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항일연군(東北抗日聯軍)은 1932년 3월 만주국(滿洲國)이 수립되자 만주 각지에서 소규모의 항일 유격대가 만들어지면서, 이들이 연합하여 만든 중국공산당 만주성위 산하 항일 무장 조직이다.

개요

1920년대 만주를 지배하던 군벌 장작림(張作霖, 1873~1928)이 1928년 폭사하였는데, 배후는 일본으로 추정된다. 일제는 1931년 만주사변을 일으키고, 1932년 3월 만주국을 수립했다. 이후 만주 각지에는 장작림 세력의 군대, 마적단, 공산 유격대 등 잡다한 성격의 각종 항일 무장단체들이 생겨나는데, 이들이 합종연횡하여 1군(軍) ~ 11군(軍)까지 만들어졌다. 이들이 다시 연합하여 1935년 동북인민혁명군(東北人民革命軍)이 되었다가 좀더 많은 세력들을 모으기 위해 공산주의 색채가 배어 있는 이름을 무색무취한 동북항일연군(東北抗日聯軍)으로 바꾸지만, 내용적으로는 중공당 만주성위의 지배 구조가 오히려 더 강화되었다. 1936년에 지휘 편제를 3개 로군(路軍)으로 조직하는데, 11개군 중 남만주에서 활동하던 제1, 2군이 1로군, 동만주의 제4, 5, 7, 8, 10군이 2로군, 북만주의 3, 6, 9, 11군이 3로군으로 편성된다. 각 로군의 총사령은 1로군이 양정우, 2로군이 주보중, 3로군이 조상지(나중에 이조린으로 교체)였다. 북한 김일성은 양정우 휘하의 1로군 소속이었다.

항일연군은 중공당 만주성위 산하 군대이지만 연안(延安)의 중공당 중앙과는 연락이 두절되어 소련의 코민테른 극동지부의 지휘를 받았다.

항일연군은 1930년대 중반에 각지에서 맹렬한 항일전을 벌였으나, 일제와 만주군의 집중적인 토벌로 다수의 전사자, 도망자, 귀순자들이 발생하면서 세력이 점점 약화되어 1941~2년 무렵 완전히 소멸한다. 그 잔존 세력이 소련으로 도피하자 소련은 제88독립저격여단(第88獨立狙撃旅團)을 만들어 이들을 수용한다.

항일연군에는 김일성, 최용건, 김책들 북한 요인이 된 사람들을 포함하여 다수의 만주 조선인들이 포함되어 있기는 했으나, 이들의 투쟁을 과연 조선독립운동의 일환으로 볼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한국독립운동사에는 항일연군의 성격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1]

동북인민혁명군은 1935년 11월 코민테른에서 채택한 “인민전선·전술”과 이에 따른 중공당의 “8·1지시”에 의거하여 다른 계열의 항일 무력과 연합하여 동북항일연군(東北抗日聯軍)으로 개편하게 되었다. 그런데 인민혁명군의 강령이나 항일연군의 조직 조례에는 “항일반만(抗日反滿), 동북의 실지회복(失地回復), 중화조국의 옹호”가 기본 목표로 제시되어 있을 뿐 한국독립이나 한민족 해방에 대해서는 언급된 바가 없었다.

북한 김일성이 소련군 88여단에 있을 때인 1942년에 여단장 주보중의 지시로 지은 것으로 알려진 항일연군 1로군의 역사를 간단히 기록한 "항련 1로군 약사"에도 조선독립이란 말은 한 마디도 나오지 않는다. 김일성은 당시 중공당원으로 중국을 위한 투쟁을 했을 뿐, 조선독립운동을 한다는 의식이 전혀 없었다는 증거이다.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