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3년 우크라이나 행정수도 하리코프[1]의 길거리에서 아사한 농부들의 시체 옆으로 무심하게 지나가는 행인들.
우크라이나 키에프에 있는 추모상

홀로도모르(우크라이나어: Голодомор)는 1932년-1933년에 소비에트 연방의 우크라이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에서 발생한 대기근으로 250만명에서 350만명 사이의 사망자가 발생된 것으로 추정된다. 홀로도모르는 우크라이나어로 "기아로 인한 치사(致死)"라는 뜻이다.

우크라이나·오스트레일리아·헝가리·리투아니아·미국·바티칸 시국의 정부·국회는 이 사건을 공식적으로 집단살해(genocide)로 인정한 바 있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매년 11월 네 번째 주 토요일은 대기근 희생자들을 위한 추모 기념일로 지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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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탈린의 대숙청(1936-38)이 시작되기 3-4년 전이었다. 우크라이나와 남러시아에선 7백만에서 1천만에 달하는 농민들이 아사(餓死)했다. 소련공산당의 강제이주와 과도한 집산화 정책이 빚은 참상이었다. 홀로도모르(holodomor)라 명명된 우크라이나 대기근의 참상은 그러나 소련연방이 해체되기 1년 전인 1990년에야 세상에야 알려졌다. 그때서야 우크라이나 기근의 참상을 고발하는 350장의 생생한 현장의 이미지들이 사진첩으로 묶여 대중에 공개되었기 때문이었다. 2006년 이후 홀로도모르는 우크라이나를 포함한 15개국에서 소련공산당의 제노사이드(genocide)로 규정하고 있다. 단지 사회주의 정책의 실패가 아니라 스탈린이 기획하고 실행에 옮긴 의도적 학살이라는 의미다.


만약 그 사진들이 없었다면, 홀로도모르의 참상은 잊혔을까? 아마도 생존자의 증언을 통해 옛날이야기로 구전되거나 근거가 희박한 신화나 소설의 소재가 되었으리라. 기록이 소멸된 대부분의 과거사가 그러하듯. 사진기의 발명은 인류 기록의 역사에서 문자의 발명을 넘어서는 획기적 사건이었다. 과거의 사진 앞에선 누구도 쉽게 거짓말을 할 수가 없다. 영어속담에 “그림은 천개 단어를 그린다(a picture paints a thousand words)”란 말이 있다. 사진은 아마도 최소한 만 개의 단어를 찍고도 남음이 있다.

참고 자료

각주

  1. Kharkiv Wikip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