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0년 4월 체포된 김일성의 처 김혜순. 김일성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8권에 나오는 사진이다. 4권에는 《꾀꼬리》로 소문난 반일자위대원 김혜순으로만 나온다.[1]

김혜순(金惠順, 1917~ ?)은 만주 빨치산 시절 김정숙 이전 김일성의 처로, 1940년 4월 일본군에 체포되어 김일성과 헤어지게 되었다[2]. 나중에 다른 사람과 결혼하여 북한에서 살았다.[3][4] 1994년 김일성 사망 때까지 평양에 생존해 있었다.[5][6]


개요

북한에서는 공식적으로는 김일성의 처로 1940년 가을 소련으로 도주하기 직전 결혼한 김정일의 생모 김정숙과, 김정숙 사후에 재혼한 김성애 두 사람만 인정한다. 김일성 생전에는 공개활동을 활발히 하기도 했던 김성애마저 김일성 사후에는 김정일에 의해 그 존재가 지워지고, 지금은 김일성의 처로 김정숙만 있는 것처럼 선전되고 있다. 그러나 김일성의 만주 빨치산 시절 김정숙 이전에 거쳐간 여자도 많고, 북한의 최고 권력자가 된 후에도 여자 관계는 매우 복잡하고 문란했다. 이들 중 누구를 처로 보고, 누구를 그냥 잠간 스쳐 지나간 여자로 볼지도 구분하기 어렵다.

만주 빨치산 시절 비교적 오래 김일성과 관계를 맺었던 여자로 처음에는 한성희가 있었고, 두번째가 김혜순이다. 한성희에 대해서는 관련자들의 후일 증언만 있을 뿐 당시 기록으로 확인되는 것은 없으나, 김혜순의 존재는 기록으로도 확인이 된다.


일본군에 체포되어 귀순

이 기사는 제2방면군장 김일성이 북한 김일성과는 다른 사람이라는 증거라는 주장과, 김혜순은 북한 김일성의 김정숙 이전의 전처라는 설이 있으나 명확히 가려지지 않고 있다.

김혜순을 인터뷰했던 탈북자 장해성의 증언


김혜순은 자신이 붙잡히게 된 것이 김일성 부대의 참모장이었던 임수산이 변절하여 일본군을 밀영으로 데려왔기 때문이라고 했는데 이는 사실인 것 같다. 김혜순이 체포된 것이 1940년 4월 초인데, 참모장 임수산이 귀순한 것도 같은 시기인 것이 확인된다.

김혜순은 장해성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일본군에 잡혀 귀순했다는 말은 하지 않고, 적당한 기회를 봐서 도망쳐 나와 다른 사람과 결혼해 살게된 것처럼 주장한다. 자신의 과거 치부를 굳이 사실대로 말해줄 이유도 없었을 것이다.

김혜순은 노조에 토벌대 산하 나가시마(長島玉次郞) 공작대에 의해 체포되었다. 나가시마 본인의 후일 증언에 의하면 김혜순은 귀순 후 한 때 자신을 체포한 나가시마의 집에서 같이 살며, 나가시마의 처와도 친해졌다고 한다.[7]

각주

  1. 김일성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4권 p.183 : 제12장 광복의 새봄을 앞당겨 (1936.3-1936.5) - 1. 새 사단의 탄생
  2. 金日成의 愛妻가 귀순 선무공작 제1선에 - 소설같은 전향의 경위 조선일보 1940년 07월 05일 석간 2면
  3. 장해성, 인간의 운명 : (김일성의 여자, 김정숙 그리고 김혜순의 이야기) NK-PEN 2014-06-28 : Archived 2018.11.06
  4. [생생토크 평양수다] 北, 크리스마스 어떻게 보내나? TV조선 2013. 12. 25 : 김일성 전처 김혜순에 대한 장해성의 이야기가 나옴.
  5. 김일성 가짜설#체포된 김일성의 처 김혜순(金惠順)의 후일담
  6. 6.0 6.1 문명자(1930 ~ 2008), 《항일무장투쟁 여전사 박정숙, 김혜순 인터뷰 : 나의 사령관 김일성 장군》 월간 말 1994년도 9월호(통권 99호), 1994.9, pp.46-48
  7. 이명영(李命英, 1928~2000), 김일성 열전(金日成列傳) - 그 傳說과 神話의 眞相糾明을 위한 硏究 (新文化社, 1974) pp.319~320
    (진위 김일성 열전 43) 2대 김일성의 정체(상)|이명영 집필(성대교수 정치학) 중앙일보 1974.07.23 종합 3면
    (진위 김일성 열전 44) 2대 김일성의 정체(하)|이명영 집필(성대교수 정치학) 중앙일보 1974.07.25 종합 3면
    (진위 김일성 열전 45) 입소 이후의 2대 김일성 중앙일보 1974.07.29 종합 3면
    "'안경 낀 김일성'…보천보 업적 가로채려 사진 조작" 연합뉴스 2015/1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