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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원인==
==사망 원인==
김정숙의 사인은 병사(病死)라는 설<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0070300329203014&edtNo=2&printCount=1&publishDate=1980-07-03&officeId=00032&pageNo=3&printNo=10695&publishType=00020 6.25北(북)에서 본 證言(증언) <16> 제4부 開戰準備(개전준비) 진행 (1949년)] 1980.07.03. 경향신문 3면</ref>, 아기를 낳다 난산으로 죽었다는 설<ref name="hong">[http://db.history.go.kr/id/dh_020_1951_02_28_0100 金日成 전속 간호부 趙玉姬, 체포 후 기자회견] 부산일보 1951년 03월 01일 : 한국사데이터베이스<br>[http://www.busan.com/view/busan/view.php?code=19510301000027 金日星(김일성)의 看護婦(간호부) 合同搜査本部(합동수사본부)서 逮捕(체포)] 부산일보 1951-03-01</ref><ref>[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0051300209205001&edtNo=2&printCount=1&publishDate=1990-05-13&officeId=00020&pageNo=5&printNo=21116&publishType=00020 『비화(秘話) 김일성(金日成)과 북한(北韓) : 전(前) 북한군(北韓軍) 사단(師團) 정치위원 여정 수기(呂政 手記)』 : 金聖愛(김성애)는 시종비서 女軍(여군) 출신 戰爭(전쟁) 와중 姙娠(임신)┉소문나자 극비 결혼] 동아일보 1990년 5월 13일 5면</ref>, 김성애와의 관계에 대해 항의하다 임신 중에 김일성에게 배를 차여 죽게 되었다는 설<ref>[http://premium.chosun.com/site/data/html_dir/2014/09/24/2014092403595.html?csmain 김일성에게 배를 걷어차여 숨진 본처 김정숙] premium.chosun 2014.09.24</ref>, 김성애로 인한 가정불화로 자살했다는 설<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1122600209215001&edtNo=2&printCount=1&publishDate=1991-12-26&officeId=00020&pageNo=15&printNo=21690&publishType=00020 "「金正日(김정일) 백두산出生(출생)」은 거짓말" : 蘇(소)「콤소몰스카야 프라브다」紙(지) 보도] 1991.12.26 동아일보 15면</ref> 등 여러 주장이 있으나 어느 것도 확실하지 않다.
김정숙의 사인은 병사(病死)라는 설<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0070300329203014&edtNo=2&printCount=1&publishDate=1980-07-03&officeId=00032&pageNo=3&printNo=10695&publishType=00020 6.25北(북)에서 본 證言(증언) <16> 제4부 開戰準備(개전준비) 진행 (1949년)] 1980.07.03. 경향신문 3면</ref>, 아기를 낳다 난산으로 죽었다는 설<ref name="hong">[http://db.history.go.kr/id/dh_020_1951_02_28_0100 金日成 전속 간호부 趙玉姬, 체포 후 기자회견] 부산일보 1951년 03월 01일 : 한국사데이터베이스<br>[http://www.busan.com/view/busan/view.php?code=19510301000027 金日星(김일성)의 看護婦(간호부) 合同搜査本部(합동수사본부)서 逮捕(체포)] 부산일보 1951-03-01</ref><ref>[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0051300209205001&edtNo=2&printCount=1&publishDate=1990-05-13&officeId=00020&pageNo=5&printNo=21116&publishType=00020 『비화(秘話) 김일성(金日成)과 북한(北韓) : 전(前) 북한군(北韓軍) 사단(師團) 정치위원 여정 수기(呂政 手記)』 : 金聖愛(김성애)는 시종비서 女軍(여군) 출신 戰爭(전쟁) 와중 姙娠(임신)┉소문나자 극비 결혼] 동아일보 1990년 5월 13일 5면<br>여정(呂政), [http://www.nl.go.kr/nl/search/SearchDetail.nl?category_code=ct&service=KOLIS&vdkvgwkey=222085&colltype=DAN_HOLD&place_code_info=100&place_name_info=%EC%84%9C%EA%B3%A0%EC%9E%90%EB%A3%8C%EC%8B%A0%EC%B2%AD%EB%8C%80%281%EC%B8%B5%29&manage_code=MA&shape_code=B&refLoc=null&category=&srchFlag=Y&h_kwd=%EB%B6%89%EA%B2%8C+%EB%AC%BC%EB%93%A0+%EB%8C%80%EB%8F%99%EA%B0%95&lic_yn=N&mat_code=GM&topF1=title_author&kwd=%EB%B6%89%EA%B2%8C+%EB%AC%BC%EB%93%A0+%EB%8C%80%EB%8F%99%EA%B0%95&dan=&yon=&disabled=&media=&web=&map=&music=&etc=&archive=&cip=&kolisNet=&korcis=#none 『붉게 물든 대동강 : 前 인민군 사단 정치위원의 수기』] (동아일보사, 1991.07.01)</ref>, 김성애와의 관계에 대해 항의하다 임신 중에 김일성에게 배를 차여 죽게 되었다는 설<ref>[http://premium.chosun.com/site/data/html_dir/2014/09/24/2014092403595.html?csmain 김일성에게 배를 걷어차여 숨진 본처 김정숙] premium.chosun 2014.09.24</ref>, 김성애로 인한 가정불화로 자살했다는 설<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1122600209215001&edtNo=2&printCount=1&publishDate=1991-12-26&officeId=00020&pageNo=15&printNo=21690&publishType=00020 "「金正日(김정일) 백두산出生(출생)」은 거짓말" : 蘇(소)「콤소몰스카야 프라브다」紙(지) 보도] 1991.12.26 동아일보 15면</ref> 등 여러 주장이 있으나 어느 것도 확실하지 않다.


김정숙이 사망했을 당시 남한 신문들은 평양방송을 인용하여 단순히 병사라고 보도했다.
김정숙이 사망했을 당시 남한 신문들은 평양방송을 인용하여 단순히 병사라고 보도했다.

2020년 1월 28일 (화) 08:37 판

김정숙(金正淑, 1917~1949), 세번째가 황순희(黃順姬, 1919 ~ 2020), 네번째가 김철호(崔賢의 처)이다. 이들은 북한을 점령한 소련군이 쥐어준 권력으로 김일성 일족 세습전제왕조를 만들어 인민들을 70년 이상 노예로 부려왔다.

김정숙(金正淑, 金貞淑, 1917년 12월 24일 ~ 1949년 9월 22일)은 김일성의 처이고, 김정일의 어머니, 김정은의 할머니이다. 김일성이 만주서 소련으로 도주하기 직전인 1940년 가을에 결혼하였다. 장남 김정일(유라), 차남 슈라[1], 장녀 김경희의 생모이다. 김일성은 김정숙 생전에 나중에 후처가 된 김성애(金聖愛)와 바람을 피워 가정 불화가 심했다고 한다. 이 때문에 김정일이 계모 김성애를 극도로 증오하여 김일성 사망 후 연금하다시피 하고, 감시하게 했다고 한다.[2][3][4]

생애


김일성과 결혼

김일성은 1940년 10월 23일 만주에서 소련으로 불법 월경하여 들어가기 직전에 김정숙과 결혼하였다. 김일성과 소련 월경을 동행하였던 서순옥(徐順玉)은 당시의 정황을 다음과 같이 증언하였다.[5]

“1940년 8월에 김일성, 강위룡 등 우리 16명은 소련으로 향하여 떠났다. 소련 땅에 들어서기 전에 훈춘의 어느 산곡대기에 서 김일성과 김정숙의 혼례를 하였는데 혁명가를 부르며 오락을 진행하였다. 김일성, 강위룡 등 우리 16명 유격대 전사들은 소련땅에 들어선 다음 김일성 동지가 강위룡과 다른 한 동무를 파견하여 소련 변방 전사들에게 체포당하라고 지시하였다. 체포된 다음에 정황을 소련 당조직에 알리자는 계획인 것 같았다. 그리하여 우리는 체포되어 땅굴 감옥에 감금되었다.”[6]

김일성과의 결혼 배경

만주 유격대 시절 김일성에게는 김혜순(金惠順)이라는 처가 있었고, 김정숙은 김일성의 부하 지갑룡(池甲龍)의 처였다. 그런데 1940년 4월 김혜순이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김일성과 헤어지게 된다[7][8][9]. 또 지갑룡은 모종의 임무를 띄고 부대에서 파견나갔다가 기한이 되어도 돌아오지 않자 죽은 것으로 잘못 알려지게 된다. 이렇게 해서 짝을 잃은 김일성과 김정숙이 결혼하게 된 것이라 한다. 그러나 소련으로 넘어간 뒤 지갑룡이 돌아와보니 김정숙은 이미 김일성과 결혼해 있어, 그꼴을 보면서 같은 부대에 있을 수가 없어 1941년 4월 김일성과 함께 만주로 일시 파견나왔다가 부대로 돌아가지 않고 잠적하였다고 한다.[8][10]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던 김일성의 전처 김혜순은 이후 다른 사람과 결혼했다가 해방 후 북한으로 왔으며, 1994년 김일성 사망 때까지 평양에 생존해 있었다.[11]

사망 원인

김정숙의 사인은 병사(病死)라는 설[12], 아기를 낳다 난산으로 죽었다는 설[13][14], 김성애와의 관계에 대해 항의하다 임신 중에 김일성에게 배를 차여 죽게 되었다는 설[15], 김성애로 인한 가정불화로 자살했다는 설[16] 등 여러 주장이 있으나 어느 것도 확실하지 않다.

김정숙이 사망했을 당시 남한 신문들은 평양방송을 인용하여 단순히 병사라고 보도했다.

기사 이미지 보기
김일성 처(金日成妻) 병사(病死)
<서울 二十三日發 로이타 合同> 23일(二十三日) 밤 평양방송(平壤放送)에 의(依)하면 북한 괴뢰집단 수상(北韓傀儡集團首相) 김일성(金日成)의 처(妻)가 병사(病死)하였다 한다. 그런데 북한공산당(北韓共産黨) 지도자(指導者) 김일성(金日成)은 한국(韓國)이 일본(日本)에 점령(占領) 당(當)하엿을 때 항일전(抗日戰)을 전개(展開)한 위대(偉大)한 한국(韓國)의 애국자(愛國者)의 성명(姓名)을 사칭(詐稱)한 것이다.

갤러리


함께 보기

각주

  1. 1.0 1.1 김만일 - 위키백과
  2. 北노동당 '금고지기'에 한광상…김일성 부인 김성애 2014년 사망(종합) 연합뉴스 2018-12-27 16:47 : 1928년생이라는 설도 있다고 함.
  3. 통일부 “김정일 의붓 어머니, 김성애 2014년 사망” 중앙일보 2018.12.27
  4. [김씨 일가의 실체] 김일성의 부인 김성애 실성하다 RFA 2012-09-18
  5. 서재진, 《김일성 항일무장투쟁의 신화화 연구》 통일연구원 연구총서 2006-11 pp.206~207
  6. 박창욱 교수 및 권립 교수 인터뷰; 신주백, 《김일성의 만주항일유격운동에 대한 연구》 p. 183.
  7. 제2방면군장 김일성의 처 김혜순이 체포되어 전향했다는 1940년 7월 5일자 조선일보 기사.
  8. 8.0 8.1 장해성, 인간의 운명 : (김일성의 여자, 김정숙 그리고 김혜순의 이야기) NK-PEN 2014-06-28 : Archived 2018.11.06
  9. [생생토크 평양수다] 北, 크리스마스 어떻게 보내나? TV조선 2013. 12. 25 : 김일성 전처 김혜순에 대한 장해성의 이야기가 나옴.
  10. 유순호, 《김일성 평전 하권》, 출간 예정
  11. 문명자(1930 ~ 2008), 《항일무장투쟁 여전사 박정숙, 김혜순 인터뷰 : 나의 사령관 김일성 장군》 월간 말 1994년도 9월호(통권 99호), 1994.9, pp.46-48
  12. 6.25北(북)에서 본 證言(증언) <16> 제4부 開戰準備(개전준비) 진행 (1949년) 1980.07.03. 경향신문 3면
  13. 金日成 전속 간호부 趙玉姬, 체포 후 기자회견 부산일보 1951년 03월 01일 : 한국사데이터베이스
    金日星(김일성)의 看護婦(간호부) 合同搜査本部(합동수사본부)서 逮捕(체포) 부산일보 1951-03-01
  14. 『비화(秘話) 김일성(金日成)과 북한(北韓) : 전(前) 북한군(北韓軍) 사단(師團) 정치위원 여정 수기(呂政 手記)』 : 金聖愛(김성애)는 시종비서 女軍(여군) 출신 戰爭(전쟁) 와중 姙娠(임신)┉소문나자 극비 결혼 동아일보 1990년 5월 13일 5면
    여정(呂政), 『붉게 물든 대동강 : 前 인민군 사단 정치위원의 수기』 (동아일보사, 1991.07.01)
  15. 김일성에게 배를 걷어차여 숨진 본처 김정숙 premium.chosun 2014.09.24
  16. "「金正日(김정일) 백두산出生(출생)」은 거짓말" : 蘇(소)「콤소몰스카야 프라브다」紙(지) 보도 1991.12.26 동아일보 15면
  17. 小林和子(旧姓:萩尾) 著, 『나는 김일성 수상의 하녀였다 (私は金日成首相の小間使いだった)』 : 奥村芳太郎編, 在外邦人引揚の記録 ― この祖国への切なる慕情, (毎日新聞社, 1970)에 수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