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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춘 학살
최근 수정 : 2019년 8월 3일 (토) 1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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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장춘학살, 혹은 장춘위곤(長春圍困, Siege of Changchun, 장춘 포위공격), 곤장춘(困長春)이라 불리는 이 사건은 국공내전 당시 인민해방군에 의해 벌어진 참사이며, 1948년 5월 부터 10월까지 진행되었다. 당시 중국공산당(팔로군)은, 국민당군이 약 10만과 민간인 약 50만 정도가 있던 도시 전체를, 철조망과 보초로 둘러 막은 후, "식량은 못 들어가고, 사람은 못 나온다"(糧不入, 人不出) 라는 극도의 포위작전을 전개한다.

특히 국민당군의 철조망과 팔로군의 철조망 사이, 즉 "치아즈"라 불리우는 경계지역은 그야말로 지옥 그 자체였다. 겹겹이 쌓인 아사자들의 시체와, 그 시체를 먹는 야생동물, 그 야생동물을 잡아먹으려는 생존자등으로 아비규환이 펼쳐졌다. 최소 12만에서 많게는 약 30만명이 말 그대로 '굶어' 죽었다.

팔로군의 장군 '임표'의 포위작전은, 장춘을 “죽음의 도시”로 만드는 잔혹한 전술이었다. 보급을 완전히 차단해 10만의 국민당 병력과 함께 50만 민간인도 함께 말려 죽이는 "홀로코스트"인 이 사건은, 전국시대 <손자병법>의 '손무'(孫武)가 가장 잔인하고도 소모적인 전술이라 극구 경계했던 포위전(siege warfare)을 모방했다.


배경

1945년 8월 15일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원자폭탄 폭격 후,일본은 무조건 항복을 선언한다. 이후 국민당과 중국공산당 사이에는 일제가 지배하던 지역들을 서둘러서 쟁탈 하려는 싸움이 발생한다.

특히 만주지역은 가장 정비가 잘 되었던 곳이었기 때문에, 국민당과 중국공산당 사이의 경쟁이 가장 치열했다.

장춘2.png

만리장성 이북 길림의 소도시였던 장춘은, 19세기 말 만주 지역의 양대(兩大) 철로가 개설되면서 교통의 요충지로 급속하게 성장한다. 이후 만주국의 수도가 되면서 이국풍 건물이 들어선 휘황찬란한 도시로 거듭난다. 장개석의 국민당 제1병단은 1946년 5월 23일 시민의 뜨거운 환영을 받으며 장춘을 점령하는데, 그해 겨울 제1병단이 요서(遼西)의 사평으로 옮기면서 장춘에는 약 제7군과 제60군(운남성 출신 부대) 등 대략 10만의 병력만이 남아 황포 군관학교 출신 지략가 '임표'가 이끄는 중국공산당 팔로군과 대치하게 된다.

전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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