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스차코프 포고문은 북한을 점령한 소련 제25군 사령관 이반 치스차코프(Ivan Mikhailovich Chistyakov, 1900~1979)가 북한 점령 후인 1945년 8월 25일 북한 주민을 대상으로 발표한 첫 포고문이다.

치스차코프 포고문


우리역사넷의 위 링크에 올라 있는 포고문 해설은 한국 역사학자들이 얼마나 종북화 되어 있는지 알수 있는 표본이다.


포고문은 실제로 이행되었는가?

공산주의자들은 그들이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 행동을 보고 판단하라는 것은 만고불변의 진리이다. 저런 빛 좋은 개살구같은 포고문을 발동해 놓고, 소련군이 북한에서 저지른 만행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소련군이 저지른 만행 중에 가장 큰 것은 북한을 공산화시켰다는 것도 있지만, 자신들이 소련에서 5년간 교육시킨 만주 마적 출신 진지첸(Цзин Жи Чен, Jing Zhichen, 金日成) 대위를 '전설의 김일성 장군'인양 조작해서 자신들의 꼭두각시 대리인으로 내세워 최고 권력을 쥐어 준 것이다. 그 때문에 북한 주민들이 오늘날과 같은 처지로 전락해 있다.

북한은 해방된 적이 있는가?

치스차코프는 소련군이 점령군이 아니라 해방군으로 왔다고 했지만, 과연 민심도 그렇게 인정했을까? 평양 출신 월남민들은 아래와 같이 말한다.[1]

평양 천지에서는 八월 二十五·六일 경까지의 해방 十일간이 자유의 黃金時代(황금시대)였다. 그러나 열흘 동안을 「시대」라고 부르기엔 너무도 짧고, 허무한 기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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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평온한 거리에도 때때로 정체불명의 정치적 벽보가 나붙어서 자극을 주기 시작했다. 그 대부분은 혼란된 정치정세를 의미하는 오보(誤報)였다.
「김일성 장군이 평양에 입성한다」
「동진공화국(東震共和國) 내각 명단」

그런 종류의 오보가 흥분된 민심을 자극했다.

평양이 해방되고, 주민들이 자유를 만끽한 것은 것은 일본 항복 후 소련군이 진주하기 직전까지 단 10일간이었다. 그 이후 소련군정기나 김일성 일족 치하는 일제시대보다 못했으면 못했지 전혀 나을 바가 없었다.

위에서 말하는 평양에 입성한다는 '김일성 장군'은 동진공화국 조각명단에 국방장관으로 나오는 전설의 김일성 장군이지 소련군 진지첸 대위가 아니다. 해방 후 나돈 저런 풍문을 소련군이 놓지지 않고, 무명의 진지첸 대위를 김일성 장군으로 둔갑시킨 것이다.


소련은 조선독립운동을 일본보다 더 잔인하게 탄압한 국가

북한을 점령하고 해방군이라 자처하던 소련은 사실은 조선독립운동을 일본보다 더 잔인하게 박해한 나라이다.

민족계열 조선인 항일무장투사들을 자유시로 유인하여 1천여명 가까이 몰살시켜 만주와 연해주에서의 무장투쟁의 맥이 끊어지다시피 했다.
연해주의 조선인 지도자급 인사 2천여명을 처형하고, 17만 여명을 강제로 중앙아시아로 실어가 허허벌판에 내팽개쳐 첫해 겨울에 추위와 굶주림으로 1/3 이 숨졌다.
저명한 홍범도(洪範圖, 1868~1943) 장군과 진짜 김일성 장군으로 불리는 김광서(金光瑞, 1888~1942) 장군도 그 대표적 피해자이다.


소련이 대우한 유일한 조선인 그룹은 1940~1941년간 만주에서 소련으로 도피한 김일성을 비롯한 동북항일연군의 조선인 빨치산들 뿐이다. 이들은 장차 일본과 전쟁이 벌어지고 조선을 점령할 경우에 이용하기 위한 용도로 수용한 것이고, 실제로 그렇게 했다.

각주

  1. 《고당 조만식(古堂 曺晩植)》, 고당전·평양지간행회(古堂傳·平壤誌刊行會), 평남민보사(平南民報社), 서울, 1966 : pp.170~1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