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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시장
최근 수정 : 2018년 10월 2일 (화) 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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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의 세계화 과정을 먼저 알아보자.

세계경제는 살아 숨쉬는 역동적 유기체와 마찬가지로 세차게 변화하고 있다.

용어 정리 - 자본주의를 바라보는 두가지 시각

자본주의와 시장경제는 동의어로 볼수 있다. 이런 관점은 영국의 경제학자 클라팜 등이 주장하듯, 자본주의는 18세기 후반에 영국의 산업혁명으로 등장한 것이 아니라 오랜 과정을 거쳐 점진적으로 발전되어 왔다는 그의 의견을 인정하는 측면에서 그러하다. 자본주의를 부정적 보는 측도 있다. (페르낭 브로델의 '자본주의와 물질문명'참조.)

자유주의와 중상주의의 역사

과거에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정부가 경제를 통제해 왔다. 현대 북한은 모든 것이 어버이 수령으로부터 왔다고 생각하고 그걸 위해 존재하는 나라이기때문에 '김일성 왕조'라 부른다. 조선시대에도 백성이 중요한게 아니고 종묘사직이 중요했다. 이씨 왕가의 나라였다. 이렇게 동양은 왕실이 모든 것을 지배하고 소유하는 모습이다.


유럽도 중상주의 시대에는 국가가 경제를 통제했다. 거기서 최초로 자유주의 사조가 출현한 것이다. 19세기에 경제적 자유주의 사조가 확산 되었는데, 20세기 전반기에 다시 중상주의 사조가 반전을 일으켰다. 그 후 다시 20세기 후반기에 자유주의 사조가 확산되었다.

중상주의 vs. 자유주의

중상주의라는 용어를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해당 시대에는 상업을 중시 여겼다 보이지만 그러나 그것은 중상주의의 핵심이 아니다. 당시는 농경시대에 비해 상업이 매우 중요했지만, 여전히 제일 중요한 산업은 농업이었다. 중상시대는 부국강병을 위해 정부가 경제와 교역을 강력히 통제했다. 정부가 통제했다는 것이 바로 중상주의의 핵심이다. 그 반대가 개인의 자발적 선택을 중요시하는 자유주의인 것이다.

사회주의 vs. 개인주의

떼주의, 즉 사회주의의 반대말은 개인주의이다. 그래서 자유주의와 개인주의는 통한다.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여 창의력을 극대화시켜 사회의 효율성을 달성하는 것이 개인주의적 자유주의다.

반세계화적 중상주의

중상주의 하에서 수출은 이득이고 수입은 손해라고 생각했고 대외적으로는 자립경제를 택했다. 오늘날 세게화와는 반대되는 개념이다. 중상주의 시대 때 식민지를 확보했는데 이것은 일종의 확대된 자급자족이었다. 본국과 식민지로 영역은 확대되었지만, 여전히 제국 안에서는 자급자족이다.

자유주의의 등장

중상주의에 반대해서 등장한 것이 자유주의이다. 상속에 따라 국경이 결정되었던 스페인 당시, 또는 조선의 종묘사직을 중시했던 시대에는 개인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개인은 통치자나 국가를 위해 존재했다. 그러나 반대로 국가나 사회가 개인을 위해 존재한다는 정치적 자유주의 사상이 17세기 유럽에서 등장한다. 또한 18세기에 계몽주의와 경제적 자유주의의 등장으로 자유주의가 널리 확산 되었다.

영국을 비롯한 스페인, 프랑스, 독일 등 유럽 각국은 1860년대에 상호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하면서 자유무역이 크게 확산 되었다. 루드비히 미제스는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직전인 1913년까지를 자유주의의 시대로 보았다.

자유주의시대에는 놀라운 경제적 발전이 있었다. 이 자유주의의 결과로 20세기가 시작될 때 무렵의 노동자들은 불과 한세게 전의 귀족들보다 더 높은 소비생활을 누렸다.

신중상주의 반격

20여년간(1873~1896) 유럽에 장기 불황이 이어지자 유럽의 자유주의는 위기에 직면했다. 이에 각국은 관세율을 높이고 보호무역주의로 돌아섰다. 또한 수출할 곳으로서의 식민지 쟁탈전이 있었다. 경기 변동으로 독점기업이 늘어나자, 독점자본주의에 대응하기 위해서 대기업에 대한 정부의 규제가 확산되었다. 그리고 지구의 ㅂ한쪽에서는 공산주의가 태동되고 정부가 시장을 대체하였다. 공산주의 확산에 대응하기 위해 서구에도 복지국가개념이 등장하여 정부가 시장에 깊숙이 개입했다.

미국에서 시작된 대공황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케인즈주의가 확산되어 정부가 인위적으로 경기변동을 조정하는 것이 당연시 되었다. 이러한 정부개입 확산과 보호무역확대 현상은 중상주의의 현상이므로 이를 '신중상주의 사조'라 부른다.

공산주의와 신중상주의

대공황(1929~1933)

대공황의 원인 - 시장실패 때문인가?

회복- 뉴질정책에 대한 평가

중남미의 포퓰리즘

복지국가 이념

동아시아의 개발독재

20세기 후반. 신자유주의 사조

상기한 내용대로 자유주의 사상과 이에 기초한 시장경제이념은 19세기말 부터 심각한 도전에 직면하고 1970년대 말까지 거의 백년간 중상주의 사조가 확산되었다.

그런데 20세기 후반으로 넘어오면서 다시 자유주의 사조가 중상주의 사조를 극복하기 시작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식민지 쟁탈전에 대한 반성이 일어나며 승전국들이 식민지를 독립시키고 그 대신 세계경제질서를 자유주의에 기초한 자유무역을 통한 세계화를 추진하게 되었다. 그 시작이 브렌튼우즈 체제와 GATT의 출현이다.

브레튼우즈 체제GATT출현

세계금융의 통합, 브레튼 우즈에서의 만남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 진행 중인 1944년 7월1일 미국의 브레튼우즈에서 연합국 44국이 제2차 세계대전의 원인이었던 경제민족주의와 식민지 쟁탈전에 대한 반성을 하고, 전후 세계시장경제질서를 어떻게 할 것이가 논의했다. 전쟁 전 각국은 자국 이익을 위해 경쟁적으로 자국 화폐의 평가절하로 'beggar-thy-neighbor policy'를 실시했는데, 이러한 무질서를 바로잡으려고 금 1온스의 가격을 미화33달로 고정하고, 각국의 화폐가치를 금의 가치로 표현함으로써 보다 고정적인 환율제도를 운용하기로 결정했다. 각국의 화폐가 금의 가치에 완전히 고정되어 있는 고정환율제도 대신에 1% 범위내에서 환율의 변동을 허용하는 'adjustable peg'제도이다. 당시 세계 금의 70%를 보유한 미국의 달러화를 금으로 태환이 가능하게 하고, 다른 나라의 화폐는 달러화와 교환함으로써 금과 태환이 가능하도록 한 방식으로 화폐의 가치를 유지하는 금본위제이다.

이후 미국의 달러화는 기축통화로 정해진다. 브레튼우즈 협정은 국제통화기금(IMF)를 통해 환율유지가 어려운 국가에게는 긴급자금을 빌려 줌으로써 국제적 통화질서가 유지되었고, 국제부흥개발은행(IBRD)를 통해 가난한 저개발 국가에 대한 원조를 해왔다. 국제 통화 안정, 구제 상호 무역의 발전, 개도국 지원을 목적으로 특히, 국제 환율안정을 목표로 운영된다.

GATT 협정

국제무역질서를 세우려고 1947년 쿠바수도 하바나에서 '하바나 헌장The Havana Charter'이 채택된다. 이 헌장의 핵심은 국제무역기구(International Trade Organization, ITO)를 통한 세계무역질서였다. 미 행정부가 주도했으나 미 의회는 반대하여 채택되지 못하고 미국은 철회한다. 그러나 국제무역을 위한 질서는 필요했기에 다자간 무역협상을 위한 절차와 기본 원칙들을 제공하기 위해 GATT협정을 체결했다. GATT는 전술한 국제무역기구와 같은 기구Organization가 아닌 협약Agreement에 불과하다. 그래서 GATT 가입국을 '회원국member state'라 하지 않고 계약에 동의한 국가라는 뜻의 '체약국contracting party'라 호칭한다. 그러나 GATT는 기구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기구와 동등한 역할 가진다.

GATT의 역할과 기본원칙 & UR

GATT는 무역장벽을 철폐해 자유무역을 확대하고 참여국의 경제발전을 통해 세계평화에 기여함이 그 목표다.

GATT 의 4가지 기본원칙은 아래와 같다.

  • 관세를 제외한 모든 비관세 장벽Non-tariff barriers철폐 :

비관세 장벽이란 무역을 직접적으로 제한하는 수량제한, 수입허가제, 각종 수입과징금, 외환할당 따위의 룰이다. GATT는 예외적으로 관세tariff 를 활용하는 것을 허용한다. 이는 자국 산업보호를 위함이다. 국가간 가격 경쟁력의 차이가 날때 관세를 부과함으로써 가격시스템을 활용하는 효과가 생긴다. 그러나 GATT는 각각 모든 국가들이 평균관세를 점진적으로 낮추는 것을 목표로 한다.

  • '무차별 원칙the priciple of nondiscrimination' :

GATT체약국들은 한 나라에 유리한 조건을 제공할 경우 기타 국가에도 동등한 조건을 제공한다는 '최혜국대우The most-favored-nation status'적용한다는 것이다.

  • 수입품에 '국산품 대우national treatment'하기 :

외국 상품에 대해 세금, 규제, 운송 및 유통 시에 국산품과 동등한 대우를 제공해야 한다는 것.

  • 다자간 무역협정, 라운드Round를 통한 자유무역확산 :
1947년~1986년 까지 8차에 거친 다자간협상[1]Round는 다음과 같다. 라운드는 회원국의 만장일치 선언 후 체결되었다. 마지막 우루과 라운드 체결에는 8년이 소요되었다.

테이블[2]

이름

(R.=round)

기간 및 참가국수 주제 및 접근방식 결과
제네바 라운드

Geneva R.

1947.

23국

관세:품목별 협상 45,000 관세율에 대한 양허*
에네시 라운드

Annecy R.

1949.

29국

관세:품목별 협상 점진적 관세인하
토르케이 라운드

Torquay R.

1950~1951.

32국

관세:품목별 협상 8,700 관세율 양허
제네바 라운드

Geneva R.

1956.

33국

관세:품목별 협상 점진적 관세 인하
딜런 라운드

Dillon R., Geneva

1960~1961.

39국

관세:품목별 협상.

제조업제품에 대한 EEC의관세율 20%일괄 인하제안 거부

ECC창설에 따른 관세율 조정(1957);4,400관세 양허
케네디 라운드

Kennedy R., Geneva

1964~1967.

74국

관세:일괄적용방식과 품목별 협상 병용.

비관세 무역장벽: 반덤핑에 대한 원칙.

선진국 평균 30%관세인하; 30,000 관세율 인하 약정;

반덤핑과 관세적용원칙 합의

도쿄 라운드

Tokyo R.

1973~1979.

99국

관세:일괄적용방식;

비관세 무역장벽:반덤핑, 보조금, 관세적용원칙, 정부구매, 제뭎기준, 세이프가드.

선진국 평균 관세 1/3감소(제조업 제품 평균 6% 관세율);

비관세 무역장벽에 대한 일부 국가의 행동원칙합의.

우루과이 라운드

Uruguay R., Geneva

1986~1994.

103국으로 출발, 117국(1993), 128국(1995)

관세: 품목별 협상과 일괄협상;

비관세 무역장벽: 토쿄라운드 이슈+선적전검사, 무역관련투자,원산지규정. 새로운 이슈: 서비스 교역, 지적 소유권, 분쟁해결절차, 투명성 무역정책감시.

선진국 관세1/3수준 감소.농산물 및 섬유제품 포함. WTO출범,

서비스협정(GATS)타결, 토쿄라운드 내용 강화 및 모든 회원국 자동 적용.

WTO탄생과 FTA

우루과이 라운드에서 WTO(World Trade Organization, 세계무역기구)가 탄생했다. 이후 세계는 자유무역을 확산시켜 나갔다. 그러나 너무 많은 회원국이 가입된 점, 우루과이 라운드 이후 농산물과 지적재산권 등 서비스산업까지 교역대상이 확대되어 타결이 어려웠다. 라운드 방식의 체결이 어려워지면서 2006년 7월 WTO에 의한 다자간 협상DDA(Doha Development Agenda)은 중단되었다. 이후 두나라간의 쌍무적인 FTA(Free Trade Agreement)방식으로 자유무역이 확산되어 지역주의를 선택하게 된다.

냉전의 영향과 자유무역체제의 확산

2차세계대전후의 냉전 체제하에서 IMF와 GATT에 의한 자유무역체제에 소련, 중국 등 공산주의 국가들과 제3세계 국가들은 들어 오지 않았다. 왜냐면 자유무역은 선진국이 세계국가들을 착취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단정해서이다.

  • 아시아 4마리 용 : 하지만 대한민국, 대만, 홍콩, 싱가포르 등 동아시아 개도국(아시아 4마리 용)들이 이 자유무역체제에 들어온 후에 고도 성장을 누리게 되자, 1980년대 이후 제3세계 각국은 자유무역체제에 적극 동참한다. 신흥 공업국가들의 무역이 세계무역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970년의 약5%에서 1995년 약20%로 증가되었다. 그리하여 이제는 어느나라도 국산품만을 이용하면서 살 수 없다. 평균관세율은 1950년 20%이던 것이, 2000년에는 3.9%로 하락했다.
  • 국가간의 자본, 노동 이동 :

생산요소의 국가 간 이동. 자본 이동의 변화는 상상을 초월한다. 1989년 일일평균 외환거래량은 7,180억달러 였는데, 2013년에는 5조3,000억 달러이다. 불과 15년만에 7.4배 증간된다. 노동이동의 장벽도 급속히 낮아지는 중이다. 미국에는 매년 100만명 이상의 이민자가 유입된다. 특히 인도 의사, 연구원 등 우수 인재가 미국이나 영국 등 영어권으로 급속히 이동 중이다. 우리나라에도 10개국 이상에서 산업연수생이 고용허가제로 년간 약 40만명의 해외근로자가 들어오고있다.

신자유주의, 대처와 레이건

1979년 영국의 마가렛 대처 수상이 집권하고 1980년도에는 미국 레이건 행정부가 출범하여 하이에크 등 자유주의 사상을 정책에 반영하자 자유주의에 반대하는 진영에서 '신자유주의'라는 용어를 얼리 사용하여 마치 과거와 다른 자유주의가 등장한 것 같은 이미지를 심어 주었다.

  • 대처 수상과 하이에크 :

영국의 마가렛 대처(1925~2013) 수상은 하이에크의 명저 노예의 길(The Road to Serfdom)을 읽고 깊이 공감하여 이를 실천에 옮겼다. 1979년 그녀가 당선된 날은 하이에크의 생일이었다. 그리고 하이에크에게 편지를 보냈는데, "우리가 성공한다면 가장 큰 공헌을 한 사람은 교수님일 것입니다. - 마가렛 대처"라고 썼다. 하이에크는 이것이 최고의 생일 선물이라고 여겼다.

  • 줄푸세의 하이에크 :

1974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하이에크는 '노예의 길'에서 지나치게 많은 계획을 세우는 정부는 지나치게 힘이 커진다고 주장했는데, 정부가 이 힘을 발휘하여 경제를 통제하면 국민들의 자유가 말살되어 국민을 노예화하게 된다고 썼다. 계획경제란 전체주의 국가로 가는 길이므로, 실업이 생겨도 견뎌야 한다 주장했다. 이같은 주장은 케인즈 주의와 완전히 반대이다. 그래서 그는 대공황 때에도 정부 개입을 반대했다. 그의 주장은 당시 팽배한 케인즈주의애 의해 무시되었고, 이 책 때문에 명예가 떨어지고 고향인 영국으로 돌아갔다.

  • 사무엘슨의 패배, 하이에크의 승리 :

공산주의 경제하에서도 번영이 가능하다는 주장을 담은 사무엘슨(Paul Samuelson, 1915~2009)의 '경제학'은 가장 널리 읽힌 경제학 교과서이다. 하이에크는 사회주의 경제는 절대 성공할 수 없다고 장담했다. 그의 생각은 오스트리아 학파(하이에크, 미제스 등)의 생각이며 "시장은 작동하고 정부는 불작동한다"는 것이다. 병상에서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다는 소식을 그의 아들에게서 들은 하이에크는 "거봐, 내가 뭐랬어"라 했다는 일화가 있다. 또 그는 "내가 젊었을 때는 나이 든 사람들만이 자유시장경제를 신뢰했다. 중년이었을 때는 나를 제외한 누구도 신뢰하지 않았다. 그러나 내가 노년이 된 지금은 젊은이들이 다시 자유시장경제를 믿게 되어 기쁘다. 이것은 굉장히 중요한 변화이다."라고 했다.

  • 케인즈주의의 종말 :

1970년대 이전까지 주류경제학을 지배하던 케인즈의 주장은 1973년, 1978년 두번의 오일쇼크로 종말을 고했다. 오일쇼크 때 각국은 케인즈의 수요확대정책으로 대응했으나, 오일가격의 상승과 이에 따른 자원민족주의의 영향으로 각종 자원의 가격이 상승하여 생산비가 상승학고 이에 따라 공급이 줄어든 상태에서 수요를 확대시키자 인플레이션이 더 발생했는데, 여전히 경기는 회복되지 않는 '경기침체하의 인플레이션' 즉 스테그플레이션이 발생했다.

  • 스테그플레이션. 공급확대로 해결 :

이로 인해 경제학계는 스테그플레이션 현상을 이겨내려면 수요확대가 아닌 공급확대라는 인식이 확산되었고, 이에 따라 불황기를 극복하는 최선은 인내하고 오히려 구조조정을 통해 비용을 낮추는 방법이 효과적이라는 하이에크를 비롯한 오스트리아 학파의 주장이 옳다는 인식이 늘어났다. 또한 대외적으로는 세계화 그리고 대내적으로는 규제완화, 민영화, 복지축소 등을 지향하는 자유주의가 1980년대 이후 세계적으로 확산된다.

자유주의의 대외적 현상 : 세계화의 확산

  • 세계화 확산은 FTA체결국간 역내 무역 증가와 지역별통합을 촉발함. EU는 동구 10국을 포함한 세계최대의 자유무역지대로 탄생.
  • 세계화의 특징 : 각 지역의 가격격차가 현저히 줄어들어야 함.
'세계는 평평하다'의 저자 토마스 프리드먼은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발견 후 19C를 세계화1.0라 하고, 19C후반 기업혁명 중심 세계화를 세계화2.0, 그리고 20C 후반 인터넷 혁명을 통한 개인단위의 세계화를 세계화3.0라 했으나, 경제학자들은 16C 이후 세계화1.0은 세계화 물결에 넣지 않는다. 그 이유는 이 시기에는 서로 모르던 지역간 상호 알게 되고 교역증가로 세계체제가 성립되는 시기이기는 하지만, 당시 교역 상품은 사치품에 제한되고, 이 시기에 각 상품 및 자본 가격이 서로 비슷해지는 가격수렴현상이 없었다. 19C 이전에는 그런 현상이 없었다.
  • 빌클린턴의 등장과 NAFTA 이후 :

20C 후반 세계화를 정치적인 실험대에 올린 첫 사건은 북미자유무역협정North American Free Agreement, NAFTA이다. 199년 미 대선에서 NAFTA찬성의 공화당 조지 부시는 떨어지고 민주당의 빌클린턴이 당선됨. 대선 전 NAFTA에 중도적 입장을 취했던 빌은 당선 후 찬성으로 돌아섬. 미 정부발표에 의하면 NAFTA발효 후 미국은 멕시코/캐나다 수입으로 약40만개의 일자리가 사라지나, 멕시코/캐나다 수출로 인해 90만개의 새 일자리가 생기고 1990년대 미 국제무역은 거의 2배 증가됨. 그후 1990년대 미 경제성장으로 미국 국내 약 1,700만개의 새 일자리가 생김. 특히 미국 노조 소속 일자리가 급감. 노조인 AFL-CIO는 일자리감소가 외국의 저임금노동때문이라 비난.

  • 세계화는 선진국의 후진국 착취인가? 아니다.

사실 시장이 개방되면, 득실이 있다. 특히 실업비용이 그것이다. 반면에 수입품 가격하락 후 개방이익은 잘 드러나지 않는다. 반대자들은 조직화되어 목소리가 크지만 찬성자들의 결집은 곤란하므로 항상 반대의 목소리가 더 크다.

반세계화 운동 원년인 1999.12. 미 시애틀에서 135개국 무역협상대표들이 모인 WTO회의가 열렸다. 4만명의 시위대가 모여들어 맥도날드 등 초국적 기업을 공격했다. 이를 '시애틀전투'라 한다.

2001.7. G8정상회담이 열린 제노바에서는 반세계화론자 15만명이 모였다. 이탈리아 정부는 경찰 2만에 핵무기, 화학무기, 통신분야 군병력 1500명, 해안경비병력 800명, 지대공미사일 부대와 공중공격 대비병력 400명 등배치, 길이 9킬로미터 높이 4미터의 콘크리트 장벽설치 후 통행금지구역선포함. 이때 충돌로 1명 사망.

이후 세계은행회의, 다보스Davos 세계경제포럼World Economic Forum, WEF 그리고 아시아유럽정상회인 아셈회의Asia Europe Meeting, ASEM 등에서 반대시위 계속되었다.

이후에 세계의 빈곤문제가 반세계화 운동의 주 이슈로 부각 되고 시애틀 시위 이후 반세계화 운동의 주도권은 노조에서 시민운동조직으로 넘어갔다. 이들은 세계의 빈곤이 세계화 때문이라 주장했고, 정말로 세계화가 지구인의 빈부격차를 확대시키는가에 관심이 커졌다.

세계화를 가속시키는 것이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이며, 이를 통해 선진국 착취를 합리화한다 인식하며 세계화를 선진국의 음모라 주장했다. 이들은 세계화라는 추세 자체를 부정하면서 자유무역의 확산으로 경쟁력이 낮은 국가산업 붕괴 후 빈부격차가 더 심해진다 주장했다. 특히 다국적 기업을 착취의 첨병으로 간주하고 경기변동도 세계화 때문이며, 세게화로 인해 각 나라 경쟁이 심화되고 국제적 긴장이 커진다 주장했다.

그뿐 아니라, 지구온난화, 오존층 파괴, 유전자 변형 등 환경문제도 세계화 때문이라 주장한다. 환경 문제해결을 위한 '교토의정서Kyoto Protocol'에 세계화를 주도하는 미국이 비준을 거부하자 세계화를 환경파괴의 주범으로 인식했다.

다음은 반론이다. 각국의 주권이 커졌기 때문에 다국적 기업이 후진국에 들어가서 과거와 같은 착취적 자본진출은 불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저 개발국은 정상회담을 할 때 상대방 국가 정상에게 자국 투자 요청을 하는 것이다. 또한 대한민국 투자자들 평균주식 보유기간은 2개월에 불과하지만, 외국인 투자자의 절대다수는 10년 이상 대한민국에 투자하는 장기펀드 운용회사라는 점을 볼때 외국인 투자자들이 단기 이익만 노리는 투기꾼이라 하기 곤란하다.


  • 세계화는 빈곤을 심화시킬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아래와 같다.

하바드 대 경제사학자 J 윌림암슨은 오히려 자유무역은 선진국/후진국 간 격차를 줄인다 보았다. 그 이유는 보호무역이 확산되던 20세기 초~ 중반기 사이에 국가 간 경제력 격차가 더 커진 반면에, 자유무역기조로 전환된 19세기 후반기 및 20세기 말에는 국가 간 격차가 줄었음을 실증 했다. 그는 1850년, 1914년, 1950년, 1998년을 깃점으로 각각 1기, 2기 3기로 나누었다. 빈부격차만을 보아 1,3기(고성장, 세계화)에는 국가간 그 차이가 줄었고, 2기(저성장, 반세계화)에는 격차가 커졌다. 그는 주장하기를 현대 시대가 주는 교훈은 세계화가 증가하면 전 세계는 경제적으로 성장하고 국가 빈부격차도 줄지만, 세계화가 후퇴하면 세계경제도 후퇴하고 국가간 빈부격차도 는다고 보았다.

세계지니계수도 하위20~40% 해당 자들의 소득이 전체 소득에서 차지 하는 비율 19세기 이래 지속적으로 하향세를 보이다가, 세계화 물결이 본격화된 1980년대 부터 역전 내지 정체되는 것으로 나타난다고 밝혔다.

그리고 세계인구중 하루 1달러 이하로 살아가는 절대빈곤층은 1970년에 17.2%에서 1998는 6.7%로 감소하였다. 또, 하루 2달어이하로 살아가는 절대빈곤층도 같은 기간 중에 41%에서 18.6%로 절반 이상 감소했다.

이 같은 사실은 세계화가 전세계적으로는 빈곤층을 줄여주었다는 뜻이다.

게다가 세계화에 참여한 개도국들은 브라질, 중국, 헝가리, 인도, 멕시코, 등의 199년대 경제성장률이 선진국의 평균인 2%대를 훨씬 상회하는 5%의 성장률을 기록한 반면에 비세계화 개도국들은 -1%로 오히려 경제가 후퇴했다. 따라서 세계화는 국가간의 격차도 줄여주는 역할을 한다.


  • 경기변동은 세계화 때문이 아닌 상품생산의 결과이다.
  • 국가간 경제력의 격차는 세게화가 아니다. 기술혁신과 제도의 차이 때문이다.
  • 세계화의 과제도 엄연히 있다.

조지프 스티글리츠(노벨 경제학상 수상) 그의 저서 '세계화와 그 불만'에서 세게화 추진 방식의 문제를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 첫째, 선진국이 일관성 없이 행동하기 때문.
  • 둘째, 너무 성급히 추진하기 때문.
  • 세번째, 개도국의 주권을 무시하기 때문.

신자유주의의 대내적 현상 : 작은 정부

신자유주의의 대내적 현상은 규제완화 및 민영화의 확산 등으로 인한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것이다. 그리고 정부에 대한 시장의 간섭이 대폭 축소되는 것을 원한다. 이러한 현상은 자유주의 국가들을 넘어서 공산권과 제3세계 국가까지 확대되었다.

서방세계의 변화

영국 보수당의 대처혁명
미국 공화당의 레이거노믹스

공산권의 변화

동서독의 통합
구소련의 해체
중국의 변화

제3세계의 변화

  • 4마리의 용
  • 인도
  • 라틴아메리카
  • 아르헨티나
  • 칠레
  • 볼리비아
  • 브라질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로 정부개입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그러나 2008년 글로벌 위기도 역시 시장실패가 아니다. 바로 그원인은 정부개입때문이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 카터의 저소득층에 대한 금융지원.
  • 레이건의 금융지원 중단.
  • 클린턴의 CRA - 금융지원의 확대.

20세기 이후 세계 현대사를 보면 근대에 형성되었던 시장경제로 인하여 세계각국이 발전되었으나, 여전히 이에 대한 반발이 존재하여 신중상주의 사조가 풍미하다가, 다시 자유주의 사조로 확산되고, 또 다시 위기가 발생하면 정부의 간섭이 강조되는 것이 현재의 모습이다.


엮음글

각주

  1. 국가기록원 http://www.archives.go.kr/next/search/listSubjectDescription.do?id=003504
  2. 자료 : 김승욱 외 3인. 2015, 435, 표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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