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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news.tvchosun.com/site/data/html_dir/2013/12/25/2013122590210.html <nowiki>[생생토크 평양수다]</nowiki> 北, 크리스마스 어떻게 보내나?] TV조선 2013. 12. 25 : 김일성 전처 김혜순에 대한 장해성의 이야기가 나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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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안경 낀 제2방면군장 김일성.jpg|thumb|left|200px|나가시마(長島玉次郞) 공작대가 입수한 위 사진 속의 안경 낀 인물이 제2방면군장 김일성이다. 북한 김일성과 전혀 다른 인물로 보이지만 북한도 이 사진을 변조하여 김일성이라고 하면서 내놓고 있다.<ref name="myung"/><ref name="photo"/>]]
김혜순은 자신이 붙잡히게 된 것이 김일성 부대의 참모장이었던 임수산(林守山)이 변절하여 일본군을 밀영으로 데려왔기 때문이라고 했는데 이는 사실인 것 같다. 김혜순이 체포된 것이 1940년 4월 초인데, 참모장 임수산이 귀순한 것도 같은 시기인 것이 확인된다.<ref>[https://www.nl.go.kr/newspaper/sub0101.do?id=CNTS-00068000014 비수(匪首) 김일성 부대(金日成部隊)의 임참모장(林參謀長) 수귀순(遂歸順)] 만선일보 1940/05/07 3면 1단 : 참모장 임수산이 4월 초 귀순했다고 하였다.</ref>
김혜순은 자신이 붙잡히게 된 것이 김일성 부대의 참모장이었던 임수산(林守山)이 변절하여 일본군을 밀영으로 데려왔기 때문이라고 했는데 이는 사실인 것 같다. 김혜순이 체포된 것이 1940년 4월 초인데, 참모장 임수산이 귀순한 것도 같은 시기인 것이 확인된다.<ref>[https://www.nl.go.kr/newspaper/sub0101.do?id=CNTS-00068000014 비수(匪首) 김일성 부대(金日成部隊)의 임참모장(林參謀長) 수귀순(遂歸順)] 만선일보 1940/05/07 3면 1단 : 참모장 임수산이 4월 초 귀순했다고 하였다.</ref>



2020년 2월 11일 (화) 14:27 판

1940년 4월 체포된 김일성의 처 김혜순. 김일성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8권에 나오는 사진이다. 4권에는 《꾀꼬리》로 소문난 반일자위대원 김혜순으로만 나온다.[1]

김혜순(金惠順, 1917~ ?)은 만주 빨치산 시절 김정숙 이전 김일성의 처로, 1940년 4월 일본군에 체포되어 김일성과 헤어지게 되었다[2]. 나중에 다른 사람과 결혼하여 북한에서 살았다.[3][4] 1994년 김일성 사망 때까지 평양에 생존해 있었다.[5][6]


개요

북한에서는 공식적으로는 김일성의 처로 1940년 가을 소련으로 도주하기 직전 결혼한 김정일의 생모 김정숙과, 김정숙 사후에 재혼한 김성애 두 사람만 인정한다. 김일성 생전에는 공개활동을 활발히 하기도 했던 김성애마저 김일성 사후에는 김정일에 의해 그 존재가 지워지고, 지금은 김일성의 처로 김정숙만 있는 것처럼 선전되고 있다. 그러나 김일성의 만주 빨치산 시절 김정숙 이전에 거쳐간 여자도 많고, 북한의 최고 권력자가 된 후에도 여자 관계는 매우 복잡하고 문란했다. 6.25 전쟁 중에 체포된 김일성의 전속 간호사 조옥희(趙玉姬)는 김일성이 매독에 걸려 606호 주사를 맞는 것을 10여 차례 보았다고 증언했다.[7] 이 많은 여자들 중 누구를 처로 보고, 누구를 그냥 잠간 스쳐 지나간 여자로 볼지도 구분하기 어렵다.

만주 빨치산 시절 비교적 오래 김일성과 관계를 맺었던 여자로 처음에는 한성희가 있었고, 두번째가 김혜순이다. 한성희에 대해서는 관련자들의 후일 증언만 있을 뿐 당시 기록으로 확인되는 것은 없으나, 김혜순의 존재는 기록으로도 확인이 된다.

일본군에 체포되어 귀순

이명영(李命英, 1928~2000)은 《김일성 열전(金日成列傳)》 (新文化社, 1974)에서 이 기사에 당시활동하던 제2방면군장 김일성의 처가 김혜순으로 나오는 것을 들어 이 김일성은 북한 김일성과는 다른 사람이라고 주장했다. 당시는 북한 김일성의 처로 김정숙과 김성애 외에는 달리 알려진 사람이 없었으므로 오판을 한 것으로 보인다.

또 위 기사에 의하면 체포된 김혜순은 자신이 13살 때 1930년 5.30 간도 폭동이 일어나 오갈데 없는 처지가 되었을 때 김일성을 만났고, 그가 자신을 데리고 가서 보살펴 주어 같이 살게 된 것처럼 주장했다. 실제로 간도폭동을 주도한 인물 중 한명으로 김일성(金一星)이 있고, 그에 대한 재판 기록도 남아 있는데,[8][9][10][11] 그는 감옥을 탈출하여 소련으로 달아났다고 한다. 북한 김일성은 간도폭동에 간여한 적이 없으므로 이 또한 이명영이 김혜순의 남편 김일성을 다른 사람으로 판단하는 근거가 되었다. 이런 말은 김혜순이 허위로 진술한 것이 아닌가 한다.

많은 자료가 새로 발굴된 지금의 판단으로는 김혜순은 북한 김일성의 처가 맞고, 그 남편이었던 제2방면 군장도 북한 김일성으로 보는 것이 타당한 것으로 여겨진다.

김혜순을 인터뷰했던 탈북자 장해성의 증언

나가시마(長島玉次郞) 공작대가 입수한 위 사진 속의 안경 낀 인물이 제2방면군장 김일성이다. 북한 김일성과 전혀 다른 인물로 보이지만 북한도 이 사진을 변조하여 김일성이라고 하면서 내놓고 있다.[12][13]

김혜순은 자신이 붙잡히게 된 것이 김일성 부대의 참모장이었던 임수산(林守山)이 변절하여 일본군을 밀영으로 데려왔기 때문이라고 했는데 이는 사실인 것 같다. 김혜순이 체포된 것이 1940년 4월 초인데, 참모장 임수산이 귀순한 것도 같은 시기인 것이 확인된다.[14]

김혜순은 장해성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일본군에 잡혀 귀순했다는 말은 하지 않고, 적당한 기회를 봐서 도망쳐 나와 다른 사람과 결혼해 살게된 것처럼 주장한다. 자신의 과거 치부를 굳이 사실대로 말해줄 이유도 없었을 것이다.

김혜순은 노조에 쇼토쿠(野副昌德, 1887~1981) 소장[15]이 지휘하는 노조에 토벌대 산하 나가시마(長島玉次郞) 공작대에 의해 체포되었다. 이명영이 1971년 2월 일본으로 공작대장 나가시마 다마지로 (長島玉次郞) 조장(曹長)[16]을 찾아가서 들은 증언에 의하면 김혜순은 귀순 후 한 때 자신을 체포한 나가시마의 집에서 같이 살며, 나가시마의 처와도 친해졌다고 한다.[12][17]

나가시마는 귀순한 김혜순을 이용하여 김일성을 귀순시키려는 공작을 시도해 보았으나, 실패했다고 하였다.[12]

『.... 한번은 金日成부대의 본거지를 점령한 일이 있었다. 山속 깊은 곳에 密營을 만들어 놓고 거기가 본부였는데 우리가 쳐들어가기 조금 전에 그들은 눈치 채고 이미 도주하여 빈집이었다. 그때 거기서 그들의 학습용 서적 몇권과 사진 몇장을 입수했다. 北部의 사진첩에서 나온 이 金日成의 사진은 내가 上部에 보낸 그것이다. 체포 또는 투항한 金日成부대의 대원 들을 통해 이 안경 낀 사람이 제二方面軍長 金日成이라는 것을 확인했다. 金日成의 처 金惠順도 내가 체포했는데 아주 얌전하고 온순한 여자였으며 한동안 우리집에서 내 마누라하고 같이 있었다. 내 마누라하고 아주 친해져서 빨래도 같이 하고 일도 같이 하며 살았다. 한번은 이 金惠順을 시켜 金日成의 귀순공작을 해 봤는데 연락이 닿지 않아서였는지 성사치를 못했다. 金日成은 間島의 龍井에서 中學校을 다니다가 間島폭동 사건(一九三○년 월 五월 三○일)에 뛰어 들어 체포되었는데 留置場에서 탈주해 蘇聯으로 도망쳤던 사람이다. 거기서 赤軍士官學校에 다녔다. 그러다가 滿洲에 파견되어 東北抗日聯軍의 제二方面軍長이 되었다. 金惠順을 비롯한 모든 간부들의 증언이 그렇게 일치했었다.』


그 후 김혜순은 적당한 때에 풀려나서 다른 사람과 결혼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김혜순과 헤어지게 된 김일성은 일본군의 토벌에 쫓겨 1940년 10월 23일 소만국경을 불법 월경하여 소련으로 도주하며, 소련으로 월경하기 직전에 김정숙과 결혼했다고 한다.

각주

  1. 김일성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 4권 p.183 : 제12장 광복의 새봄을 앞당겨 (1936.3-1936.5) - 1. 새 사단의 탄생
  2. 金日成의 愛妻가 귀순 선무공작 제1선에 - 소설같은 전향의 경위 조선일보 1940년 07월 05일 석간 2면
  3. 장해성, 인간의 운명 : (김일성의 여자, 김정숙 그리고 김혜순의 이야기) NK-PEN 2014-06-28 : Archived 2018.11.06
  4. [생생토크 평양수다] 北, 크리스마스 어떻게 보내나? TV조선 2013. 12. 25 : 김일성 전처 김혜순에 대한 장해성의 이야기가 나옴.
  5. 김일성 가짜설#체포된 김일성의 처 김혜순(金惠順)의 후일담
  6. 6.0 6.1 문명자(1930 ~ 2008), 《항일무장투쟁 여전사 박정숙, 김혜순 인터뷰 : 나의 사령관 김일성 장군》 월간 말 1994년도 9월호(통권 99호), 1994.9, pp.46-48
  7. 金日成 전속 간호부 趙玉姬, 체포 후 기자회견 부산일보 1951년 03월 01일 : 한국사데이터베이스
    金日星(김일성)의 看護婦(간호부) 合同搜査本部(합동수사본부)서 逮捕(체포) 부산일보 1951-03-01
  8. 32. 간도농민폭동 - 연변일보 Oct 23, 2007
  9. 오늘의 역사: 간도와 간도 5-30 폭동 편 - 심재호 기자 - Radio Free Asia Apr 6, 2000
  10. "間島五卅事件予審終結す"에 나오는 김일성(金一星) 기록 『사상월보(思想月報)』제1권 제4호 (1931.07.15) p.205 (pdf p.24)
  11. 第四次間島共産黨事件判決(間島五卅事件) 사상월보 제2권 제4호 소화7년(1932) 7월 15일 p.100 (pdf p.43)
  12. 12.0 12.1 12.2 이명영(李命英, 1928~2000), 《김일성 열전(金日成列傳) - 그 傳說과 神話의 眞相糾明을 위한 硏究》 (新文化社, 1974) pp.319~320
  13. 인용 오류: <ref> 태그가 잘못되었습니다; photo라는 이름을 가진 주석에 텍스트가 없습니다
  14. 비수(匪首) 김일성 부대(金日成部隊)의 임참모장(林參謀長) 수귀순(遂歸順) 만선일보 1940/05/07 3면 1단 : 참모장 임수산이 4월 초 귀순했다고 하였다.
  15. 노조에 쇼토쿠(野副昌德, 1887~1981) ja.wikipedia
  16. 조장(曹長)은 상사에 해당하는 하사관 계급이다. 나가시마는 많은 공을 세워 후일 장교로 진급했다.
  17. (진위 김일성 열전 43) 2대 김일성의 정체(상)|이명영 집필(성대교수 정치학) 중앙일보 1974.07.23 종합 3면
    (진위 김일성 열전 44) 2대 김일성의 정체(하)|이명영 집필(성대교수 정치학) 중앙일보 1974.07.25 종합 3면
    (진위 김일성 열전 45) 입소 이후의 2대 김일성 중앙일보 1974.07.29 종합 3면
    "'안경 낀 김일성'…보천보 업적 가로채려 사진 조작" 연합뉴스 2015/1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