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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공 내전
최근 수정 : 2020년 1월 14일 (화) 18:01

國共內戰
간체자: 国共内战,
번체자: 國共内戰
영어: Chinese Civil War

개요

국공 내전은 1927년 이후 중국 국민당[1]중국 공산당[2] 사이에 중국 재건을 두고 일어난 두 차례의 내전을 말한다. 중화인민공화국에서는 해방전쟁이라고도 부른다.

구분

  • 제1차 국공 내전(1927년 ~ 1936년)
  • 제2차 국공 내전(1946년 ~ 1949년)

대장정과 시안사건

제1차 국공 내전에서 모택동의 중공군은 국민당군의 포위망을 뚫고 1934년 10월 중국 남부 장시성(江西省)을 출발하여 370일을 거쳐, 9600km의 거리를 걸어서 1935년 10월 산시 성 (섬서성, 陝西省) 옌안으로 탈출했는데 이를 중공은 대장정(大長征, Long March)이라 부르지만 실상은 참담한 패퇴였다.

공산군이 거의 말살될 위기로 몰렸을 때 만주 군벌 장작림(張作霖, 1875~1928)의 아들 장학량(張學良, 1898 ~ 2001)이 1936년 12월 시안 사변(西安事變)을 일으켜 장개석을 구금하고 공산군과의 내전을 중단하고 함께 일본과 싸울 것을 종용하여 장개석은 어쩔 수 없이 제2차 국공합작을 하게 된다.

하지만 일본 침략에 맞서 항일전쟁을 벌인 쪽은 장개석의 국민당군이며, 모택동의 중공군은 엄밀한 의미에서 항일투쟁을 했다기보다 국민당 군을 타도하고 중국을 공산화하는 데에 더 주력하여, 일본군에 국민당 군의 정보를 거액의 돈을 받고 팔아 넘기기도 하였다.

「일본군의 침공에 감사한다」(1956 년 9 월 4 일의 모택동 발언) 중국 연구 전문가가 그린 「건국의 아버지」의 진실。: 「日本軍の進攻に感謝する」(1956年9月4日の毛沢東発言)中国研究の第一人者が描いた「建国の父」の真実。[3]
2015년 엔도 선생은 <<모택동: 일본군과 공모한 남자(毛沢東 : 日本軍と共謀した男)>>란 제목의 역작을 발표했다. 선생의 세밀한 논증에 따르면, 중일전쟁 시기 모택동은 일본 외무성 지부에 반한민(潘漢民, 1906-1977) 등의 중공 스파이를 심어서 장개석 및 국민당 관련 고급 정보를 비싼 가격에 일제에게 넘기고 거액의 뒷돈을 챙겼으며, 일본과의 밀약을 체결해 중국공산당의 세력 확장만을 꾀했다. 한 논평에 따르면, 이 책은 “중국연구의 제1인자가 철저히 조사한 자료로 들려주는 중국공산당의 불편한 진실”이다.
천하의 모택동이 항일전쟁 시기 “일제와 공모를 했다니?" 엔도 선생의 논증은 그야말로 폭군의 목을 겨눈 날카로운 비수가 아닐 수 없다. 과연 모택동이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장춘에서 아사한 수십 만 난민들 틈에서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한 가녀린 소녀가 70년이 지난 지금 동경대학 국제관계 연구소의 소장이 되어 자신을 단죄하리란 사실을!

모택동이 「일본군의 침공에 감사한다」고 한 것은 일본의 침공이 아니었으면 중공군은 일찌감치 토벌되어 사라졌을 것이기 때문이다.

시안 사변을 일으켰던 장학량은 나중에 대만으로 끌려가 가택연금되어 살다가 1993년에 연금이 해제되어 하와이에서 말년을 보냈다.

만주

  • 만주서 ‘사면초가’에 빠진 중공…기댈 곳은 북한뿐이었다[5]
주요문단 발췌

[1945년] 8월11일, 팔로군 사령관 주더(朱德)가 6호 명령을 선포했다. “소련 홍군과 함께 중국과 조선 경내에 진입해라. 현재 중국 화북 지역에서 일본군과 작전중인 조선의용군[6]무정(武亭)과 부사령관 박효삼(朴孝三), 박일우(朴一禹)는 부대를 이끌고 팔로군과 함께 동북으로 이동해라. 일본의 괴뢰인 만주군을 소멸하고, 동북의 조선 인민을 조직해 조선 해방을 달성해라.”

소련에 가 있던 동북항일연군 출신 조선인들(88여단)은 이들보다 동작이 빨랐다. 1945년 8월말까지 북한을 점령한 소련군은 김일성88여단의 조선인들을 9월 19일 푸가초프호로 원산항을 통해 입북시켜 평양에 데려온 후 38선 이북의 최고 권력을 쥐어준다. 일부는 동북으로 이동해 ‘민주대동맹’을 결성했다. 북한의 소련군은 자신들이 훈련시켜 데려온 88여단 출신들을 일방적으로 지원하고, 국내에서 일본에 저항하던 조만식 등 민족 세력들을 무자비하게 탄압했다.

11월이 되자 국민당 대군이 동북으로 몰려들었다. 소련 홍군은 동북민주연군의 철수를 요구했다. “도시에서 나가라. 상부의 지시다. 철수하지 않으면 탱크로 밀어버리겠다.” 거의 명령조였다. “공산당 군대가 다른 나라의 공산당 군대를 탱크로 밀어버리겠다니, 말이 될 소리냐”고 항의해도 소용없었다.

북만주에서 승기를 굳힌 국민당 군은 창춘지린(길림)을 점령해 동남과 남북을 차단했다. 중공은 압록강변의 단둥(丹東)과 퉁화(通化)마저 국민당 쪽에 내줬다. 동북민주연군은 혼란에 빠졌다. 도망자가 속출했다. 동북민주연군은 동북에 와서 급조된 부대였다. 팔로군 출신은 앞에 말한 것처럼 10만여명에 불과했다. 비적, 아편 중독자, 만주국 경찰, 탈옥수 등이 섞여 있다 보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국민당 군의 공세가 시작되자 5만여명이 투항하거나 중공이 파견한 간부를 살해하고 탈영했다. 남만 지역도 다르지 않았다. 자고 나면 8천여명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둔화(敦化)의 경우는 8개 연대 중 조선족으로 구성된 1개 연대 외에 7개 연대가 국민당 쪽으로 넘어갔다. 동북민주연군은 활로를 모색해야 했다. 그 넓은 만주 벌판에서 공급을 차단당한 중공은 남만의 부상병과 가족들, 전쟁물자 수송이 난관에 처했다. 기댈 곳은 단둥에서 투먼(圖們)까지 800㎞의 국경을 맞댄 북한밖에 없었다. 천윈은 베이징 칭화대학 경제학과 출신인 주리즈(朱理治)와 훗날 중국 해군사령관이 되는 샤오징광(蕭勁光)과 함께 마오쩌둥의 부탁 편지를 들고 평양으로 향했다. 김일성은 마오의 특사 두 사람을 김책의 집에 머물게 했다. 북한 쪽이 만주에 대한 물자수송로를 터주고 부상병과 간부 가족들을 돌봐달라는 천윈의 부탁을 그는 모두 들어줬다. 마오의 서신은 더욱 노골적이었다. “전쟁에는 무기가 제일 중요하다. 아무리 사기가 높아도 사상 무장이 잘 돼 있어도 총과 실탄이 없으면 오합지졸이다.”

김일성은 알았다며 토를 달지 않았다.
국공내전의 승부처는 만주가 갈랐다.

북한의 공산화가 중국 적화의 결정적 요인

국공 내전의 승패를 사실상 결정지은 것은 만주에서의 결전이며, 초반 궁지에 몰렸던 모택동 군이 북한으로 들어가 휴식을 취하며 치료도 받고 무기와 기타 지원을 받아 전세를 역전시켰다. 모택동 군은 만주에서 최종 승리한 후 채 1년도 못되어 중국 본토 전체를 석권했다. 아마도 이 때문에 모택동6.25김일성의 참전 요청을 거절하지 못했을 것이다.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이정식[7] 명예교수의 견해이다.


다른 의견으로, 당시 국민당군이 만주에서 중공군을 거의 궤멸까지 몰아 갔었다. 그러나 미국에서 모택동군을 궤멸로 몰아가는 국민당군의 진격을 멈추게 하였다. 미국의 조지 C 마샬이 중국으로 날아가 멈추지 않으면 미국의 모든 지원을 끊겠다는 으름장으로 장개석으로 하여금 국민당군의 진격을 멈추게 하였다. 당시 국민당군 장군들은 만주에서의 모택동군 전멸이 코 앞이라며 장개석에 반발하였다. [8] 아더 월드런에 의하면 미국이 만주에 중국공산당의 국가를 그리고 중국 본토에는 장객석의 중화민국으로 분단을 미국이 지정학적 질서로 하고자 했을 수 있다고 추정하고 있다. 만약 당시에 조시 마샬이 장개석으로 하여금 만주에서의 추격을 멈추지 않게 하였다면, 한국전쟁도 베트남 전쟁도 없었을 수 도 있었을 것이라는 역사의 가정을 풀어나갔다.

결과

중국 본토에는 마오쩌둥이 이끄는 중국 공산당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립되었으며, 장제스가 이끄는 중국 국민당난징에 있던 중화민국 정부를 타이베이로 이전하였다. 이후에도 1958년 진먼 포격전까지 하이난 섬 등 중국 대륙 부속 도서에서 양측 간의 크고 작은 전투가 계속되었다. 양안(兩岸) 사이에 정전(停戰)에 관한 공식 합의는 없었으나, 1979년 1월 1일 미·중 국교 정상화로 중국인민해방군이 진먼 섬에 대한 포격을 멈춘 이후 사실상 정전 중이다.

함께 보기

* 공산주의 잔혹사
* 문화대혁명
* 장춘 학살
* 장개석
* 모택동
* 천안문 사건
* 킬링필드

각주

  1. 송재윤, <文革春秋: 현대중국의 슬픈역사> 4회. “1948년 장춘 홀로코스트”(II) pennmike 2018.01.19
  2. 중국의 산업공동화와 인민폐의 미래는 ? 박상후 유튜브 2019.5.26 : 5분 40초경부터
  3. http://www.hani.co.kr/arti/politics/defense/630669.html 만주서 ‘사면초가’에 빠진 중공…기댈 곳은 북한뿐이었다
  4. 조선의용군 위키백과
  5. 이정식 펜실베이니아대 교수의 인생 유전 중앙일보 2011.11.09 종합 4면
  6.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407517 제20장 분단되지 않은 한겨레 - 1946년 국민국의 회군 / 아더 월드런 편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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