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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김구가 죽인 사람이 일본인 군인이었던게 맞는건가요? 고종시대사 4집에도 김구의 주장을 따라 그렇게 적고 있다면, 김구가 틀렸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 조선측 기록물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고종 시대사 4집과 주한일본공사관 기록이 정 반대인데, 확실하게 죽인 사람은 매약상이라는 것을 알 수있는 증거가 있을까요?
그럼 김구가 죽인 사람이 일본인 군인이었던게 맞는건가요? 고종시대사 4집에도 김구의 주장을 따라 그렇게 적고 있다면, 김구가 틀렸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 조선측 기록물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고종 시대사 4집과 주한일본공사관 기록이 정 반대인데, 확실하게 죽인 사람은 매약상이라는 것을 알 수있는 증거가 있을까요?
:표제어 [[김구]]에 치하포 사건 관련 자료를 올려두었습니다. 김구의 주장과 고종시대사 4권에는 일본군 중위라고 했지만, 주한 일본 공사/영사관 보고서에는 대개 상인으로 나옵니다. 주변 정황들이 일본군 중위로 볼만한 근거는 없는 것 같습니다. 군복을 입고 있었던 것도 아닌 것 같고, 많은 현금을 소지하고 있었다는 것도 상인이라는 근거가 될 것 같습니다. 일본군 중위라면 혼자서 그런 지역을 여행할 이유도 없어 보이고, 무기를 소지하고 있었을 수도 있으니 그렇게 쉽게 살해당하지도 않았을 것 같습니다..
:[[사용자:Mtsmtbt 368|Mtsmtbt 368]] ([[사용자토론:Mtsmtbt 368|토론]]) 2020년 1월 4일 (토) 09:30 (KST)

2020년 1월 4일 (토) 09:41 기준 최신판

"김구 비판 논란"과 "김구의 양민 암살설"은 내용이 중복되므로 "김구의 양민 암살설"은 삭제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리고 김구가 죽인 일본인 土田讓亮이 계림장업단원이라는 도진순 교수의 주장(경향신문 기사)은 오류일 가능성이 상당히 큽니다. (아래 링크 참고) https://mausk.tistory.com/205

계림장업단은 치하포 사건(1896년 3월 9일)이 일어난 몇 달 후에 만들어진 조직입니다.

사건 직후인 1896년 5월 30일자 주한일본공사관 기록에 의하면 피살된 土田讓亮은 일본군 중위가 아니라 그냥 매약상(賣藥商)입니다. http://db.history.go.kr/id/jh_009r_0010_0130

고종시대사 4집 > 建陽 元年 3月 31日(1896년 3월 31일) 에는 土田讓亮이 일본군 중위라 했는데, 김구의 주장을 따른 것이 아닌가 합니다. http://db.history.go.kr/id/gj_004_b01_030_270_030#



감사합니다. 해당 부분은 삭제하겠습니다.

그럼 김구가 죽인 사람이 일본인 군인이었던게 맞는건가요? 고종시대사 4집에도 김구의 주장을 따라 그렇게 적고 있다면, 김구가 틀렸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 조선측 기록물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고종 시대사 4집과 주한일본공사관 기록이 정 반대인데, 확실하게 죽인 사람은 매약상이라는 것을 알 수있는 증거가 있을까요?

표제어 김구에 치하포 사건 관련 자료를 올려두었습니다. 김구의 주장과 고종시대사 4권에는 일본군 중위라고 했지만, 주한 일본 공사/영사관 보고서에는 대개 상인으로 나옵니다. 주변 정황들이 일본군 중위로 볼만한 근거는 없는 것 같습니다. 군복을 입고 있었던 것도 아닌 것 같고, 많은 현금을 소지하고 있었다는 것도 상인이라는 근거가 될 것 같습니다. 일본군 중위라면 혼자서 그런 지역을 여행할 이유도 없어 보이고, 무기를 소지하고 있었을 수도 있으니 그렇게 쉽게 살해당하지도 않았을 것 같습니다..
JohnDoe (토론) 2020년 1월 4일 (토) 09:30 (K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