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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기 1543년에 서양에서는 코페르니쿠스가 지동설을 주장한 논문이 간행되었고, | 서기 1543년에 서양에서는 코페르니쿠스가 지동설을 주장한 논문이 간행되었고, 일본은 서양에서 전해온 철포(鐵砲)를 처음 입수한다. 이때 조선에서는 풍기군수 주세붕이 백운동 서원을 세웠다. | ||
일본은 이때부터 서양 문물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기 시작한 반면에, 조선은 성리학 외골수로 나아가 사대하던 명나라에서 성행하던 양명학도 이단이라며 배척하고, 과학 기술이나 상공업은 천하게 여겨 백안시하고, 성리학을 빙자한 예송논쟁 등의 권력투쟁에 함몰되어 결국에는 망국에 이르게 된다. | 일본은 이때부터 서양 문물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기 시작한 반면에, 조선은 성리학 외골수로 나아가 사대하던 명나라에서 성행하던 양명학도 이단이라며 배척하고, 과학 기술이나 상공업은 천하게 여겨 백안시하고, 성리학을 빙자한 예송논쟁 등의 권력투쟁에 함몰되어 결국에는 망국에 이르게 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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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은 일본이 처음으로 자신들의 힘을 과시하기 위해 조선과 벌인 대규모 전쟁이었으나, 명나라의 참전과 도요토미히데요시의 죽음으로 실패로 돌아간다. 조선은 이런 참담한 전화를 겪고서도 아무 것도 배우지 못했고, 병자호란 때 청나라에 볼모로 끌려갔다 서양문물을 접하고 와서 이를 소개하려던 소현세자는 부왕 인조의 미움을 사서 독살된다. | 임진왜란은 일본이 처음으로 자신들의 힘을 과시하기 위해 조선과 벌인 대규모 전쟁이었으나, 명나라의 참전과 도요토미히데요시의 죽음으로 실패로 돌아간다. 조선은 이런 참담한 전화를 겪고서도 아무 것도 배우지 못했고, 병자호란 때 청나라에 볼모로 끌려갔다 서양문물을 접하고 와서 이를 소개하려던 소현세자는 부왕 인조의 미움을 사서 독살된다. | ||
두번의 전쟁을 겪고서도 부국강병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망하고 없는 [[대명천지 숭정일월|명나라에 대한 사대]]와 [[소중화 의식]]에 젖어 권력투쟁이나 | 두번의 전쟁을 겪고서도 부국강병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망하고 없는 [[대명천지 숭정일월|명나라에 대한 사대]]와 [[소중화 의식]]에 젖어 권력투쟁이나 일삼다 나라를 망친 조선 성리학자들과 같은 사람들이 오늘날에도 넘쳐난다. | ||
==세상을 바꾼 서기 1543년== | ==세상을 바꾼 서기 1543년== |
2020년 1월 8일 (수) 13:39 판
박종인 조선일보 여행문화 전문기자는 조선일보에 [박종인의 땅의 歷史]를 장기 연재 중이다. 그 중에 148 ~ 166회는 [세상을 바꾼 서기 1543년]인데, 여기에서는 조선이 일본에 나라를 빼앗기는 시발점을 1543년으로 잡고, 그 이후 어떠한 과정을 거쳐 조선이 일본에 병합되는지를 논한 글이다. 어느 정도 설득력이 있어 보이므로 여기에 소개한다.
개요
서기 1543년에 서양에서는 코페르니쿠스가 지동설을 주장한 논문이 간행되었고, 일본은 서양에서 전해온 철포(鐵砲)를 처음 입수한다. 이때 조선에서는 풍기군수 주세붕이 백운동 서원을 세웠다.
일본은 이때부터 서양 문물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기 시작한 반면에, 조선은 성리학 외골수로 나아가 사대하던 명나라에서 성행하던 양명학도 이단이라며 배척하고, 과학 기술이나 상공업은 천하게 여겨 백안시하고, 성리학을 빙자한 예송논쟁 등의 권력투쟁에 함몰되어 결국에는 망국에 이르게 된다.
백운동 서원은 성리학의 비조 주희가 제자들을 가르치던 백록동 서원을 본떠 고려에 성리학을 처음 전해 온 안향의 고향에 세운 성리학 교육기관으로 안향에 대한 제향도 올리던 사당을 겸했다. 조선 최초의 서원이며, 퇴계 이황이 풍기군수를 할 때 "소수서원"이라는 왕의 현판글씨를 받아 소위 사액서원이 되었다. 이후 유사한 서원이 우후죽순처럼 늘어났다.
임진왜란은 일본이 처음으로 자신들의 힘을 과시하기 위해 조선과 벌인 대규모 전쟁이었으나, 명나라의 참전과 도요토미히데요시의 죽음으로 실패로 돌아간다. 조선은 이런 참담한 전화를 겪고서도 아무 것도 배우지 못했고, 병자호란 때 청나라에 볼모로 끌려갔다 서양문물을 접하고 와서 이를 소개하려던 소현세자는 부왕 인조의 미움을 사서 독살된다.
두번의 전쟁을 겪고서도 부국강병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망하고 없는 명나라에 대한 사대와 소중화 의식에 젖어 권력투쟁이나 일삼다 나라를 망친 조선 성리학자들과 같은 사람들이 오늘날에도 넘쳐난다.
세상을 바꾼 서기 1543년
- [박종인의 땅의 歷史] 서기 1543년, 무슨 일이 벌어졌나 조선일보 2019.01.02 A32면
- [148] [세상을 바꾼 서기 1543년] ① 1543년 무슨 일이 벌어졌나
- [박종인의 땅의 歷史] 코페르니쿠스는 왜 지구를 움직였는가 조선일보 2019.01.09 A28면
- [149] 세상을 바꾼 서기 1543년 ② 1543년 지구가 움직였다
- [박종인의 땅의 歷史] 1543년 9월 열다섯 살 일본 지도자는 총을 수입했다 조선일보 2019.01.23 A28면
- [150] 세상을 바꾼 서기 1543년 ③ 1543년 일본, 총을 손에 넣었다
- [박종인의 땅의 歷史] "가뭄 구제보다 중한 것이 교화로다!" 조선일보 2019.01.30 A26면
- [151] 세상을 바꾼 서기 1543년 ④ 1543년 조선, 서원을 열었다
- [박종인의 땅의 歷史] 꿈처럼 사라져버린 세종의 '과학 시대' 조선일보 2019.02.13 A26면
- [152] 세상을 바꾼 서기 1543년 ⑤ 세종, 천재의 시대와 칠정산역법
- [박종인의 땅의 歷史] 조선은 은을 버렸고 일본은 은을 손에 쥐었다 조선일보 2019.02.20 A20면
- [153] 세상을 바꾼 서기 1543년 ⑥이와미 은광과 조선인 김감불
- [박종인의 땅의 歷史] 조선이 명을 섬길 때 일본은 세계를 만났다 조선일보 2019.02.27 A26면
- [154] 세상을 바꾼 서기 1543년 ⑦임진왜란과 로마로 간 소년들
- [박종인의 땅의 歷史] 인공섬 데지마에서 일본은 근대를 배웠다 조선일보 2019.03.06 A24면
- [155] 세상을 바꾼 서기 1543년 ⑧성리학과 난가쿠(蘭學)·上
- [박종인의 땅의 歷史] 1719년 통신사 신유한 "어찌하여 오랑캐가 부귀영화를 누린다는 말인가!" 조선일보 2019.03.13 A26면
- [156] 세상을 바꾼 서기 1543년 ⑧성리학과 난가쿠(蘭學)·中
- [박종인의 땅의 歷史] "노자, 석가, 제자백가 모조리 이단이다" 조선일보 2019.03.20 A24면
- [157] 세상을 바꾼 서기 1543년 ⑧성리학과 난가쿠(蘭學)·下
- [박종인의 땅의 歷史] "이들이 일본의 보물을 만들 것이다" 조선일보 2019.03.27 A34면
- [158] 세상을 바꾼 서기 1543년 ⑨ 무본억말(務本抑末)과 조선 도공·上
- [박종인의 땅의 歷史] 조선 도공의 불씨로 일본은 군함을 만들었다 조선일보 2019.04.03 A29면
- [159] 세상을 바꾼 서기 1543년 ⑨무본억말(務本抑末)과 조선 도공·下
- [박종인의 땅의 歷史] 1871년 조선은 척화비를 세웠고 일본은 근대를 향해 떠났다 조선일보 2019.04.10 A26면
- [160] 세상을 바꾼 서기 1543년 ⑩대원군 척화비와 이와쿠라 사절단
- [박종인의 땅의 歷史] 유학도 전쟁도 협상도 청은 일본에 참패했다 조선일보 2019.04.17 A29면
- [161] 세상을 바꾼 서기 1543년 ⑪청나라 조기유학생 '유미유동(留美幼童)'과 청일전쟁
- [박종인의 땅의 歷史] 일본의 영웅, 조선의 원흉들이 일어섰다 조선일보 2019.04.24 A34면
- [162] 세상을 바꾼 서기 1543년 ⑫메이지유신의 주역 조슈 5걸(長州五傑)
- [박종인의 땅의 歷史] 그때 일본에는 있었고 조선에는 없었던, '헌신과 희생' 조선일보 2019.05.01 A26면
- [163] 세상을 바꾼 서기 1543년 ⑬ 목숨을 건 일본의 혁명가들
- [박종인의 땅의 歷史] 실패한 혁명가에게 목숨은 허용되지 않았다 조선일보 2019.05.08 A29면
- [164] 세상을 바꾼 서기 1543년 ⑭ 갑신년 겨울의 녹슨 총
- [박종인의 땅의 歷史] 망국의 징조, 부패와 탐욕 조선일보 2019.05.15 A26면
- [165] 세상을 바꾼 서기 1543년 ⑮ 권력을 탐한 지도자, 고종
- [박종인의 땅의 歷史] "내 나라여 영원하라" 조선일보 2019.05.22 A30면
- [166] 세상을 바꾼 서기 1543년 (16)스스로 부활한 대한국인(大韓國人)
박종인의 땅의 歷史
[박종인의 땅의 역사(歷史)]는 위 글의 전후로도 계속 이어지며 지금도 연재되고 있다.
- [박종인의 땅의 歷史] 베트남 국부 호찌민이 목민심서를 읽었다? 거짓말입니다! 조선일보 2019.10.22 A32면
- [185] 정약용과 호찌민을 둘러싼 조작된 신화
- 을축년 대홍수 때 후손이 건져낸 다산 저작들 모아서
- 사후 100년 맞은 1934~1938년 '여유당전서' 첫 출간
- 생전에 정약용은 "내 글 못 퍼지게 해 달라"며 경계
- 근거 없는 주장을 수정하지 않는 시인, 학자들 탓에
- 대통령도 "호찌민이 목민심서 애독" 진실로 믿어
- [박종인의 땅의 歷史] "어떤 나라든 자멸하는 것이지 남이 망하게 할 수는 없다" 조선일보 2019.12.31 A28면
- [194] 100년 전 한용운이 던진 화두, 각성(覺醒)
- 100년 전 만해 한용운이 던진 민족이 나가야 할 길 "각성하라"
- 1920년 3·1운동 공판정 "망국은 스스로 초래한 것"
- 1936년 수필 '반성' "어느 국가가 자멸하지 않고 남 침략으로 사라졌나"
- 강제징집 당한 이에게 "죽지 말고 꼭 살아 있으라!"
- 만해가 평생 끌고간 화두 반성·각성·자각
- 100년이 지난 지금 더욱 절실한 메시지
- [박종인의 땅의 歷史] 퇴계 이후 성리학은 꽃을 피웠고 다른 학문은 사라졌다 조선일보 2020.01.07 A32면
- [195] 성리학자 이황과 조선 학문의 자유
- 1543년 풍기군수 주세붕의 백운동서원 후임 군수 이황이 청원해 명종이 '소수서원' 명명
- 학문과 권력이 융합한 지식권력 국가의 성립
- 1566년에 쓴 '전습록 논변' 양명학을 '반주자학' 규정
- 이후 퇴계 문하에서는 양명학을 이단이라며 금기
- 선조 "양명학이 좋지 않나?" 류성룡 "거짓말입니다"
- 임진왜란 때 파병된 명 장수 "왜 양명학을 배우지 않나"… 조선 관리들은 결사반대
- 1623년 인조반정 겹치며 성리학을 제외한 모든 학문이 실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