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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은 [[6.25]] 때 그를 처형시키고서, 자신이 사망하기 직전 뒤늦게 복권시키고, 1993년 4월 20일 제4회  「조국통일상」을 수여했다.<ref>[https://nkinfo.unikorea.go.kr/nkp/trend/viewIssue.do?diaryId=7207&issueMenuId=ISSUE_0002 최고인민회의 상임위, <nowiki>[조국통일상]</nowiki> 수여 정령 발표] 주간북한동향 제586호 2002-04-04 : 통일부 북한정보포털</ref> 제1회 수상자는 민족지도자 [[김구|백범 김구]], [[김규식]], [[여운형]], 월북자 홍명희, 홍기문 등 112명이며, 밀입북자 문익환, [[임수경]]과 남한내 반정부 투쟁인사들에게도 수여된 바 있다.
[[김일성]]은 [[6.25]] 때 그를 처형시키고서, 자신이 사망하기 직전 뒤늦게 복권시키고, 1993년 4월 20일 제4회  「조국통일상」을 수여했다.<ref>[https://nkinfo.unikorea.go.kr/nkp/trend/viewIssue.do?diaryId=7207&issueMenuId=ISSUE_0002 최고인민회의 상임위, <nowiki>[조국통일상]</nowiki> 수여 정령 발표] 주간북한동향 제586호 2002-04-04 : 통일부 북한정보포털</ref> 제1회 수상자는 민족지도자 [[김구|백범 김구]], [[김규식]], [[여운형]], 월북자 홍명희, 홍기문 등 112명이며, 밀입북자 문익환, [[임수경]]과 남한내 반정부 투쟁인사들에게도 같은 상이 수여된 바 있다.


북한이 처형한 최형우를 뒤늦게 복권시킨 것은 그의 저서들이 [[김일성]] 우상화에 유용하다고 판단해서일 것이다. 김일성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에도 최일천의 이름으로 그와 관련한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ref>김일성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 제2권 제4장 10. 잊을수 없는 사람들</ref>
북한이 처형한 최형우를 뒤늦게 복권시킨 것은 그의 저서들이 [[김일성]] 우상화에 유용하다고 판단해서일 것이다. 김일성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에도 최일천의 이름으로 그와 관련한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ref>김일성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 제2권 제4장 10. 잊을수 없는 사람들</ref>

2020년 2월 18일 (화) 13:01 판

최일천(최형우) - 승소옥 부부. 김일성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 제2권에 나오는 사진.

최형우(崔衡宇, 1905.10.11 ~ 1950.11.05)는 본명이 최일천(崔日泉)이며, 해방전 만주에서 교사 겸 문필가로 활동했다. 만주 회덕현(懷德縣, 怀德县)[1][2] 오가자(五家子)[3] 시절의 김일성과도 교류가 있었다.

북한에서는 그를 최일천으로, 남한에서는 최형우로 지칭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북한에서는 최형우란 이름은 해방 후 서울에서 《해외조선혁명운동소사(海外朝鮮革命運動小史)》를 간행할 때 쓴 필명이라고 주장하나, 실제로는 만주 시절의 기록에도 최형우로 나온다.

약력

  • 1905년 10월 11일 평안북도 정주시 출생
  • 중국 봉천성 류하현에서 성장하고 소학교 다님
  • 정의부 산하 독립군에서 병사 생활을 하다가 오동진 사령의 서기 됨
  • 1927년 길림성 회덕현 오가자의 삼성학교에서 교원 생활
  • 1930년 가을 이후 오가자 반제청년동맹 위원장, 잡지 <농우> 주필로 사업
  • 1931년 12월-1945년 장춘과 베이징, 심양 등지에서 <동아일보> 지국장 및 기자로 일함
  • 1945년 해방 후 서울에서 <동방문화사> 기자로 일함
  • 남한 정계에 진출하여 조선혁명당 정치부장, 신진당 중앙위원회 부장, 김일성장군환영위원회 위원, 민족자주연맹 집행위원 등 중요 직책 역임
  • 1950년 11월 05일 : 6.25 전쟁 중 인민군에 납북되어 가다 처형 당함.


김일성6.25 때 그를 처형시키고서, 자신이 사망하기 직전 뒤늦게 복권시키고, 1993년 4월 20일 제4회 「조국통일상」을 수여했다.[4] 제1회 수상자는 민족지도자 백범 김구, 김규식, 여운형, 월북자 홍명희, 홍기문 등 112명이며, 밀입북자 문익환, 임수경과 남한내 반정부 투쟁인사들에게도 같은 상이 수여된 바 있다.

북한이 처형한 최형우를 뒤늦게 복권시킨 것은 그의 저서들이 김일성 우상화에 유용하다고 판단해서일 것이다. 김일성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에도 최일천의 이름으로 그와 관련한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5]

저서

아래 저서의 내용은 정확성이 떨어진다. 김일성과 관련된 부분은 북한의 실력자로 막 등장한 그에게 잘 보일 의도에서인지 상당히 미화하여 기술했다. 하지만 그는 북한으로 가지는 않았다.

  • 최형우(崔衡宇), 《해외조선혁명운동소사(海外朝鮮革命運動小史) 제1집(第一輯)》, 서울(漢城) : 동방문화사(東方文化社), 1945년 12월 10일
  • 최형우(崔衡宇), 《해외조선혁명운동소사(海外朝鮮革命運動小史) 제2집(第二輯)》, 서울 : 동방문화사(東方文化社), 1946년


각주

  1. 오늘날의 궁주링시 (公主岭市)
  2. 怀德县 (吉林省四平市东部怀德县) 百度百科
  3. Wujiazi (五家子) 궁주링시 쓰핑시 지린성(公主岭市 四平市 吉林省) 중국 구글 지도
  4. 최고인민회의 상임위, [조국통일상] 수여 정령 발표 주간북한동향 제586호 2002-04-04 : 통일부 북한정보포털
  5. 김일성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 제2권 제4장 10. 잊을수 없는 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