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3월 26일 북괴군이 어뢰를 쏘아서 남한의 천안함을 폭침시킨 사건

사건 개요

2010년 3월 26일(금) 21:22경 백령도 인근 해상(37˚55'45'N, 124˚36'02'E, 백령도 서남방 25km)에서 정상적인 임무수행 중이던 해군 2함대 소속 천안함(초계함)이 북한의 어뢰 공격에 의해 침몰되었으며, 승조원 총 104명 중 46명이 전사하고 58명은 생존하였다.

사건 발생 전

천안함의 함교에 당직사관 등 7명, 전투상황실 7명, 통신실 2명, 함수포 상비 탄약고 3명, 기관조종실 7명, 유도조종실 1명, 디젤기관실 2명 등 총 29명이 당직근무 중이었고, 기타 인원은 식당, 침실 등에서 휴식 및 취침하고 있었다. 함장은 21:05경 함내 순찰을 마치고 함장실로 들어와 컴퓨터 e메일·게시판과 KNTDS2) 화면을 확인 중이었다. 천안함의 당시 상황은 21:22경 근무상황에 비추어 볼 때 정상적으로 임무수행 중에 있었다.

사건 발생 후

천안함의 생존자 58명은 후미의 충격과 함께 ‘꽝! 꽈~아앙’(1~2초간) 소리를 들었고 정전과 동시에 일부 격실에 해수가 유입되면서 갑자기 우현으로 90° 기울어졌다고 진술하였다. 함장은 사건 발생 시의 충격으로 함장실에 갇혀 있다가 통신장 등 4~5명의 승조원이 내려준 소화호스를 허리에 묶고 외부 좌현갑판으로 탈출하였으며, 이때 천안함의 생존자 중 20여 명이 갑판에 모여 있었다.

함장이 함미쪽을 확인한 결과, 연돌 이후 부분이 보이지 않았고, 약한 기름냄새를 맡았으며, 승조원이 모여 있는 함수 부분은 우현으로 90° 기울어져 있는 것을 보고 필요한 조치를하였다. 함장은 먼저 부장에게 함정 내부에 갇힌 승조원 구출을 지시하고 작전관에게 인원을 파악하고 구조함 접근 시 함에서 내릴 수 있는 곳을 확인하도록 지시하였다. 또한 중위 등 6 명에게 부상을 당해 움직일 수 없는 하사(요추골절), 하사(대퇴부골절), 상사(대퇴좌상), 상사(어깨손상), 상사(늑골골절)를 부축하거나 등에 업어 구조하도록 조치하였다. 함장은 함수에 있는 생존자를 구조한 후 인원을 점검한 결과 총 58명이었으며, 고속정이 올 때까지 대기할 것을 지시하였다.

함장은 22:32~22:42경 2함대사 22전대장과 전화통화를 하였고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뭐에 맞은 것 같습니다."

"뭔거 같애?”

"어뢰 같은데요, 함미가 아예 안 보입니다.”

"함미? 함미 어디부터?”

"연돌이 안 보여요, 고속정이나 RIB 빨리 조치해 주십시오.”

"생존자는?”

"8명이고 다수가 피를 흘리며, 못 일어서는 중상자가 2명입니다.”

상황 보고 및 전파

21:28경 천안함 포술장은 정전으로 함내 유·무선을 이용한 통신이 제한되어 휴대전화를 사용하여 2함대 상황장교에게 구조를 요청하였다. 2함대 상황반장이 통화내용을 듣고 상황장교의 휴대전화를 넘겨받아 “배가 우측으로 넘어갔고 구조가 필요하다.”는 내용을 확인한 후 21:30경 문자정보망을 이용하여 대청도에 있던 고속정편대에 긴급출항을 지시하였다.

21:30경 2함대 당직사관은 지휘통제실에서 천안함 전투정보관으로부터 “천안함이 백령도 근해에서 ‘좌초’되어 함정이 침몰되고 있으니 빨리 지원병력을 보내 달라”는 전화를 받고, 지휘통제실장에게 보고한 후 직통전화로 인천해양경찰서 부실장에게 전화하여 “현재 백령도 서방 우리 함정에서 ‘좌초되었다’는 연락이 왔는데 일단 급한 상황이니 인근에 있는 해경 501함, 1002함을 백령도 서방으로 빨리 보내 달라”고 요청하였다.

인천해양경찰서 부실장은 즉시 대청도 남방 해역에 있던 501함과 소청도 남방 해역에 있던 해경 1002함에 출동할 것을 지시하였다.

21:32경 2함대 연락장교는 자신의 휴대전화로 옹진군청 소속 어업지도선 214호 선장에게전화하여 “해군 천안함이 백령도 서방에서 침몰 중이니 구조하는 데 지원해 달라”고 요청하였으며, 어업지도선 선장은 옹진군청 담당공무원에게 사건 접수를 통보하고 21:50경에 출항하였다.

승무원 구조

해군 고속정과 해경함, 관공선 등 모든 작전요소가 동원되어 총 58명을 구조하였다.

21:56에 고속정 3척이, 22:`10에는 고속정 2척이 천안함에 도착하여 인명구조를 시작하였다. 고속정 편대는 천안함에 홋줄(3인치)을 결속하였고 천안함 작전관이 고속정으로 건너뛰던 중 바다로 추락하여 고속정에 의해 구조되었다. 함장은 고속정을 이용할 경우에 함정이 흔들려 실족의 위험이 있다고 판단하여 해경정의 RIB 이용을 결심하였다.

22:38경 너울로 인해 천안함 함수에 있는 승조원의 추락 위험이 우려되어 고속정과 천안함 간 홋줄을 풀었고, 22:41경 해경 501함(500톤)의 2척의 RIB이 도착, 천안함에 접근하여 19명을 구조하였다.

23:08경 어업지도선 인천 227호는 환자 2명을 구조한 후 백령도로 후송하였고 잔류인원 36명은 해경 501함에 의해 구조되었다.

함장은 RIB이 도착한 후 함수 포대에 모여 있는 인원을 먼저 이송하도록 조치하면서 “환자부터 밑으로 내려가고, 중상자는 잘 부축하라.”고 지시하였다. 생존자들은 함장의 지시에 따라 환자와 이병 등이 먼저 구명정과 RIB을 이용하여 해경 501함으로 이동한 후 함장, 부장, 통신장이 마지막으로 이함하였다.

3월 26일 23:13~27일 04:35까지 천안함 침몰 지역 부근을 수색하였고 해경 501함에 탑승 중인 51명은 고속정편대로 환승하였다가, 다시 초계함으로 재환승하여 3월 27일 14:00경 평택항에 도착하였다.

천안함 침몰사건 합동조사결과 보고서

천안함 침몰사건 합동조사결과 보고서는 4개국 12개 민간연구기관 및 군의 총 73명의 전문가가 과학수사, 함정구조, 폭발물, 정보 분석 등 다양한 분야의 조사 및 보고서 작성에 적극 참여하였고, 보고서 내용에 전원이 동의하여 국제적으로 검증된 자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대한민국의 조작극이라고 비난하였고 대한민국 내에서도 조사 결과에 사실과 다른 의혹을 제기하고 유언비어를 유포하는 등 무책임한 언행을 하는 게 현실이다. 최근까지도 천안함 피격사건이 침몰 사건인것 처럼 표시한 위키백과 등이 좋은 예이다.

개요

국방부는 2010년 3월 26일, 천안함 침몰 이후 민-군 합동 조사단을 구성하여 침몰원인 규명을 위한 조사 활동에 착수하였다. 조사 과정의 신뢰성을 제고하기 위해 국내 12개 민간기관의 전문가 25명과 군 전문가 22명, 국회추천 위원 3명, 미국-호주-영국-스웨덴 4개국 전문가 24명으로 조사단을 편성하고, 과학수사-함정구조 및 관리-폭발유형분석-정보분석 등 4개 분과루 나누어 조사를 진행하였다.

결과

인양한 함수, 함미 선체의 변형형태와 사고 해역에서 수거한 증거물들을 조사한 결과, 천안함은 북한에서 제조한 감응어뢰의 강력한 수중폭발에 의해 선체가 절단되어 침몰한 것으로 판단하였다.

  1. 선체 손상 부위를 정밀계측하여 분석한 결과 충격파와 버블효과로 인하여 선체의 용골이 함정 건조 당시와 비교하여 위쪽으로 크게 변형되었고, 외판은 급격하게 꺾이고 선체에는 파단된 부분이 있었다. 주갑판은 가스터빈실 내 장비의 정비를 위한 대형 개구부 주위를 중심으로 파단되었고, 좌현 측이 위쪽으로 크게 변형되었으며, 절단된 가스터빈실 격벽은 크게 훼손되고 변형되었다.
  2. 함정 내·외부의 표면을 면밀히 조사한 결과 함정이 좌우로 심하게 흔들리는 것을 방지해 주는 함안정기(艦安定器)에 나타난 강력한 압력흔적, 선저 부분의 수압 및 버블흔적, 열(熱)흔적이 없는 전선의 절단, 가스터빈실 선체에 나타난 구형압력흔적 등은 수중폭발에 의한 강력한 충격파와 버블효과가 함정의 절단 및 침몰의 원인임을 알려주고 있다.
  3. 생존자들은 거의 동시에 폭발음을 1~2회 청취하였으며, 충격으로 쓰러진 좌현 견시병의 얼굴에 물이 튀었다는 진술, 백령도 해안 초병이 2~3초 동안 높이 약 100m의 백색 섬광불빛을 관측했다는 진술 등을 분석한 결과 이는 수중폭발로 발생한 물기둥 현상과 일치하였다. 또한 부상자 상태와 시체검안 결과 파편상과 화상의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고, 골절과 열창 등이 관찰되어 충격파 및 버블효과로 나타날 수 있는 현상과 일치하였다.
  4. 한국지질자원연구원의 지진파와 공중음파를 분석한 결과 지진파는 4개소에서 진도 1.5규모로 감지되었으며, 공중음파는 11개소에서 1.1초 간격으로 2회 감지되었다. 지진파와 공중음파 분석 결과 폭발원은 동일하였으며, 이것은 수중폭발에 의한 충격파와 버블효과의 현상과 일치하였다.
  5. 1차 미국 측의 선체 변형 현상 분석 결과 수심 약 6~9m, 가스터빈실 중앙으로부터 좌현 3m 위치에서 총 폭약량 TNT 200~300kg 규모의 폭발이 있었던 것으로 판단되었고, 2차 한국 측의 시뮬레이션 결과는 동일 지점에서 총 폭약량 TNT 250~360kg 규모의 폭발이 있었던 것으로 분석되었으며 영국 측도 함께 참여하였다.
  6. 백령도 근해 조류를 분석해 본 결과 강한 조류로 인해 기뢰부설은 제한되는 반면, 어뢰 발사에는 영향이 미약한 것으로 판단하였다.
  7. 폭약성분 분석 결과 HMX는 연돌·함수절단면 등 28개소에서, RDX는 연돌·해저 토양 등 6개소에서, TNT는 함안정기 등 2개소에서 각각 검출됨으로써 HMX, RDX, TNT가 혼합된 폭약성분임을 확인하였다.
  8. 민·군 합동조사단은 특수그물망을 이용하여 침몰 해역에 대한 정밀탐색을 실시해 오던 중 5월 15일 침몰 해역에서 어뢰로 확증할 수 있는 결정적인 증거물로 어뢰의 추진동력장치인 프로펠러를 포함한 추진모터와 조종장치 등을 수거하였다. 이 증거물은 북한이 해외로 수출할 목적으로 배포한 어뢰 소개자료의 설계도와 크기, 모양 등이 일치하였다.
  9. 천안함 선체에서 발견된 흡착물질과 어뢰 추진동력장치에서 발견된 흡착물질의 성분을 분석한 결과 동일한 성분인 것으로 확인되었다.

결론적으로 침몰 해역에서 수거된 어뢰 추진동력장치와 선체의 변형형태, 관련자들의 진술내용, 부상자 상태 및 시체검안, 지진파 및 공중음파 분석, 수중폭발의 시뮬레이션, 백령도 근해 조류 분석, 폭약성분 분석, 수거된 어뢰부품들의 분석 결과에 대한 국내·외 전문가들 의 의견을 종합해 보면, 천안함은 어뢰에 의한 수중폭발로 발생한 충격파와 버블효과에 의해 절단되어 침몰되었고, 폭발위치는 가스터빈실 중앙으로부터 좌현 3m, 수심 6~9m 정도이며, 무기체계는 북한에서 제조한 고성능폭약 250kg 규모의 CHT-02D 어뢰로 확인되었다.

軍, 천안함 폭침 징후 알고도 조치 안해

공격 징후 사전 포착, 국방부 보고
천안함 음모론’ 근거 없다는 방증
“특별한 조치 안해” 군 기강 지적
해군 수뇌부, 해당 문건 파기 지시
지난 2010년 3월 천안함 폭침 사건을 앞두고 군 당국이 북한군의 공격 징후를 사전에 포착했던 정황이 담긴 문건이 15일 처음으로 공개됐다.

공격 징후는 북한군이 치밀하게 준비한 뒤 천안함을 폭침했다는 단서가 된다. 동시에 그간 신상철 전 천안함 민군합동조사단 조사위원(당시 민주당 추천) 등이 제기했던 좌초설 등의 음모론을 부인하는 방증도 된다.

최원일 전 천안함 함장은 폭침 사건 당시 군 당국이 북한의 공격 징후를 포착해 군 지휘부에 관련 보고를 했는데도 적절한 조치에 나서지 않았던 정황을 담은 문건을 15일 중앙일보에 공개했다.

‘국가안보총괄점검회의 의장 일행 부대방문 행사 결과’라는 제목의 한장짜리 문건에는 김종태 전 기무사령관이 “천안함 사건 발생 며칠 전 사전 징후를 국방부ㆍ합참에 보고했으나 아무런 조처를 하지 않았다”고 답한 내용이 적혀 있다.

김 전 사령관의 발언은 지난 2010년 8월 12일 대통령 직속 국가안보총괄점검회의(점검회의) 위원단이 해군 2함대 현장을 방문한 자리에서 나왔다.

구체적인 사전 징후와 관련해선 “수중 침투 관련 징후”라고 언급했다. 이에 대해 익명을 요구한 군 관계자는 “이는 통상 한ㆍ미 연합군이 포착한 북한 지역 군사 활동과 관련된 신호정보”라고 풀이했다.

현장 토의에서 김 전 사령관은 “합참의장에게 조처를 하도록 여러 번 요구했으나 특별한 조치를 하지 않았다”며 “군 기강이 해이해졌다. 침투 징후를 예하 부대에 전파하지 않았고 적극적인 조치를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천안함 폭침은 김정은의 작품

워싱턴 포스트 북경지국장 안나 파이필드(Anna Fifield)[1]가 2019년 6월 11일 간행한 저서 "The Great Successor: The Divinely Perfect Destiny of Brilliant Comrade Kim Jong Un"에는 김정일로부터 후계자로 지명받은 김정은이 장군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 천안함 폭침 사건을 일으켰다고 나온다. 자신이 후계자가 될만한 능력을 가졌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한 짓이라는 것이다.

美서 김정은 분석 '위대한 계승자' 출간…"어린시절부터 비행기광" 뉴시스 2019-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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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분경 이 책의 천안함 피침에 대한 이야기가 나옴.

추모

2020년 3월 26일 천안함 10주기. 그동안 좌파 문재인 정부에서는 추모식에 참여치 않고 있다.

 2010년 3월 26일 천안함 침몰 당시 막내 하사였던 정주현 씨는 아직도 3월이 두렵다.
매년 3월이 되면 몸이 너덜너덜해지는 것 같다고 한다.
 "죽은 사람들이 저한테 다가오는 환영이 보이더라고요. '너는 왜 살았어.' 이런 이야기를 할 때도 있고. 원래는 그런 말을 할 분들이 아닌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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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모론

함께 보기

각주

  1. Anna Fifield - Wikipedia
  2. 29954_39676_5452.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