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춘산(朴春山)의 생몰년은 미상이며, 1934년 5월 중공당 동만특위(東滿特委) 산하에 동북인민혁명군(東北人民革命軍) 제2군 제2독립사(第二獨立師)가 창설되면서 사장(師長)을 맡았다. 1935년 5월 30일 제2군의 군부(軍部)가 발족하면서 제2독립사(第二獨立師)는 제2사(第二師)가 되는데, 이것이 나중에 동북항일연군 제1로군 제2군 제6사가 된다. 6사장 김일성의 전임자로, 상당히 중요한 직책에 있었으나 그의 존재는 지금까지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제2독립사보다 조금 앞서 1934년 2월에 창설된 제1독립사(第一獨立師)의 사장(師長)도 조선인 주진(朱鎭)이었으나, 그는 민생단 사건으로 처형될 위기에 몰리자 1935년 1월말 탈주했다가 일본측에 검거되어 귀순한다. 주진의 후임 사장은 2군 군장(軍長)이된 중국인 왕덕태(王德泰)가 겸임한다. 박춘산도 민생단 문제로 주진보다 조금 후에 탈주했다는 간도신보(間島新報)의 보도기사가 있으나,[1] 1935년 9월에도 그가 2사의 사장으로 나오는 기록이 있다. 조선인 사장(師長) 2명을 다 숙청하면 다수를 차지하는 조선인들의 반발이 우려되어 그를 사장으로 복귀시킨듯하다.

관련 기록

  • 「JACAR(アジア歴史資料センター)Ref.B13081254600、第六十七議会用調書 別冊第二(支那及満州ニ於ケル最近ノ共産運動資料)(議TA-5)(外務省外交史料館)」
標題:2、満州ニ於ケル共産運動近況 : 昭和 9년 (1934년 12월)
p.62 인민혁명군 제2군 제1독립사 사장 주진(1934.2월 성립, 연길, 화룡, 안도 근거), 제2독립사 사장 박춘산 (1934년 5월말 성립, 훈춘, 왕청, 영안 근거)
1935년 9월의 동북인민혁명군 제2군 조직표. 제2사 사장(師長)으로 박춘산(朴春山)이 나옴.
共產區域の 非武裝住民解放 歸順者續續と殺倒
동북인민혁명군 제2군(第二軍) 제2사(第二師) 사장(師長)으로 박춘산(朴春山)이 나옴.
  • 중공당 동만특위(東滿特委) 임시 서기 진홍장(陳鴻章)이 동북인민혁명군 2군 2사장 박춘산(朴春山)에게 보낸 서신
진홍장(陳鴻章, 1904~1936)은 주명(朱明)이란 이름도 썼으며, 동만특위 서기 위증민(魏拯民, 1909~1941)이 1935년 7~8월 간 모스크바에서 열린 제7차 코민테른 대회 참석차 1935년 6월 ~1936년 2월 기간에 소련 모스크바에 가 있는 동안 동만특위 임시서기를 맡았다. 아래 서신은 그가 춘산(春山)이란 인물에게 보낸 것인데, 춘산은 당시 동북인민혁명군 2군 2사장 박춘산(朴春山)으로 보인다.
中共延边州委党史研究所编, 《东满地区革命历史文献汇编》 上冊, 中共延边州委会党史研究室, 2000年
  1. 洪章給春山的信 - 關于幹部問題 (1935年 6月 17日) : p.371
  2. 中共東滿臨時特委書記洪章給春山的信 - 關于幹部, 交通等問題 (1935年 7月 14日) : p.385
  3. 中共東滿臨時特委書記洪章給春山的信 - 關于統一戰線問題 (1935年 7月 25日) : p.386
  4. 中共東滿臨時特委書記洪章給春山的信 - 成立人民政治保衛局 (1935年 8月 15日) : p.388
  5. 中共東滿臨時特委書記洪章給春山的信 - 關于幹部, 經費等問題 (1935年 10月 4日) (緊急)  : p.389

함께 보기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