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역사
중국사 / 中国史

  • 상고시대
    • (기원전 2070년? ~ 기원전 1600년?)
    • (기원전 1600년? ~ 기원전 1046년?)
    • (기원전 1046년? ~ 기원전 256년?)
  • 춘추전국시대(기원전 771년 ~ 기원전 221년)
  • (기원전 9세기 ~ 기원전 206년)
  • (기원전 202년 ~ 서기 220년)
    • 전한(기원전 202년 ~ 서기 8년)
    • 후한(25년 ~ 220년)
  • (8년 ~ 23년)
  • 삼국 시대(220년 ~ 280년)
    • (220년 ~ 265년)
    • (221년 ~ 263년)
    • (229년 ~ 280년)
  • (265년 ~ 420년)


趙宋(조송)
시기 : 960년 ~ 1279년

개요

송나라는 중국의 옛 왕조다. 960년 조광윤이 오대십국 시대 오대 최후의 왕조 후주로부터 선양 받아 개봉(카이펑)에 도읍하여 나라를 세웠다. 국호는 송(宋)이었으나, 춘추시대 송, 남북조 시대 송을 구별하고자 황실의 성씨를 따라 조송(趙宋)이라고도 부른다. 통상 1127년 금나라 확장에 밀려 장강 이남으로 옮기기 전을 북송, 이후 임안(지금의 항저우)으로 도읍을 옮긴 게 남송이다. 북송·남송 모두 송, 송 왕조라고도 한다. 수도는 개봉(開封, 또는 변경), 남쪽으로 옮긴 후 실질적인 수도는 임안(臨安)이다. 훗날 원나라에 멸망당한다. 세계 최초로 지폐를 발행한 나라이며, 최초 상비 해군을 설치한 중국 왕조다. 문치주의 국가로 사대부 사명 의식이 있었다. 또한 이전 왕조와 다르게 철권폭정 하지 않고 문화 정치를 폈다. 시대적으로 북송과 남송으로 나뉜다.


경제적으로는 굉장히 번영했고 부유했지만, 군사적으로는 유목민족에게 지기도 많이 지고 여러번 털린 국가였다.


남송이 당시 세계최강이었던 몽골에 공세에도 몇십년간 버텼으니 마냥 저평가하기도 그렇지만.


역사를 보면 몽골 전에도 요나라 금나라에 공세를 계속 받았다. 그때마다 세폐 돈으로 달래서 돈으로 평화를 사는 행태를 많이 취했다. 하지만 돈으로는 잠깐의 화평을 이룩할 수 있었지만 결국 돈으로는 항구적인 평화를 살 수 없었다.

지금 한국의 좌파들이랑 그런면에서 아주 유사한 사고적 행태를 보였다.

요나라가 쳐들어 오는 걸 내재적 관점으로 송나라가 요나라를 자극해서 그렇다.(북한이 도발하는 것을 북한의 문제로 보지 않고 남한이나 미국탓이나 라는 것과 매우 유사하다)라고 강하게 주장하는 신하가 있었고, 군을 강하게 유지하고 육성하는 것보다 차라리 오랑캐들에게 돈을 주고 평화를 사는 게 싸게 먹힌다 라는 식의 사고도 좌파들이 북한에게 돈을 줘서 평화를 유지하자는 생각과 비슷하다.


중국역사가 한국사에서 중요하지 않은 적이 없었지만, 이 나라도 후대국가인 조선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놈의 주자학을 만든 주희가 바로 남송시대 사람이다.


북송의 수도였던 개봉은 전대 왕조 처럼 밤에도 통금이 없어서(원래 전대 왕조들은 밤에는 성안의 각 구역을 구분해서 문을 닫아 통행을 못하게 하였다) 밤에도 불을 환화게 피우고 영업하는 상점이 많아 불야성이라는 말은 번영했던 송나라의 수도 개봉에서 따온 말이다.


경제적으로 번영했기에 자본주의 맹아론처럼 중국에서는 이때 산업혁명 초기와 같은 자본주의가 있었다는 주장이 있는데, 자본주의 맹아론이 망상이듯이 이것도 비슷하다.

이걸 뒷받침하는 걸로 기계를 사용했다는 점. 석탄 등을 이용한 것을 근거로 대기도 하는데. 기계 자체는 전근대 동서양에도 있었고 석탄 등도 인류가 사용한 역사 자체는 길다. 결정적으로 증기기관으로 발전하지 못했기에 산업혁명 운운하는 건 망상이다.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