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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10월 19일 평양민보에 실린 한재덕(韓載德, 1911~1970)의 "김일성장군 개선기(金日成將軍 凱旋記)" :
- 한재덕(韓載德, 1911~1970), 김일성 장군 개선기(金日成將軍 凱旋記) : 빗나는 革命家의 집 『문화전선(文化戰線)』, 창간호 p.84 (pdf p.98)
- - 북조선예술총연맹(北朝鮮藝術總聯盟) 1946.7.25
장군(將軍)이 조선(朝鮮)에 돌아오기는 그보다 훨씬 전(前)이었다. 비행기(飛行機) 우에서 내려다 고국(故國)의 산천(山川)은 너무나 아름다웟다. 『이 강산(江山)을 위하여 내 어찌 아니 싸울 수 있었으랴! 그러나 노력(努力)은 이제부터다.』 그럼으로 장군(將軍)은 떠들지 않고 돌아왓다.
소리없이 개선(凱旋)한 장군(將軍)은 돌아온 그날부터 또 맹활동(猛活動)을 개시(開始)하였다. 사정(事情)에 의(依)하여 이름도 김영환(金永煥)으로 변명(變名)을 하고.
二十年 그리던 고향(故鄕), 조부모(祖父母) 친척(親戚)을 二十里 밖에 두고도 비화(飛火)같이 달리는 마음을 달래며 이날까지 꾹 참어온 것이다.
이듬해 간행된 한재덕의 저서 『金日成 將軍 凱旋記』 (平壤, 民主朝鮮出版社, 1947.11.20)의 같은 글에는 김영환이란 가명을 썼다는 말이 삭제되었다. 당시 한재덕은 김일성이 소련군함 타고 9월 19일 원산항으로 입북하여 평양으로 온 것을 모르고 비행기 타고 왔다고 했다. 또 김일성이 몰래 귀국한 것을 떠들지 않고 돌아왔다거나, 소리없이 개선(凱旋)했다고 미화하고 있고, 김영환(金永煥)으로 변명(變名)을 하고 다니다 10월 14일 평양시 민중대회에서 "김일성 장군"을 자칭하며 나선 것을 복면(覆面)을 벗었다고 표현했다.
파일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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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 2020년 8월 25일 (화) 16:02 | 1,500 × 2,107 (971 KB) | JohnDoe (토론 | 기여) | 1945년 10월 19일 평양민보에 실린 한재덕의 "김일성장군 개선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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