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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덕규의 위 논설과, 김명식 기자의 기사에 대한 유림의 거센 항의로 동아일보 초대사장 박영효(朴泳孝)는 창간 3개월만인 7월 1일에 사퇴하게 된다.<ref>[http://goha.or.kr/gn5/upload/goha_vol_1.pdf 독립을 향한 집념 : 고하 송진우 전기] pp.104~105</ref><ref>[http://dongne.donga.com/2016/05/23/11-초대-사장-박영효朴泳孝/ 초대 사장 박영효(朴泳孝)] 동네 - 동아미디어그룹 공식 블로그</ref> 동아일보는 권덕규 논설에 대해 사과문을 내지 않는 대신에 반론을 실었다.<ref>漢陽過客, [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20051300209201005&editNo=1&printCount=1&publishDate=1920-05-13&officeId=00020&pageNo=1&printNo=41&publishType=00020 讀東亞日報(독동아일보)] 동아일보 1920-05-13 1면<br>漢陽過客, [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20051400209201004&editNo=1&printCount=1&publishDate=1920-05-14&officeId=00020&pageNo=1&printNo=42&publishType=00020 讀東亞日報(독동아일보) (續)] 동아일보 1920-05-14 1면</ref><ref>[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20051700209201002&editNo=1&printCount=1&publishDate=1920-05-17&officeId=00020&pageNo=1&printNo=45&publishType=00020 『假明人頭上(가명인두상)에 一棒(일봉)』과 儒敎(유교)의 眞髓(진수) (一(일))] 동아일보 1920-05-17 1면<br>[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20051800209201002&editNo=1&printCount=1&publishDate=1920-05-18&officeId=00020&pageNo=1&printNo=46&publishType=00020 『假明人頭上(가명인두상)에 一棒(일봉)』과 儒敎(유교)의 眞髓(진수) (二(이))] 동아일보 1920-05-18 1면<br>[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20051900209201002&editNo=1&printCount=1&publishDate=1920-05-19&officeId=00020&pageNo=1&printNo=47&publishType=00020 『假明人頭上(가명인두상)에 一棒(일봉)』과 儒敎(유교)의 眞髓(진수) (三(삼))] 동아일보 1920-05-19 1면<br>[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20052000209201002&editNo=1&printCount=1&publishDate=1920-05-20&officeId=00020&pageNo=1&printNo=48&publishType=00020 『假明人頭上(가명인두상)에 一棒(일봉)』과 儒敎(유교)의 眞髓(진수) (四(사))] 동아일보 1920-05-20 1면</ref>
권덕규의 위 논설과, 김명식 기자의 기사에 대한 유림의 거센 항의로 동아일보 초대사장 박영효(朴泳孝)는 창간 3개월만인 7월 1일에 사퇴하게 된다.<ref>[http://goha.or.kr/gn5/upload/goha_vol_1.pdf 독립을 향한 집념 : 고하 송진우 전기] pp.104~105</ref><ref>[http://dongne.donga.com/2016/05/23/11-초대-사장-박영효朴泳孝/ 초대 사장 박영효(朴泳孝)] 동네 - 동아미디어그룹 공식 블로그</ref> 동아일보는 권덕규 논설에 대해 사과문을 내지 않는 대신에 반론을 실었다.<ref>漢陽過客, [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20051300209201005&editNo=1&printCount=1&publishDate=1920-05-13&officeId=00020&pageNo=1&printNo=41&publishType=00020 讀東亞日報(독동아일보)] 동아일보 1920-05-13 1면<br>漢陽過客, [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20051400209201004&editNo=1&printCount=1&publishDate=1920-05-14&officeId=00020&pageNo=1&printNo=42&publishType=00020 讀東亞日報(독동아일보) (續)] 동아일보 1920-05-14 1면</ref><ref>[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20051700209201002&editNo=1&printCount=1&publishDate=1920-05-17&officeId=00020&pageNo=1&printNo=45&publishType=00020 『假明人頭上(가명인두상)에 一棒(일봉)』과 儒敎(유교)의 眞髓(진수) (一(일))] 동아일보 1920-05-17 1면<br>[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20051800209201002&editNo=1&printCount=1&publishDate=1920-05-18&officeId=00020&pageNo=1&printNo=46&publishType=00020 『假明人頭上(가명인두상)에 一棒(일봉)』과 儒敎(유교)의 眞髓(진수) (二(이))] 동아일보 1920-05-18 1면<br>[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20051900209201002&editNo=1&printCount=1&publishDate=1920-05-19&officeId=00020&pageNo=1&printNo=47&publishType=00020 『假明人頭上(가명인두상)에 一棒(일봉)』과 儒敎(유교)의 眞髓(진수) (三(삼))] 동아일보 1920-05-19 1면<br>[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20052000209201002&editNo=1&printCount=1&publishDate=1920-05-20&officeId=00020&pageNo=1&printNo=48&publishType=00020 『假明人頭上(가명인두상)에 一棒(일봉)』과 儒敎(유교)의 眞髓(진수) (四(사))] 동아일보 1920-05-20 1면</ref>


권덕규는 동아일보 사주 인촌 김성수(仁村 金性洙)가 인수, 운영한 중앙학교의 교사였으므로<ref>[http://dongne.donga.com/2018/04/03/%E6%9D%B1%E4%BA%9E-100%EB%85%84-%E6%9D%B1%E5%8F%8B-100%EC%9D%B8/ 인촌 김성수(仁村 金性洙) - 일제폭압 맞서 언론·교육·기업 인재 키운 거목]  동네 - 동아미디어그룹 공식블로그</ref><ref>[http://choongang.hs.kr/?act=doc&mcode=1011 중앙고등학교 연혁]</ref>, 그가 쓴 논설에는 신학문을 수용하여 교육하려는 김성수의 의중이 반영되었을 수도 있다.
권덕규는 동아일보 사주 [[김성수|인촌 김성수(仁村 金性洙)]]가 인수, 운영한 중앙학교의 교사였으므로<ref>[http://dongne.donga.com/2018/04/03/%E6%9D%B1%E4%BA%9E-100%EB%85%84-%E6%9D%B1%E5%8F%8B-100%EC%9D%B8/ 인촌 김성수(仁村 金性洙) - 일제폭압 맞서 언론·교육·기업 인재 키운 거목]  동네 - 동아미디어그룹 공식블로그</ref><ref>[http://choongang.hs.kr/?act=doc&mcode=1011 중앙고등학교 연혁]</ref>, 그가 쓴 논설에는 신학문을 수용하여 교육하려는 [[김성수]]의 의중이 반영되었을 수도 있다.


구한말에는 위정척사파 등 숭명배일(崇明排日)의 성리학 원리주의자들이 많았으나, 일제시대를 거친 후 해방 정국에서는 왕정복고파나 성리학을 표방하는 정당은 없었다. 21세기에 들어와 성리학 원리주의자들과 유사한 세력들이 활개치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다.
구한말에는 위정척사파 등 숭명배일(崇明排日)의 성리학 원리주의자들이 많았으나, 일제시대를 거친 후 해방 정국에서는 왕정복고파나 성리학을 표방하는 정당은 없었다. 21세기에 들어와 성리학 원리주의자들과 유사한 세력들이 활개치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다.

2021년 10월 13일 (수) 07:24 판

「가명인 두상에 일봉 (假明人 頭上에 一棒)」은 ‘가짜 명(明)나라 사람 머리에 몽둥이 한 대’라는 의미로 명나라를 숭배하는 조선후기 유신들과 사림을 비판한 권덕규(權悳奎, 1890~1950)[1][2]의 논설인데 1920년 5월 8일과 9일 동아일보 1면에 실렸다.

개요

권덕규(權悳奎, 1890~1950)[1][2]는 1920년 「가명인 두상에 일봉(假明人 頭上에 一棒)」이라는 동아일보에 기고한 논설을 통해, 명나라 황제의 제사를 지내고 그 마지막 황제인 숭정제(崇禎帝) 의종(毅宗, 1611~1644, 재위 1628~1644)의 연호를 고집하던 당시의 유학자들을 가리켜

"심장도 창자도 없는 지나사상의 노예"

라 표현하며

"충효의 가르침을 제 땅과 제 민족을 위해 쓰지 아니하고 자기와 아무 관계없는 다른 놈에게 들이 바치니, 그 더러운 소갈머리야 참으로 개도 아니 먹겠다"

고 일갈하였다.

기사 원문 이미지

아래는 권덕규(權悳奎, 1890~1950)의 논설 「가명인 두상에 일봉(假明人 頭上에 一棒)」기사 2회분 원문 이미지이다. 클릭하면 확대된 이미지를 볼 수 있다.

한별(桓民), 「假明人 頭上(가명인 두상)에 一棒(일봉) (一)」 동아일보 1920-05-08 1면


한별(桓民), 「假明人 頭上(가명인 두상)에 一棒(일봉) (二)」 동아일보 1920-05-09 1면

논란

동아일보는 1920년 4월 1일 창간되었는데, 위 권덕규의 기사보다 며칠 앞서 송산 김명식(松山 金明植 · 1890~1943) 기자도 ‘조선부로(朝鮮父老)에게 고함’(1920년 5월 4일자부터 9일자까지 6회 연속 게재)이라는 글에서 낡은 인습을 타파하자는 주장을 편 바 있다.[3]

권덕규의 위 논설과, 김명식 기자의 기사에 대한 유림의 거센 항의로 동아일보 초대사장 박영효(朴泳孝)는 창간 3개월만인 7월 1일에 사퇴하게 된다.[4][5] 동아일보는 권덕규 논설에 대해 사과문을 내지 않는 대신에 반론을 실었다.[6][7]

권덕규는 동아일보 사주 인촌 김성수(仁村 金性洙)가 인수, 운영한 중앙학교의 교사였으므로[8][9], 그가 쓴 논설에는 신학문을 수용하여 교육하려는 김성수의 의중이 반영되었을 수도 있다.

구한말에는 위정척사파 등 숭명배일(崇明排日)의 성리학 원리주의자들이 많았으나, 일제시대를 거친 후 해방 정국에서는 왕정복고파나 성리학을 표방하는 정당은 없었다. 21세기에 들어와 성리학 원리주의자들과 유사한 세력들이 활개치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다.

아래 최영성(崔英成)의 논문에는 위 권덕규의 논설과, 이인(李仁, 1896~1979)이 1931년 1월 『신민(新民)』지에 기고한 글 《신법률만평(新法律漫評)》[10]에 의해 촉발된 논란에 대한 해설이 나온다.

경석집(敬石集) / 덕성서원(德星書院)

함께 보기

각주

  1. 1.0 1.1 한글보급에 앞장선 한글학자이자 민족의식을 일깨운 역사학자, 권덕규(權悳奎) 국립중앙도서관 > 역사 > 한국의위대한인물
  2. 2.0 2.1 권덕규(權悳奎, 1890~1950)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3. 朝鮮父老(조선부로)에게 告(고)함 (一) 동아일보 1920-05-04 1면
    朝鮮父老(조선부로)에게 告(고)함 (二) 동아일보 1920-05-05 1면
    朝鮮父老(조선부로)에게 告(고)함 (三) 동아일보 1920-05-06 1면
    朝鮮父老(조선부로)에게 告(고)함 (四) 동아일보 1920-05-07 1면
    朝鮮父老(조선부로)에게 告(고)함 (五) 동아일보 1920-05-08 1면
    朝鮮父老(조선부로)에게 告(고)함 (六) 동아일보 1920-05-09 1면
  4. 독립을 향한 집념 : 고하 송진우 전기 pp.104~105
  5. 초대 사장 박영효(朴泳孝) 동네 - 동아미디어그룹 공식 블로그
  6. 漢陽過客, 讀東亞日報(독동아일보) 동아일보 1920-05-13 1면
    漢陽過客, 讀東亞日報(독동아일보) (續) 동아일보 1920-05-14 1면
  7. 『假明人頭上(가명인두상)에 一棒(일봉)』과 儒敎(유교)의 眞髓(진수) (一(일)) 동아일보 1920-05-17 1면
    『假明人頭上(가명인두상)에 一棒(일봉)』과 儒敎(유교)의 眞髓(진수) (二(이)) 동아일보 1920-05-18 1면
    『假明人頭上(가명인두상)에 一棒(일봉)』과 儒敎(유교)의 眞髓(진수) (三(삼)) 동아일보 1920-05-19 1면
    『假明人頭上(가명인두상)에 一棒(일봉)』과 儒敎(유교)의 眞髓(진수) (四(사)) 동아일보 1920-05-20 1면
  8. 인촌 김성수(仁村 金性洙) - 일제폭압 맞서 언론·교육·기업 인재 키운 거목 동네 - 동아미디어그룹 공식블로그
  9. 중앙고등학교 연혁
  10. 李仁, 新法律漫評, 신민 제64호 1931-0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