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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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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의 행군은 [[북한]]에서 1994년 7월 [[김일성]] 사망 직후부터 2000년 무렵까지 사이에 일어난 최악의 식량난으로 약 33만 명의 북한 주민들이 아사한 사건이다. 자연재해와 정책 실패가 주된 원인이며, [[김정일]]이 적대계층을 말살하기 위해 고의로 방치했다는 주장도 있다. 소련과 동구 공산권 붕괴로 인하여 이들 국가의 대북원조가 중단되어 발생한 경제난도 중요한 원인이다<ref>[https://web.archive.org/web/20180628124825/http:/www.hani.co.kr/kisa/section-001005000/2005/10/001005000200510011154593.html 북 교수가 밝힌 90년대 ‘고난의 행군’ 3가지 이유] 한겨레신문 2005. 10. 1</ref>. 또 그동안 배급체제에 익숙해져 자생능력이 없던 주민들이 갑자기 배급이 끊어지자 식량을 확보할 수 없었던 것도 사태를 악화시켰다.  
고난의 행군은 [[북한]]에서 1994년 7월 [[김일성]] 사망 직후부터 2000년 무렵까지 사이에 일어난 최악의 식량난으로 약 33만 명의 북한 주민들이 아사한 사건이다. 소련과 동구 공산권 붕괴로 인하여 이들 국가의 대북원조 중단되어 발생한 경제난<ref>[https://web.archive.org/web/20180628124825/http:/www.hani.co.kr/kisa/section-001005000/2005/10/001005000200510011154593.html 북 교수가 밝힌 90년대 ‘고난의 행군’ 3가지 이유] 한겨레신문 2005. 10. 1</ref>, 자연재해와 정책 실패가 주된 원인이며, [[김정일]]이 적대계층을 말살하기 위해 고의로 방치했다는 주장도 있다. 또 그동안 배급체제에 익숙해져 자생능력이 없던 주민들이 갑자기 배급이 끊어지자 식량을 확보할 수 없었던 것도 사태를 악화시켰다.  


2010년 11월 22일 대한민국 통계청이 유엔의 인구센서스를 바탕으로 발표한 북한 인구 추계에 따르면, '고난의 행군(1996~2000년)' 시기 실제에 근접한 아사자 수는 33만여 명이다.<ref>[https://news.joins.com/article/4695274 북한 ‘고난의 행군’ 5년 동안 주민 33만 명 굶어 죽어] [중앙일보] 2010.11.23 종합 6면</ref><ref>[https://web.archive.org/web/20081210140649/http://www.amnesty.org/en/library/info/ASA24/003/2004 North Korea: Starved of Rights: Human rights and the food crisis in the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 (North Korea)] Amnesty International, 17 January 2004</ref>  
2010년 11월 22일 대한민국 통계청이 유엔의 인구센서스를 바탕으로 발표한 북한 인구 추계에 따르면, '고난의 행군(1996~2000년)' 시기 실제에 근접한 아사자 수는 33만여 명이다.<ref>[https://news.joins.com/article/4695274 북한 ‘고난의 행군’ 5년 동안 주민 33만 명 굶어 죽어] [중앙일보] 2010.11.23 종합 6면</ref><ref>[https://web.archive.org/web/20081210140649/http://www.amnesty.org/en/library/info/ASA24/003/2004 North Korea: Starved of Rights: Human rights and the food crisis in the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 (North Korea)] Amnesty International, 17 January 2004</ref>  

2019년 12월 29일 (일) 09:44 판

고난의 행군(苦難의 行軍)은 1994년 김일성 사망 후 나라의 경제사정이 극히 어려워지자 이를 극복하기 위해 주민들의 희생을 강요하며 김정일이 내놓은 당적 구호로서, 1996년 신년공동사설을 통해 제시되었다.[1] 이 기간에 대규모의 아사자가 발생했다.

개요

고난의 행군은 북한에서 1994년 7월 김일성 사망 직후부터 2000년 무렵까지 사이에 일어난 최악의 식량난으로 약 33만 명의 북한 주민들이 아사한 사건이다. 소련과 동구 공산권 붕괴로 인하여 이들 국가의 대북원조 중단되어 발생한 경제난[2], 자연재해와 정책 실패가 주된 원인이며, 김정일이 적대계층을 말살하기 위해 고의로 방치했다는 주장도 있다. 또 그동안 배급체제에 익숙해져 자생능력이 없던 주민들이 갑자기 배급이 끊어지자 식량을 확보할 수 없었던 것도 사태를 악화시켰다.

2010년 11월 22일 대한민국 통계청이 유엔의 인구센서스를 바탕으로 발표한 북한 인구 추계에 따르면, '고난의 행군(1996~2000년)' 시기 실제에 근접한 아사자 수는 33만여 명이다.[3][4]

그러나 일본 공산당 기관지 '아카하타(赤旗)'의 평양 특파원을 지낸 하기와라 료(萩原遼, 1937~2017)[5]는 《김정일의 숨겨진 전쟁》(2004년)[6][7]이란 책에서 아사자 수는 300만명이며, 김정일이 고의적으로 굶어 죽게했다고 주장한다.[8]

고난의 행군은 슬로건이기도한데 1938년 말 ~ 1939년 초 김일성이 이끄는 유격대가 만주에서 혹한과 굶주림을 겪으며 100여 일간 행군한 데서 유래했다.[1]

고난의 행군에서 정작 지도자는 고난의 행군을 하지 않았고 독재치하의 북한국민이 받았다. 독재사회의 잔혹함을 보여주는 셈.

함께 보기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