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문 사건(‎天安門 事件)[1]은 1989년 6월 4일 중국 베이징의 천안문 광장에서 중국 공산당의 독재와 부패에 항의하여 일어난 대규모 시위를 중공 당국이 탱크를 동원, 강경 진압하여 1만여명의 사망자를 낸 사건을 말한다.


이때부터 미국 포함 서방에서는 중공을 달리 보게 된다. 미국은 소련을 견제하기 위해 중국과 수교하고 무기지원 까지 했는데, 이 사건 이후로 미국은 중국에 무기 지원을 끊게 된다.

사건 관련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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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포토] 30년 만에 깨어나는 진실...'톈안먼 사건' 기록사진 공개③ 에포크타임스 2019-05-30
[단독포토] 30년 만에 깨어나는 진실...'톈안먼 사건' 기록사진 공개④ 에포크타임스 2019-06-03
[단독포토] 30년 만에 깨어나는 진실...'톈안먼 사건' 기록사진 공개⑤ 에포크타임스 2019-06-04


On the 30th anniversary of the massacre, commemorations to those who were killed will show the Chinese government we will not be silenced.

중공 당국은 공식적으로는 사망자 수를 발표한 적이 없고, 일반적으로 1,000 ~ 2,000 명 정도 될 것으로 추정되어 왔다. 그러나 최근 영국이 공개한 당시 외교문건에 의하면 희생자가 1만명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톈안먼 사태 사망자 1만명 넘는다" 영국 기밀해제 외교문서 한국경제 2017. 12. 21
At least 10,000 people died in Tiananmen Square massacre, secret British cable from the time alleged The Independent 23 December 2017


천안문 사건을 한국의 1980년 5.18 광주사태와 유사하다고 설명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천안문 사건은 중국 인민해방군이 탱크를 동원하여 비무장 시위대를 강경진압한 것이다. 이에 비해, 광주사태가 악화된 이유는 시위대가 아시아 자동차를 습격하여 장갑차, 버스, 트럭등 차량을 탈취하여 시내를 질주하며 광주, 전남 일대 수십 곳의 무기고에서 총기를 탈취하여 무장하고, 한 순간에 광주시 전체를 날려버릴 수도 있는 분량의 폭약을 전남도청에 설치한 때문이다. 군사작전을 방불케하는 이러한 일을 벌인 집단이 과연 당시 운전면허도 없던 평범한 광주시민이 맞는지 극비리에 잠입한 잘 훈련된 북한군인지를 두고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천안문 광장 1989년 6월 4일

천안문 사건 30주년

천안문 사건 30주년을 맞아 홍콩에서는 대규모 추모시위가 벌어졌다.
On the 30th Anniversary of Tiananmen Square PRESS STATEMENT / MICHAEL R. POMPEO, SECRETARY OF STATE / JUNE 3, 2019
오늘날 천안문 광장에는 감시 장비가 촘촘히 설치되어 있어 그러한 시위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천안문, 개인의 기억

진실은 개인에게 있다. 죽음을 버텨내는 개인의 삶에 진실이 있다.

함께 보기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