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요

고인의 죽음을 이용하여 정치적이나 사회, 경제적인 이득을 얻으려고 하는 행위를 의미하는 비속어를 말한다. 시체 팔이의 유래는 나치 독일에게서 유래가 되었는데, 바이마르 공화국 시절 나치당에 호르스트 베셀이라고 독일에 있는 공산당원들을 잘 때려잡는 당원이 있었는데, 창녀와 자다가 공산당원의 습격을 받아 살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에 나치는 호르스트 베셀이 공산당원과 싸우다가 장렬하게 죽은 당원으로 미화하여 호르스트 베셀의 노래를 만들었으며 이는 나치 독일의 공식적인 군가가 되기도 했다.

대한민국에서의 시체팔이의 역사

1987년 이전

대한민국에서 시체팔이는 일제로부터 해방된 직후부터 사용되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해방 직후 대구폭동이 발생했을 때 대구 의대생 최무학 등 5명의 대학생들이 병원에서 콜레라로 죽은 사람들 사체 4구에 흰 시트를 덮은 다음 "이게 대구역에서 경찰에 맞아죽은 사람들"이라며 거짓 소문을 퍼뜨렸다. 그게 시내를 뒤집어놓았고, 폭동의 불길을 걷잡을 수 없이 키웠다. 광주 5.18때도 광주역에서 총에 맞고 난자된 상태로 발견된 김재화, 김만두의 시체를 시민군은 리어카에 실어 끌고 시내를 돌아다녔다. 이들의 시신에서는 나중 카빈총 탄환이 나왔기 때문에 계엄군의 소행이 아니었지만 이들은 계엄군의 소행으로 오도하여 선동하였다.

1987년 이후

87 민주화 체제를 이루면서 시체팔이는 더욱 교묘해지고 정치적인 성격을 갖게 되었다. 먼저 2002년 미군 장갑차에 치여 죽은 효순이 미선이 사건은 전국민을 반미주의로 몰아넣었고 북한도 이에 동조하여 명예 졸업장을 수여하는 등 정치적인 성향을 띄기 시작했다. 2014년 일어난 세월호 사건 역시 오늘날까지도 유가족들의 행패와 정치인들이 개입하여 박근혜 정부를 무너뜨리는데 일조했다. 이 외에도 백남기 농민이 불법 시위를 벌이다 물대포에 맞은 사건이며 노회찬이 뇌물을 받은 혐의로 자살한 사건은 민주주의를 파는 자들의 좋은 시체팔이로 제공되었다. 무엇보다도 최고의 시체팔이는 노무현이 있다. 노무현은 뇌물을 받은 혐의 때문에 봉하마을 부엉이바위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는데 노무현이 살아있었을 당시에는 욕을 하던 사람들이 노무현이 자살하면서 신격화하기에 이른다.

공산권에서의 시체팔이

공산권에서 유독 시체팔이가 많이 일어난다. 엠버밍이라 하여 시체의 간단한 화장에서부터 방부 처리, 또는 사고 등으로 훼손된 시신을 복원 처리하는 기술을 통해 시체을 대중에게 보이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으로 소련의 레닌, 북한의 김일성, 김정일, 그리고 베트남의 호치민 등이 있다. 보면 알겠지만 이 인물들의 태반은 바로 그 공산주의 국가의 국부와 그 후계자에 해당하는 인물들이다.

저항

유신시대 저항시인이었던 김지하의 경우 "죽음의 굿판을 걷어치워라"는 일갈을 했으며 최근 김문수 자유한국당 의원의 경우도 세월호를 죽음의 굿판으로 일갈하였다.

유형

명망있던 고인의 죽음을 이용하는 경우

노무현의 투신 자살 노회찬의 투신 자살

평범한 일반인의 죽음을 이용하는 경우

대구 10.1 폭동 광주 5.18 사태 효순이 미선이 사건 강남 묻지마 살인 사건 백남기 농민 사망 사건 세월호 사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