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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李는 "이"로 표기하는 것이 국어 어법의 원칙이고, 대부분 이씨들도 이를 따른다. 그가 자기 성씨를 굳이 "리"로 표기한 것은 북한의 관례를 따르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성 李는 "이"로 표기하는 것이 국어 어법의 원칙이고, 대부분 이씨들도 이를 따른다. 그가 자기 성씨를 굳이 "리"로 표기한 것은 북한의 관례를 따르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다시보는 8억인과의 대화===
===다시보는 《8억인과의 대화》===
리영희는 [[중공]]의 [[문화대혁명|문화혁명]]이 끝나고 그 피해 실상이 서방 언론에 이미 많이 보도되어 알려진지 한참 후에 한 일본 지식인이 오래 전 문화혁명에 대해 잘못 쓴 글을 굳이 번역, 소개하여 국내의 젊은이들이 [[중공]]에 관한 환상을 가지게 만들었다.
리영희는 [[중공]]의 [[문화대혁명|문화혁명]]이 끝나고 그 피해 실상이 서방 언론에 이미 많이 보도되어 알려진지 한참 후에 한 일본 지식인이 오래 전 문화혁명에 대해 잘못 쓴 글을 굳이 번역, 소개하여 국내의 젊은이들이 [[중공]]에 관한 환상을 가지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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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상과 이성》 (1977년)
* 《우상과 이성》 (1977년)
* 《8억인과의 대화 : 현지에서 본 중국대륙》 (1977년, 번역서)<ref name="changbi"/> : [[모택동]]의 [[문화대혁명|문화혁명]]을 미화
* 《8억인과의 대화 : 현지에서 본 중국대륙》 (1977년, 번역서)<ref name="changbi"/> : [[모택동]]의 [[문화대혁명|문화혁명]]을 미화
===서평===
* [http://www.newdaily.co.kr/site/data/html/2006/02/15/2006021500001.html 비논리로 가득찬 '전환시대의 논리'] 뉴데일리 2006. 2. 15
* [http://weekly.chosun.com/client/news/viw.asp?ctcd=&nNewsNumb=002184100003 <nowiki>[스페셜 리포트]</nowiki> 1988년, 직접 본 중국의 현실은 책 속의 중국과는 180도 달랐다 : 다시 보는 ‘8억인과의 대화’] [주간조선 2184호] 2011.12.05


==함께 보기==
==함께 보기==

2019년 12월 27일 (금) 11:25 판

리영희(李泳禧, 1929년 12월 2일 ~ 2010년 12월 5일)는 한양대 교수로 재직하며 1970, 80년대 많은 대학생들에게 북한과 중공, 베트남 공산주의에 대한 환상을 퍼뜨렸던 주역이다. 노무현, 문재인, 386 친중 종북 세력의 사상적 대부이다.

생애

모택동(毛澤東)과 문화혁명 일방 미화(美化)
反美·대한민국 현대사 왜곡
386을 사상적 혼돈으로 인도
리영희가 본 것은 사회주의 나라의 實在가 아니라 선전 문구였다.

성 李는 "이"로 표기하는 것이 국어 어법의 원칙이고, 대부분 이씨들도 이를 따른다. 그가 자기 성씨를 굳이 "리"로 표기한 것은 북한의 관례를 따르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다시보는 《8억인과의 대화》

리영희는 중공문화혁명이 끝나고 그 피해 실상이 서방 언론에 이미 많이 보도되어 알려진지 한참 후에 한 일본 지식인이 오래 전 문화혁명에 대해 잘못 쓴 글을 굳이 번역, 소개하여 국내의 젊은이들이 중공에 관한 환상을 가지게 만들었다.

박승준 인천대 중어중국학과 초빙교수·전 조선일보 베이징 특파원
리영희 선생은 ‘8억인과의 대화’의 머리말인 ‘읽는 이를 위하여’에서 “이 책은 현대중국을 <있는 사실 그대로> 알고 싶어하는 이를 위해서, 서방세계 저명인사들의 현지 체험과 기행문을 모아 번역하고 편집한 것”이라고 썼다. 선생은 이 책의 핵심 부분인 문화혁명에 대해 당시 미국과 유럽의 많은 신문들에 유혈 참상이 소개된 마당에 왜 한 일본 지식인이 문혁 초기에 중국을 돌아보고, 문혁을 잘못 판단한 글을, 문혁이 종결된 뒤에 한국의 독자들에게 “있는 그대로의 중국을 보여주겠다”면서 굳이 번역해서 소개했[는지 모르겠]다. 선생은 뉴욕타임스를 포함한 많은 미국과 유럽의 신문들이 소개한 문화혁명의 참상이 진실이 아니라고 본 듯하다. 그는 또 우리와는 오갈 수 없는 장벽 뒤에 있던 중국의 실상에 대해 많은 한국의 지식인들이 ‘8억인과의 대화’를 읽고 시각을 전환하기를 기대한 듯하다.

그러나 리영희 선생은 자신의 시각이 중국의 현실과 너무나 동떨어진 것이었다는 것을 끝내 고백하지 않고 세상을 떠났다. 선생은 1992년 한국과 중국이 수교를 해서 여행이 자유로워진 뒤에도 ‘8억인과의 대화’ 수정판을 내지 않았다.

'소중화(小中華)'를 완성한 리영희의 제자들


노무현 대통령은 모택동을 가장 존경한다고 했다. 좌파들이 가장 존경하는 리영희가 쓴 <전환시대의 논리>를 보면 그들 모두는 모택동주의자였다. 중국인이 직면했던 노예와 같은 삶과 집단처형과 학살 같은 사실은 보지 않고 존경을 표하고 모델로 삼겠다는 것이 바로 시대착오의 전형이자 대한민국 미래에 대한 위협이다.

저서

  • 《전환시대의 논리》 (1974년)
  • 《우상과 이성》 (1977년)
  • 《8억인과의 대화 : 현지에서 본 중국대륙》 (1977년, 번역서)[2] : 모택동문화혁명을 미화

서평

함께 보기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