석원(기관부 침실), 신선준(72포 하부 탄약고), 김종헌(후타실), 민평기(승조원 화장실), 강준(기관부 침실), 최정환(승조원 화장실), 정종율(기관부 침실), 안경환(기관부 침실), 박경수(승조원 화장실)
* 중사(진) : 임재엽(72포 하부 탄약고)
* 중사 : 방일민(승조원 식당-기관부 침실 통로), 서대호(승조원 식당-기 관부 침실 통로), 이상준(승조원 식당), 차균석(유도 행정실), 서승원(디젤 기관실), 조진영(기관부 침실), 손수민(승조원 화장실), 문영욱(제독소), 심영빈(승조원 화장실), 조정규(기관 창고), 김동진(후타실), 박보람(배 밖 연돌), 박성균(자이로실)
* 하사 : 이상민(1988년생, 승조원 식당), 강현구(기관부 침실), 이용상(후타실), 이상희(기관부 침실), 이상민(1989년생, 기관부 침실), 이재민(기관부 침실)
* 병장 : 안동엽(기관부 침실), 박정훈(기관부 침실), 김선명(기관부 침실), 김선호(후타실), 정범구(전기 창고)
* 상병 : 조지훈(승조원 화장실), 나현민(기관부 침실)
* 일병 : 장철희(기관부 침실)
* '''최초 실종자 명단'''
* 준위 : 이창기
* 원사 : 최한권, 남기훈, 김태석, 문규석
* 상사 : 박경수(연평해전 생존자), 강준, 김경수, 박석원, 안경환, 신선준, 김종헌, 최정환, 민평기, 정종율
* 중사 : 임재엽, 문영욱, 이상준, 손수민, 심영빈, 장진선, 조정규, 서승원, 방일민, 박성균, 조진영, 서대호, 차균석, 김동진, 박보람
* 하사 : 이상희, 이용상, 이재민, 강현구, 이상민(1988년생), 이상민(1989년생)
* 병장 : 정범구, 김선명, 박정훈, 안동엽, 김선호
* 상병 : 강태민, 조지훈, 나현민
* 일병 : 정태준, 장철희
* '''생존자 명단'''
* 중령 : 최원일
* 소령 : 김덕원
* 대위 : 이채권, 박연수
* 중위 : 김광보, 정다운, 박세준
* 상사 : 김병남, 김덕수, 오성탁, 김수길, 허순행, 김정운, 강봉철, 오동환, 정종욱
* 중사 : 이광희, 김현래, 조영연, 손윤식, 송민수, 김현용, 김광규,
* 하사 : 홍승현, 육현진, 공창표, 이연규, 허향기, 진경섭, 배성모, 전승석, 함은혁, 박현민, 강은강, 정재환, 김효형, 김기택, 서보성, 정주현, 유지욱, 정용호, 라정수, 신은총, 김정원
* 병장 : 전준영, 최광수, 김용현, 강태양, 최성진
* 상병 : 안재근, 김윤일, 정현구
* 일병 : 김수철, 오예석, 황보상준
* 이병 : 이태훈, 전환수, 이은수


== 침몰 원인 ==
21:32경 2함대 연락장교는 자신의 휴대전화로 옹진군청 소속 어업지도선 214호 선장에게전화하여 “해군 천안함이 백령도 서방에서 침몰 중이니 구조하는 데 지원해 달라”고 요청하였으며, 어업지도선 선장은 옹진군청 담당공무원에게 사건 접수를 통보하고 21:50경에 출항하였다.
=== 대한민국 합동 조사단의 조사 결과 ===
{{위키문헌|천안함 침몰사건 조사결과 발표문|천안함 침몰사건 조사결과 발표문}}
[[파일:Cheonan Site of Separation.svg|썸네일|300px|천안함의 절단 부위]]
[[2010년]] [[5월 20일]] 민군 합동조사단은 (조사단 운영 2010년 3월 31일 ~ 2010년 5월 20일), 인양한 함수, 함미 선체의 변형형태와 사고 해역에서 수거한 증거물들을 조사한 결과, 천안함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 제조한 감응어뢰의 강력한 수중폭발에 의해 선체가 절단되어 침몰하였다고 최종 발표하였다.<ref>{{웹 인용|url=http://www.mnd.go.kr/mndMedia/temp/20100520/1_-12365.jsp?topMenuNo=1&leftNum=4|제목=천안함 침몰사건 조사결과|출판사=국방부}}</ref> 민군 합동조사단은 한국측 10개 전문기관의 전문가 25명과 군 전문가 22명, 국회추천 전문위원 3명, 미국·호주·영국·스웨덴 등 4개국 전문가 24명으로 구성되었다. 이들은 과학수사·폭발유형분석·선체구조관리·정보분석의 4개 분과로 나누어 조사하였다.


==== 근거 ====
=== 승무원 구조 ===
* 선체손상 부위를 정밀계측하고 분석해 보았을 때, 충격파와 버블효과로 인하여, 선체의 용골이 함정 건조 당시와 비교하여 위쪽으로 크게 변형되었고, 외판은 급격하게 꺾이고 선체에는 파단(破斷)된 부분이 있었다.
해군 고속정과 해경함, 관공선 등 모든 작전요소가 동원되어 58명을 구조하였다.  
* 주갑판은 가스터빈실내 장비의 정비를 위한 대형 개구부 주위를 중심으로 파단되었고, 좌현측이 위쪽으로 크게 변형되었으며, 절단된 가스터빈실 격벽은 크게 훼손되고 변형되었다.
* 함수, 함미의 선저가 아래쪽에서 위쪽으로 꺾인 것도 수중폭발이 있었다는 것을 입증한다.
* 함정 내외부의 표면을 면밀히 조사한 결과, 함정이 좌우로 심하게 흔들리는 것을 방지해주는 함안정기에 나타난 강력한 압력흔적, 선저부분의 수압 및 버블흔적, 열흔적이 없는 전선의 절단, 가스터빈실 선체에 나타난 구형압력흔적 등은 수중폭발에 의한 강력한 충격파와 버블효과가 함정의 절단 및 침몰의 원인임을 알려주고 있다.
* 생존자와 백령도 해안 초병의 진술내용을 분석한 결과, 생존자들은 거의 동시적인 폭발음을 1~2회 청취하였으며, 충격으로 쓰러진 좌현 견시병의 얼굴에 물이 튀었다는 진술과, 백령도 해안 초병이 2~3초간 높이 약 100m의 백색 섬광 불빛을 관측했다는 진술 등은 수중폭발로 발생한 물기둥현상과 일치하였다.
* 부상자 상태와 시체검안 결과 파편상과 화상의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고, 골절과 열창 등이 관찰되어 충격파 및 버블효과로 나타날 수 있는 현상과 일치하였다.
* 한국지질자원연구원의 지진파와 공중음파를 분석한 결과, 지진파는 4개소에서 진도 1.5규모로 감지되었으며, 공중음파는 11개소에서 1.1초 간격으로 2회 감지되었다.
* 지진파와 공중음파 폭발원은 동일하였으며, 수중폭발에 의한 충격파와 버블효과의 현상과 일치하였다.
* 1차 미국 측의 선체 변형 형상 분석 결과 수심 약 6~9m, 가스터빈실 중앙으로부터 좌현 3m 위치에서 폭약량 TNT 200~300&nbsp;kg 규모의 폭발이 있었던 것으로 판단되었고, 2차 한국 정부의 시뮬레이션 결과는 동일 지점에서 총 폭약량 TNT 250~360&nbsp;kg 규모의 폭발이 있었던 것으로 분석되었으며 영국 정부 대표도 함께 참여하였다.
* 백령도 근해 조류를 분석해 본 결과, 강한 조류로 인해 기뢰부설은 제한되는 반면, 어뢰 발사에는 영향이 미약한 것으로 판단하였다.
* 폭약성분 분석 결과 HMX는 연돌·함수절단면 등 28개소에서, RDX는 연돌·해저 토양 등 6개소에서, TNT는 함안정기 등 2개소에서 각각 검출됨으로써 HMX, RDX, TNT가 혼합된 폭약성분임을 확인하였다.


===== 증거물 =====
21:56에 고속정 3척이, 22:`10에는 고속정 2척이 천안함에 도착하여 인명구조를 시작하였다. 고속정 편대는 천안함에 홋줄(3인치)을 결속하였고 천안함 작전관이 고속정으로 건너뛰던 바다로 추락하여 고속정에 의해 구조되었다. 함장은 고속정을 이용할 경우에 함정이 흔들려 실족의 위험이 있다고 판단하여 해경정의 RIB 이용을 결심하였다.  
침몰해역에서 프로펠러, 추진모터, 조종장치 등이 수거되었고, 이는 어뢰의 추진동력부로서 결정적인 증거물이다.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해외로 수출할 목적으로 배포한 어뢰 소개 자료의 설계도에 명시된 크기와 형태가 일치하였으며, 추진부 뒷부분 안쪽에 “1번” 이라는 한글 표기는 대한민국이 확보하고 있는 북한의 어뢰에 “4호”라고 표기된 표기방법과 일치한다. 당시 일부 인사들과 인터넷 등에서 북한에서는 1번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는다고 주장하였으나, 최근 장성택의 처형사건에서 1번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으로 확인되었다.<ref>{{뉴스 인용|url=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3/12/14/2013121400231.html|제목=[장성택 전격 처형] 천안함 '1번' vs 장성택 '1번'=조선일보|날짜=2013-12-14}}</ref>
* “1번이란 글씨는 제조과정에서 기술자들이 써놓은 것으로 보인다”면서 “완성품은 알루미늄 외피로 싸여 있어 이를 사용하는 북한군은 내부에 글씨가 있는지 몰랐을 것”이라고 말했다.<ref>{{뉴스 인용|url=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0/05/20/2010052002334.html|제목=합조단 조사결과 발표에도 남는 궁금증|출판사=조선일보|날짜=2010-05-20}}</ref>[[2010년]] [[6월 29일]], 1번이라는 글자는 청색 유성 매직이며, 솔벤트 블루5 색소로 만든 것이라고 밝혔다.
* 현장에서 수거된 어뢰 추진 프로펠러와 침몰한 천안함의 금속 부분의 부식 정도가 거의 비슷한 상태인 점도 어뢰 추진체가 함수와 비슷한 기간 동안 바다 속에 잠겨 있었다는 증거가 된다.<ref name=mbc1>{{뉴스 인용|url=http://imnews.imbc.com/replay/nwdesk/article/2626793_5780.html|제목=천안함 선체 '알루미늄 산화물' 일치|저자=배선영 기자|날짜=2010-05-20|출판사=문화방송}}</ref>
* 서해에서 끌어올렸다는 어뢰 부품에서 동해안 멍게 유생이 발견되었다는 기사가 오마이뉴스를 통하여 제기되었으나, 조사 결과 해당 물체는 멍게 유생은 물론 생물체가 아니었음이 밝혀졌으며 오마이뉴스는 이에 대해 사과하였다.<ref>{{뉴스 인용|제목='붉은 멍게' 보도, 사과드립니다|url=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547822|출판사=오마이뉴스|날짜=2011-4-6|확인일자=}}</ref>
* [[2010년]] [[6월 29일]] 합동조사단은 증거물로 제시한 [[CHT-02D 어뢰]]의 설계도는 CHT-02D의 설계도가 아니라 실제로는 이와 다른 별개의 북한 중어뢰인 PT-97W 어뢰의 설계도였다고 밝혔다.<ref>{{뉴스 인용|제목=북 어뢰, 엉뚱한 설계도 발표했다|url= http://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428069.html|출판사=한겨레신문|저자=권혁철 기자 |쪽=|날짜=2010-6-29|확인일자=}}</ref> 5월 20일 공식 발표 때 총 3종의 CHT-02D 도면이 발표되었으며, 그 실물 크기의 수미터 도면이 잘못 발표되어 추후 실물 크기의 CHT-02D 도면을 다시 발표하였다.
* 어뢰 표면에 붙은 흡착물을 조사해 본 결과 폭발이었으면 알루미늄 산화물이었어야 하는데 물 속에서 오랫동안 천천히 녹이 슬었을 때 만들어지는 수산화물이었다.
* [[6월 22일]] 국방부는 "천안함을 공격한 어뢰와 동일 기종으로 지목한 북한제 어뢰를 홍보하는 카탈로그에 북한의 국가명이 표기됐다"며, “북한제 어뢰를 홍보하는 카탈로그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 보증한다’는 문구가 명기돼 있다”고 말했다. 또한 “이로 미뤄볼 때 카탈로그가 북한 정부가 제작한 게 확실하다”고 말했다.<ref>{{뉴스 인용|url=http://news.kukinews.com/article/view.asp?page=1&gCode=kmi&arcid=0003842195&cp=nv|제목=천안함 공격 어뢰 동일기종 홍보 카탈로그… ‘北서 보증’ 문구 표기 확인|출판사=국민일보|저자=최현수 기자|날짜=2010-06-22}}</ref>


===== 다국적 연합정보분석 =====
22:38경 너울로 인해 천안함 함수에 있는 승조원의 추락 위험이 우려되어 고속정과 천안함 간 홋줄을 풀었고, 22:41경 해경 501함(500톤)의 2척의 RIB이 도착, 천안함에 접근하여 19명을 구조하였다.  
다국적 연합정보분석TF의 확인 결과는 다음과 같다.
* [[황해]]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해군기지에서 운용되던 일부 소형잠수함정과 이를 지원하는 모선이 천안함 공격 2~3일전에 황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해군기지를 이탈하였다가 천안함 공격 2~3일후에 기지로 복귀한 것이 확인되었다. 주변국의 잠수정들은 자국의 모기지 주변에서 활동
* 5월 15일 폭발 지역 인근에서 쌍끌이 어선에 의해 수거된 어뢰의 부품들(각 5개의 순회전 및 역회전 프로펠러 추진모터와 조종장치)은 북한이 해외로 무기를 수출하기 위해 만든 북한산 무기소개책자에 제시되어 있는 CHT-02D 어뢰의 설계 도면과 정확히 일치한다.
* 이 어뢰의 후부 추진체 내부에서 발견된 “1번”이라고 [[잉크]]로 쓰여진 한글 표기는 대한민국이 확보하고 있는 또 다른 북한산 어뢰의 표기방법(4호)과 일치한다.
* 러시아산 어뢰나 중화인민공화국산 어뢰는 각기 그들 나라의 언어로 표기한다. 북한산 [[CHT-02D 어뢰]]는 음향항적 및 음향 수동추적방식을 사용하며 직경이 21인치이고 무게가 1.7톤으로 폭발장약이 250Kg에 달하는 중어뢰이다.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소형잠수정 및 음향/항적추적 어뢰 수출사실 및 시험발사 확인


==== 결론 ====
23:08경 어업지도선 인천 227호는 환자 2명을 구조한 후 백령도로 후송하였고 잔류인원 36명은 해경 501함에 의해 구조되었다.
침몰해역에서 수거된 어뢰 추진동력장치와 선체의 변형형태, 관련자들의 진술내용, 부상자 상태 및 시체검안, 지진파 및 공중음파 분석, 수중폭발의 시뮬레이션, 백령도 근해 조류분석, 폭약성분 분석, 수거된 어뢰부품들의 분석 결과에 대한 국내·외 전문가들의 의견을 종합한 대한민국 국방부 합동조사단의 조사결과는 다음과 같다.
 
* 북한의 소형 잠수함정에서 발사된 250㎏급 감응어뢰 ‘CHD-02D’에 의해 천안함 피격
함장은 RIB이 도착한 후 함수 포대에 모여 있는 인원을 먼저 이송하도록 조치하면서 “환자부터 밑으로 내려가고, 중상자는 잘 부축하라.”고 지시하였다. 생존자들은 함장의 지시에 따라 환자와 이병 등이 먼저 구명정과 RIB을 이용하여 해경 501함으로 이동한 후 함장, 부장, 통신장이 마지막으로 이함하였다.
* 천안함은 어뢰에 의한 폭발로 발생한 충격파와 버블효과에 의해 절단되어 침몰했다.
 
* 폭발위치는 가스터빈실 중앙으로부터 좌현 3m, 수심 6~9m정도이다.
3월 26일 23:13~27일 04:35까지 천안함 침몰 지역 부근을 수색하였고 해경 501함에 탑승 중인 51명은 고속정편대로 환승하였다가, 다시 초계함으로 재환승하여 3월 27일 14:00경 평택항에 도착하였다.
* 무기체계는 북한에서 제조한 고성능폭약 250kg규모의 '''CHT-02D''' 어뢰로 확인되었다.
 
== 천안함 침몰사건 합동조사결과 보고서 ==
천안함 침몰사건 합동조사결과 보고서는 4개국 12개 민간연구기관 및 군의 총 73명의 전문가가 과학수사, 함정구조, 폭발물, 정보 분석 등 다양한 분야의 조사 및 보고서 작성에 적극 참여하였고, 보고서 내용에 전원이 동의하여 국제적으로 검증된 자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대한민국의 조작극이라고 비난하였고 대한민국 내에서도 조사 결과에 사실과 다른 의혹을 제기하고 유언비어를 유포하는 등 무책임한 언행을 하는 게 현실이다. 최근까지도 천안함 피격사건이 침몰 사건인것 처럼 표시한 위키백과 등이 좋은 예이다.
 
=== 개요 ===
국방부는 2010년 3월 26일, 천안함 침몰 이후 민-군 합동 조사단을 구성하여 침몰원인 규명을 위한 조사 활동에 착수하였다. 조사 과정의 신뢰성을 제고하기 위해 국내 12개 민간기관의 전문가 25명과 군 전문가 22명, 국회추천 위원 3명, 미국-호주-영국-스웨덴 4개국 전문가 24명으로 조사단을 편성하고, 과학수사-함정구조 및 관리-폭발유형분석-정보분석 등 4개 분과루 나누어 조사를 진행하였다.
 
=== 결과 ===
인양한 함수, 함미 선체의 변형형태와 사고 해역에서 수거한 증거물들을 조사한 결과, 천안함은 북한에서 제조한 감응어뢰의 강력한 수중폭발에 의해 선체가 절단되어 침몰한 것으로 판단하였다.
 
#선체 손상 부위를 정밀계측하여 분석한 결과 충격파와 버블효과로 인하여 선체의 용골이 함정 건조 당시와 비교하여 위쪽으로 크게 변형되었고, 외판은 급격하게 꺾이고 선체에는 파단된 부분이 있었다. 주갑판은 가스터빈실 내 장비의 정비를 위한 대형 개구부 주위를 중심으로 파단되었고, 좌현 측이 위쪽으로 크게 변형되었으며, 절단된 가스터빈실 격벽은 크게 훼손되고 변형되었다.
#함정 내·외부의 표면을 면밀히 조사한 결과 함정이 좌우로 심하게 흔들리는 것을 방지해 주는 함안정기(艦安定器)에 나타난 강력한 압력흔적, 선저 부분의 수압 및 버블흔적, 열(熱)흔적이 없는 전선의 절단, 가스터빈실 선체에 나타난 구형압력흔적 등은 수중폭발에 의한 강력한 충격파와 버블효과가 함정의 절단 및 침몰의 원인임을 알려주고 있다.
#생존자들은 거의 동시에 폭발음을 1~2회 청취하였으며, 충격으로 쓰러진 좌현 견시병의 얼굴에 물이 튀었다는 진술, 백령도 해안 초병이 2~3초 동안 높이 약 100m의 백색 섬광불빛을 관측했다는 진술 등을 분석한 결과 이는 수중폭발로 발생한 물기둥 현상과 일치하였다. 또한 부상자 상태와 시체검안 결과 파편상과 화상의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고, 골절과 열창 등이 관찰되어 충격파 및 버블효과로 나타날 수 있는 현상과 일치하였다.
#한국지질자원연구원의 지진파와 공중음파를 분석한 결과 지진파는 4개소에서 진도 1.5규모로 감지되었으며, 공중음파는 11개소에서 1.1초 간격으로 2회 감지되었다. 지진파와 공중음파 분석 결과 폭발원은 동일하였으며, 이것은 수중폭발에 의한 충격파와 버블효과의 현상과 일치하였다.
#1차 미국 측의 선체 변형 현상 분석 결과 수심 약 6~9m, 가스터빈실 중앙으로부터 좌현 3m 위치에서 총 폭약량 TNT 200~300kg 규모의 폭발이 있었던 것으로 판단되었고, 2차 한국 측의 시뮬레이션 결과는 동일 지점에서 총 폭약량 TNT 250~360kg 규모의 폭발이 있었던 것으로 분석되었으며 영국 측도 함께 참여하였다.
#백령도 근해 조류를 분석해 본 결과 강한 조류로 인해 기뢰부설은 제한되는 반면, 어뢰 발사에는 영향이 미약한 것으로 판단하였다.
#폭약성분 분석 결과 HMX는 연돌·함수절단면 등 28개소에서, RDX는 연돌·해저 토양 등 6개소에서, TNT는 함안정기 등 2개소에서 각각 검출됨으로써 HMX, RDX, TNT가 혼합된 폭약성분임을 확인하였다.
#민·군 합동조사단은 특수그물망을 이용하여 침몰 해역에 대한 정밀탐색을 실시해 오던 중 5월 15일 침몰 해역에서 어뢰로 확증할 수 있는 결정적인 증거물로 어뢰의 추진동력장치인 프로펠러를 포함한 추진모터와 조종장치 등을 수거하였다. 이 증거물은 북한이 해외로 수출할 목적으로 배포한 어뢰 소개자료의 설계도와 크기, 모양 등이 일치하였다.
#천안함 선체에서 발견된 흡착물질과 어뢰 추진동력장치에서 발견된 흡착물질의 성분을 분석한 결과 동일한 성분인 것으로 확인되었다.
 
결론적으로 침몰 해역에서 수거된 어뢰 추진동력장치와 선체의 변형형태, 관련자들의 진술내용, 부상자 상태 및 시체검안, 지진파 및 공중음파 분석, 수중폭발의 시뮬레이션, 백령도 근해 조류 분석, 폭약성분 분석, 수거된 어뢰부품들의 분석 결과에 대한 국내·외 전문가들
의견을 종합해 보면, 천안함은 어뢰에 의한 수중폭발로 발생한 충격파와 버블효과에 의해 절단되어 침몰되었고, 폭발위치는 가스터빈실 중앙으로부터 좌현 3m, 수심 6~9m 정도이며, 무기체계는 북한에서 제조한 고성능폭약 250kg 규모의 CHT-02D 어뢰로 확인되었다.
 
==軍, 천안함 폭침 징후 알고도 조치 안해==
* [https://n.news.naver.com/article/025/0003110159 <nowiki>[단독]</nowiki>"軍, 천안함 폭침 징후 알고도 조치 안했다" 문건 공개] 중앙일보 2021.06.15
:공격 징후 사전 포착, 국방부 보고
:<u>’'''천안함 음모론’ 근거 없다는 방증'''</u>
:“특별한 조치 안해” 군 기강 지적
:해군 수뇌부, 해당 문건 파기 지시
{{인용문|지난 2010년 3월 천안함 폭침 사건을 앞두고 군 당국이 북한군의 공격 징후를 사전에 포착했던 정황이 담긴 문건이 15일 처음으로 공개됐다.
 
<u>공격 징후는 북한군이 치밀하게 준비한 뒤 천안함을 폭침했다는 단서가 된다. 동시에 그간 신상철 전 천안함 민군합동조사단 조사위원(당시 민주당 추천) 등이 제기했던 좌초설 등의 음모론을 부인하는 방증도 된다.</u>
 
최원일 전 천안함 함장은 폭침 사건 당시 군 당국이 북한의 공격 징후를 포착해 군 지휘부에 관련 보고를 했는데도 적절한 조치에 나서지 않았던 정황을 담은 문건을 15일 중앙일보에 공개했다.
 
‘국가안보총괄점검회의 의장 일행 부대방문 행사 결과’라는 제목의 한장짜리 문건에는 김종태 전 기무사령관이 “천안함 사건 발생 며칠 전 사전 징후를 국방부ㆍ합참에 보고했으나 아무런 조처를 하지 않았다”고 답한 내용이 적혀 있다.
 
김 전 사령관의 발언은 지난 2010년 8월 12일 대통령 직속 국가안보총괄점검회의(점검회의) 위원단이 해군 2함대 현장을 방문한 자리에서 나왔다.
 
구체적인 사전 징후와 관련해선 “수중 침투 관련 징후”라고 언급했다. 이에 대해 익명을 요구한 군 관계자는 “이는 통상 한ㆍ미 연합군이 포착한 북한 지역 군사 활동과 관련된 신호정보”라고 풀이했다.
 
현장 토의에서 김 전 사령관은 “합참의장에게 조처를 하도록 여러 번 요구했으나 특별한 조치를 하지 않았다”며 “군 기강이 해이해졌다. 침투 징후를 예하 부대에 전파하지 않았고 적극적인 조치를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천안함 폭침은 김정은의 작품==
워싱턴 포스트 북경지국장 안나 파이필드(Anna Fifield)<ref>[https://en.wikipedia.org/wiki/Anna_Fifield Anna Fifield] - Wikipedia</ref>가 2019년 6월 11일 간행한 저서 "[https://www.amazon.com/Great-Successor-Divinely-Perfect-Brilliant/dp/1541742486 The Great Successor: The Divinely Perfect Destiny of Brilliant Comrade Kim Jong Un]"에는 [[김정일]]로부터 후계자로 지명받은 [[김정은]]이 장군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 천안함 폭침 사건을 일으켰다고 나온다. 자신이 후계자가 될만한 능력을 가졌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한 짓이라는 것이다.
 
:[http://www.newsis.com/view/?id=NISX20190607_0000673915 美서 김정은 분석 '위대한 계승자' 출간…"어린시절부터 비행기광"] 뉴시스 2019-06-07
:[https://www.voakorea.com/a/4950482.html ‘김정은 평전’ 출간… “11살 때부터 권총 차고, 하나에 빠지면 집착 ”] VOA 2019.6.8
 
* [https://www.youtube.com/watch?v=86FvEDEOdJg&t=144s 김정은의 장성택·김정남 처단 ‘비화’]  <nowiki>[문갑식의 진짜 TV]</nowiki>  2019. 6. 23.
: 4분경 이 책의 천안함 피침에 대한 이야기가 나옴.
 
==추모==
2020년 3월 26일 천안함 10주기. 그동안 좌파 문재인 정부에서는 추모식에 참여치 않고 있다.
 
<center><youtube>https://youtu.be/yyBfOlaDhTY</youtube></center>
 
* [https://www.bbc.com/korean/news-52016303 천안함 10주기: '아직도 죽은 동료들의 환영 보여…너는 왜 살았냐고 묻더라']
  2010년 3월 26일 천안함 침몰 당시 막내 하사였던 [[정주현]] 씨는 아직도 3월이 두렵다.
매년 3월이 되면 몸이 너덜너덜해지는 것 같다고 한다.
  "죽은 사람들이 저한테 다가오는 환영이 보이더라고요. '너는 왜 살았어.' 이런 이야기를 할 때도 있고. 원래는 그런 말을 할 분들이 아닌데…"
 
* [https://youtu.be/EqC0uzA1VcI 잊지않겠습니다.  최인호 TV]
 
 
* [http://www.pennmike.com/news/articleView.html?idxno=29954 넋나간 국방부...장관 주관한 천안함폭침 10주기 추모식 생중계 취소해놓고 "코로나 때문"?]<ref>http://www.pennmike.com/news/photo/202003/29954_39676_5452.jpg</ref>
:국방일보로 예고한 생중계 일정 돌연 취소後 궤변...'생체 바이러스가 전파라도 타냐' '北정권 눈치보기' 빈축
:일부 사진 선택적 공개, 野대표 추모화환은 눈에 안 띄어...행사현장 찾은 미래한국당 지도부 문전박대까지
:국방장관은 천안함 폭침 가해자 드러나지 않는 추도사..."차기 한국형 호위함에 '천안함' 명명 검토" 생색내나
 
==좌파 언론의 시각==
 
*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E2%88%A3=sec&sid1=102&oid=002&aid=0002127842 천안함 비극 10주기 , 국제적인 영구 미제 사건으로 남기지 말아야]
 
==음모론==
*[[천안함 피격사건의 음모론]]
 
==함께 보기==
* [[좌파 종북 친북 시민단체#천안함 대북규탄 결의안 반대 국회의원|천안함 대북규탄 결의안 반대 국회의원]]
 
* [[천안함 피격사건의 음모론]]
* [https://ko.wikipedia.org/wiki/%EC%B2%9C%EC%95%88%ED%95%A8_%ED%94%BC%EA%B2%A9_%EC%82%AC%EA%B1%B4 천안함 피격 사건] - 위키백과
* [https://en.wikipedia.org/wiki/ROKS_Cheonan_sinking ROKS Cheonan sinking] Wikipedia
 
==각주==
<references/>
 
[[분류:사건]]
[[분류:북한의 대남도발]]
{{ㅂ |천안함 사건|}}

2023년 7월 17일 (월) 14:32 기준 최신판

2010년 3월 26일 북괴군이 어뢰를 쏘아서 남한의 천안함을 폭침시킨 사건

사건 개요

2010년 3월 26일(금) 21:22경 백령도 인근 해상(37˚55'45'N, 124˚36'02'E, 백령도 서남방 25km)에서 정상적인 임무수행 중이던 해군 2함대 소속 천안함(초계함)이 북한의 어뢰 공격에 의해 침몰되었으며, 승조원 총 104명 중 46명이 전사하고 58명은 생존하였다.

사건 발생 전

천안함의 함교에 당직사관 등 7명, 전투상황실 7명, 통신실 2명, 함수포 상비 탄약고 3명, 기관조종실 7명, 유도조종실 1명, 디젤기관실 2명 등 총 29명이 당직근무 중이었고, 기타 인원은 식당, 침실 등에서 휴식 및 취침하고 있었다. 함장은 21:05경 함내 순찰을 마치고 함장실로 들어와 컴퓨터 e메일·게시판과 KNTDS2) 화면을 확인 중이었다. 천안함의 당시 상황은 21:22경 근무상황에 비추어 볼 때 정상적으로 임무수행 중에 있었다.

사건 발생 후

천안함의 생존자 58명은 후미의 충격과 함께 ‘꽝! 꽈~아앙’(1~2초간) 소리를 들었고 정전과 동시에 일부 격실에 해수가 유입되면서 갑자기 우현으로 90° 기울어졌다고 진술하였다. 함장은 사건 발생 시의 충격으로 함장실에 갇혀 있다가 통신장 등 4~5명의 승조원이 내려준 소화호스를 허리에 묶고 외부 좌현갑판으로 탈출하였으며, 이때 천안함의 생존자 중 20여 명이 갑판에 모여 있었다.

함장이 함미쪽을 확인한 결과, 연돌 이후 부분이 보이지 않았고, 약한 기름냄새를 맡았으며, 승조원이 모여 있는 함수 부분은 우현으로 90° 기울어져 있는 것을 보고 필요한 조치를하였다. 함장은 먼저 부장에게 함정 내부에 갇힌 승조원 구출을 지시하고 작전관에게 인원을 파악하고 구조함 접근 시 함에서 내릴 수 있는 곳을 확인하도록 지시하였다. 또한 중위 등 6 명에게 부상을 당해 움직일 수 없는 하사(요추골절), 하사(대퇴부골절), 상사(대퇴좌상), 상사(어깨손상), 상사(늑골골절)를 부축하거나 등에 업어 구조하도록 조치하였다. 함장은 함수에 있는 생존자를 구조한 후 인원을 점검한 결과 총 58명이었으며, 고속정이 올 때까지 대기할 것을 지시하였다.

함장은 22:32~22:42경 2함대사 22전대장과 전화통화를 하였고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뭐에 맞은 것 같습니다."

"뭔거 같애?”

"어뢰 같은데요, 함미가 아예 안 보입니다.”

"함미? 함미 어디부터?”

"연돌이 안 보여요, 고속정이나 RIB 빨리 조치해 주십시오.”

"생존자는?”

"8명이고 다수가 피를 흘리며, 못 일어서는 중상자가 2명입니다.”

상황 보고 및 전파

21:28경 천안함 포술장은 정전으로 함내 유·무선을 이용한 통신이 제한되어 휴대전화를 사용하여 2함대 상황장교에게 구조를 요청하였다. 2함대 상황반장이 통화내용을 듣고 상황장교의 휴대전화를 넘겨받아 “배가 우측으로 넘어갔고 구조가 필요하다.”는 내용을 확인한 후 21:30경 문자정보망을 이용하여 대청도에 있던 고속정편대에 긴급출항을 지시하였다.

21:30경 2함대 당직사관은 지휘통제실에서 천안함 전투정보관으로부터 “천안함이 백령도 근해에서 ‘좌초’되어 함정이 침몰되고 있으니 빨리 지원병력을 보내 달라”는 전화를 받고, 지휘통제실장에게 보고한 후 직통전화로 인천해양경찰서 부실장에게 전화하여 “현재 백령도 서방 우리 함정에서 ‘좌초되었다’는 연락이 왔는데 일단 급한 상황이니 인근에 있는 해경 501함, 1002함을 백령도 서방으로 빨리 보내 달라”고 요청하였다.

인천해양경찰서 부실장은 즉시 대청도 남방 해역에 있던 501함과 소청도 남방 해역에 있던 해경 1002함에 출동할 것을 지시하였다.

21:32경 2함대 연락장교는 자신의 휴대전화로 옹진군청 소속 어업지도선 214호 선장에게전화하여 “해군 천안함이 백령도 서방에서 침몰 중이니 구조하는 데 지원해 달라”고 요청하였으며, 어업지도선 선장은 옹진군청 담당공무원에게 사건 접수를 통보하고 21:50경에 출항하였다.

승무원 구조

해군 고속정과 해경함, 관공선 등 모든 작전요소가 동원되어 총 58명을 구조하였다.

21:56에 고속정 3척이, 22:`10에는 고속정 2척이 천안함에 도착하여 인명구조를 시작하였다. 고속정 편대는 천안함에 홋줄(3인치)을 결속하였고 천안함 작전관이 고속정으로 건너뛰던 중 바다로 추락하여 고속정에 의해 구조되었다. 함장은 고속정을 이용할 경우에 함정이 흔들려 실족의 위험이 있다고 판단하여 해경정의 RIB 이용을 결심하였다.

22:38경 너울로 인해 천안함 함수에 있는 승조원의 추락 위험이 우려되어 고속정과 천안함 간 홋줄을 풀었고, 22:41경 해경 501함(500톤)의 2척의 RIB이 도착, 천안함에 접근하여 19명을 구조하였다.

23:08경 어업지도선 인천 227호는 환자 2명을 구조한 후 백령도로 후송하였고 잔류인원 36명은 해경 501함에 의해 구조되었다.

함장은 RIB이 도착한 후 함수 포대에 모여 있는 인원을 먼저 이송하도록 조치하면서 “환자부터 밑으로 내려가고, 중상자는 잘 부축하라.”고 지시하였다. 생존자들은 함장의 지시에 따라 환자와 이병 등이 먼저 구명정과 RIB을 이용하여 해경 501함으로 이동한 후 함장, 부장, 통신장이 마지막으로 이함하였다.

3월 26일 23:13~27일 04:35까지 천안함 침몰 지역 부근을 수색하였고 해경 501함에 탑승 중인 51명은 고속정편대로 환승하였다가, 다시 초계함으로 재환승하여 3월 27일 14:00경 평택항에 도착하였다.

천안함 침몰사건 합동조사결과 보고서

천안함 침몰사건 합동조사결과 보고서는 4개국 12개 민간연구기관 및 군의 총 73명의 전문가가 과학수사, 함정구조, 폭발물, 정보 분석 등 다양한 분야의 조사 및 보고서 작성에 적극 참여하였고, 보고서 내용에 전원이 동의하여 국제적으로 검증된 자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대한민국의 조작극이라고 비난하였고 대한민국 내에서도 조사 결과에 사실과 다른 의혹을 제기하고 유언비어를 유포하는 등 무책임한 언행을 하는 게 현실이다. 최근까지도 천안함 피격사건이 침몰 사건인것 처럼 표시한 위키백과 등이 좋은 예이다.

개요

국방부는 2010년 3월 26일, 천안함 침몰 이후 민-군 합동 조사단을 구성하여 침몰원인 규명을 위한 조사 활동에 착수하였다. 조사 과정의 신뢰성을 제고하기 위해 국내 12개 민간기관의 전문가 25명과 군 전문가 22명, 국회추천 위원 3명, 미국-호주-영국-스웨덴 4개국 전문가 24명으로 조사단을 편성하고, 과학수사-함정구조 및 관리-폭발유형분석-정보분석 등 4개 분과루 나누어 조사를 진행하였다.

결과

인양한 함수, 함미 선체의 변형형태와 사고 해역에서 수거한 증거물들을 조사한 결과, 천안함은 북한에서 제조한 감응어뢰의 강력한 수중폭발에 의해 선체가 절단되어 침몰한 것으로 판단하였다.

  1. 선체 손상 부위를 정밀계측하여 분석한 결과 충격파와 버블효과로 인하여 선체의 용골이 함정 건조 당시와 비교하여 위쪽으로 크게 변형되었고, 외판은 급격하게 꺾이고 선체에는 파단된 부분이 있었다. 주갑판은 가스터빈실 내 장비의 정비를 위한 대형 개구부 주위를 중심으로 파단되었고, 좌현 측이 위쪽으로 크게 변형되었으며, 절단된 가스터빈실 격벽은 크게 훼손되고 변형되었다.
  2. 함정 내·외부의 표면을 면밀히 조사한 결과 함정이 좌우로 심하게 흔들리는 것을 방지해 주는 함안정기(艦安定器)에 나타난 강력한 압력흔적, 선저 부분의 수압 및 버블흔적, 열(熱)흔적이 없는 전선의 절단, 가스터빈실 선체에 나타난 구형압력흔적 등은 수중폭발에 의한 강력한 충격파와 버블효과가 함정의 절단 및 침몰의 원인임을 알려주고 있다.
  3. 생존자들은 거의 동시에 폭발음을 1~2회 청취하였으며, 충격으로 쓰러진 좌현 견시병의 얼굴에 물이 튀었다는 진술, 백령도 해안 초병이 2~3초 동안 높이 약 100m의 백색 섬광불빛을 관측했다는 진술 등을 분석한 결과 이는 수중폭발로 발생한 물기둥 현상과 일치하였다. 또한 부상자 상태와 시체검안 결과 파편상과 화상의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고, 골절과 열창 등이 관찰되어 충격파 및 버블효과로 나타날 수 있는 현상과 일치하였다.
  4. 한국지질자원연구원의 지진파와 공중음파를 분석한 결과 지진파는 4개소에서 진도 1.5규모로 감지되었으며, 공중음파는 11개소에서 1.1초 간격으로 2회 감지되었다. 지진파와 공중음파 분석 결과 폭발원은 동일하였으며, 이것은 수중폭발에 의한 충격파와 버블효과의 현상과 일치하였다.
  5. 1차 미국 측의 선체 변형 현상 분석 결과 수심 약 6~9m, 가스터빈실 중앙으로부터 좌현 3m 위치에서 총 폭약량 TNT 200~300kg 규모의 폭발이 있었던 것으로 판단되었고, 2차 한국 측의 시뮬레이션 결과는 동일 지점에서 총 폭약량 TNT 250~360kg 규모의 폭발이 있었던 것으로 분석되었으며 영국 측도 함께 참여하였다.
  6. 백령도 근해 조류를 분석해 본 결과 강한 조류로 인해 기뢰부설은 제한되는 반면, 어뢰 발사에는 영향이 미약한 것으로 판단하였다.
  7. 폭약성분 분석 결과 HMX는 연돌·함수절단면 등 28개소에서, RDX는 연돌·해저 토양 등 6개소에서, TNT는 함안정기 등 2개소에서 각각 검출됨으로써 HMX, RDX, TNT가 혼합된 폭약성분임을 확인하였다.
  8. 민·군 합동조사단은 특수그물망을 이용하여 침몰 해역에 대한 정밀탐색을 실시해 오던 중 5월 15일 침몰 해역에서 어뢰로 확증할 수 있는 결정적인 증거물로 어뢰의 추진동력장치인 프로펠러를 포함한 추진모터와 조종장치 등을 수거하였다. 이 증거물은 북한이 해외로 수출할 목적으로 배포한 어뢰 소개자료의 설계도와 크기, 모양 등이 일치하였다.
  9. 천안함 선체에서 발견된 흡착물질과 어뢰 추진동력장치에서 발견된 흡착물질의 성분을 분석한 결과 동일한 성분인 것으로 확인되었다.

결론적으로 침몰 해역에서 수거된 어뢰 추진동력장치와 선체의 변형형태, 관련자들의 진술내용, 부상자 상태 및 시체검안, 지진파 및 공중음파 분석, 수중폭발의 시뮬레이션, 백령도 근해 조류 분석, 폭약성분 분석, 수거된 어뢰부품들의 분석 결과에 대한 국내·외 전문가들 의 의견을 종합해 보면, 천안함은 어뢰에 의한 수중폭발로 발생한 충격파와 버블효과에 의해 절단되어 침몰되었고, 폭발위치는 가스터빈실 중앙으로부터 좌현 3m, 수심 6~9m 정도이며, 무기체계는 북한에서 제조한 고성능폭약 250kg 규모의 CHT-02D 어뢰로 확인되었다.

軍, 천안함 폭침 징후 알고도 조치 안해

공격 징후 사전 포착, 국방부 보고
천안함 음모론’ 근거 없다는 방증
“특별한 조치 안해” 군 기강 지적
해군 수뇌부, 해당 문건 파기 지시
지난 2010년 3월 천안함 폭침 사건을 앞두고 군 당국이 북한군의 공격 징후를 사전에 포착했던 정황이 담긴 문건이 15일 처음으로 공개됐다.

공격 징후는 북한군이 치밀하게 준비한 뒤 천안함을 폭침했다는 단서가 된다. 동시에 그간 신상철 전 천안함 민군합동조사단 조사위원(당시 민주당 추천) 등이 제기했던 좌초설 등의 음모론을 부인하는 방증도 된다.

최원일 전 천안함 함장은 폭침 사건 당시 군 당국이 북한의 공격 징후를 포착해 군 지휘부에 관련 보고를 했는데도 적절한 조치에 나서지 않았던 정황을 담은 문건을 15일 중앙일보에 공개했다.

‘국가안보총괄점검회의 의장 일행 부대방문 행사 결과’라는 제목의 한장짜리 문건에는 김종태 전 기무사령관이 “천안함 사건 발생 며칠 전 사전 징후를 국방부ㆍ합참에 보고했으나 아무런 조처를 하지 않았다”고 답한 내용이 적혀 있다.

김 전 사령관의 발언은 지난 2010년 8월 12일 대통령 직속 국가안보총괄점검회의(점검회의) 위원단이 해군 2함대 현장을 방문한 자리에서 나왔다.

구체적인 사전 징후와 관련해선 “수중 침투 관련 징후”라고 언급했다. 이에 대해 익명을 요구한 군 관계자는 “이는 통상 한ㆍ미 연합군이 포착한 북한 지역 군사 활동과 관련된 신호정보”라고 풀이했다.

현장 토의에서 김 전 사령관은 “합참의장에게 조처를 하도록 여러 번 요구했으나 특별한 조치를 하지 않았다”며 “군 기강이 해이해졌다. 침투 징후를 예하 부대에 전파하지 않았고 적극적인 조치를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천안함 폭침은 김정은의 작품

워싱턴 포스트 북경지국장 안나 파이필드(Anna Fifield)[1]가 2019년 6월 11일 간행한 저서 "The Great Successor: The Divinely Perfect Destiny of Brilliant Comrade Kim Jong Un"에는 김정일로부터 후계자로 지명받은 김정은이 장군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 천안함 폭침 사건을 일으켰다고 나온다. 자신이 후계자가 될만한 능력을 가졌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한 짓이라는 것이다.

美서 김정은 분석 '위대한 계승자' 출간…"어린시절부터 비행기광" 뉴시스 2019-06-07
‘김정은 평전’ 출간… “11살 때부터 권총 차고, 하나에 빠지면 집착 ” VOA 2019.6.8
4분경 이 책의 천안함 피침에 대한 이야기가 나옴.

추모

2020년 3월 26일 천안함 10주기. 그동안 좌파 문재인 정부에서는 추모식에 참여치 않고 있다.

 2010년 3월 26일 천안함 침몰 당시 막내 하사였던 정주현 씨는 아직도 3월이 두렵다.
매년 3월이 되면 몸이 너덜너덜해지는 것 같다고 한다.
 "죽은 사람들이 저한테 다가오는 환영이 보이더라고요. '너는 왜 살았어.' 이런 이야기를 할 때도 있고. 원래는 그런 말을 할 분들이 아닌데…"


국방일보로 예고한 생중계 일정 돌연 취소後 궤변...'생체 바이러스가 전파라도 타냐' '北정권 눈치보기' 빈축
일부 사진 선택적 공개, 野대표 추모화환은 눈에 안 띄어...행사현장 찾은 미래한국당 지도부 문전박대까지
국방장관은 천안함 폭침 가해자 드러나지 않는 추도사..."차기 한국형 호위함에 '천안함' 명명 검토" 생색내나

좌파 언론의 시각

음모론

함께 보기

각주

  1. Anna Fifield - Wikipedia
  2. 29954_39676_5452.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