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요

고인의 죽음을 이용하여 정치적이나 사회, 경제적인 이득을 얻으려고 하는 행위를 의미하는 비속어를 말한다. 시체 팔이의 유래는 나치 독일에게서 유래가 되었는데, 바이마르 공화국 시절 나치당에 호르스트 베셀이라고 독일에 있는 공산당원들을 잘 때려잡는 당원이 있었는데, 창녀와 자다가 공산당원의 습격을 받아 살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에 나치는 호르스트 베셀이 공산당원과 싸우다가 장렬하게 죽은 당원으로 미화하여 호르스트 베셀의 노래를 만들었으며 이는 나치 독일의 공식적인 군가가 되기도 했다.

좌파들이 시체팔이를 할 때 생명이나 안전을 내세우면서 마치 자기들은 생명이나 안전을 굉장히 소중히 여기고 중요시하는 것처럼 말하거나 위장하는데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

서해공무원 북한화형 사건이나 북한 귀순어부 판문점 북송 사건, 천안함 폭침 등에 대한 패잔병 취급 조롱 및 음모론 주장 등을 보면 알 수 있다.

좌파들은 미네르바에게도 자살을 권유하며, 열사를 만들어주겠다고 꼬셨으며, 전태일도 전태인 본인은 몸에 신라를 뿌리긴 했지만, 뒤에서 성냥을 그은 사람은 따로 있다. 하도 이런 열사 만들기 짓을 많이 해서 김지하는 이런 행태에 대해 죽음의 굿판을 걷어 치워라 라고 비판하고 전향했다.

애네는 죽음도 자기네 유리한 죽음 불리한 죽음을 가린다. 사람이 죽으면 도리어 좋아한다. 그리고 이걸 어떻게 이용할까 이 궁리만 한다. 이들은 인간은 측은지심과 같은 감정을 자기들의 집권이나 정치적으로 악용하는 자들이다.

문제는 이러한 시체찰이를 통해서 특별법이 만들어지고 거기에 어마무시한 사람들이 수혜를 입는다는 것이다. 국민세금으로.. 여기에는 당연히 시민단체가 하나둘씩 둘러 붙어 진실과 화해, 철저한 규명명을 축구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특별법 진상규명위원회가 가동되면서 수년간에 걸쳐서 심하면 1차, 2차, 3차, ,, [1] 위원들은 엄청난 세금을 받아 먹는 구조가 되었다.


시체팔이의 역사

1987년 이전

대한민국에서 시체팔이는 일제로부터 해방된 직후부터 사용되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해방 직후 대구폭동이 발생했을 때 대구 의대생 최무학 등 5명의 대학생들이 병원에서 콜레라로 죽은 사람들 사체 4구에 흰 시트를 덮은 다음 "이게 대구역에서 경찰에 맞아죽은 사람들"이라며 거짓 소문을 퍼뜨렸다. 그게 시내를 뒤집어놓았고, 폭동의 불길을 걷잡을 수 없이 키웠다. 광주 5.18때도 광주역에서 총에 맞고 난자된 상태로 발견된 김재화, 김만두의 시체를 시민군은 리어카에 실어 끌고 시내를 돌아다녔다. 이들의 시신에서는 나중 카빈총 탄환이 나왔기 때문에 계엄군의 소행이 아니었지만 이들은 계엄군의 소행으로 오도하여 선동하였다.

1987년 이후

87 민주화 체제를 이루면서 시체팔이는 더욱 교묘해지고 정치적인 성격을 갖게 되었다. 먼저 2002년 미군 장갑차에 치여 죽은 효순이 미선이 사건은 전국민을 반미주의로 몰아넣었고 북한도 이에 동조하여 명예 졸업장을 수여하는 등 정치적인 성향을 띄기 시작했다. 2014년 일어난 세월호 사건 역시 오늘날까지도 유가족들의 행패와 정치인들이 개입하여 박근혜 정부를 무너뜨리는데 일조했다. 이 외에도 백남기 농민이 불법 시위를 벌이다 물대포에 맞은 사건이며 노회찬이 뇌물을 받은 혐의로 자살한 사건은 민주주의를 파는 자들의 좋은 시체팔이로 제공되었다. 무엇보다도 최고의 시체팔이는 노무현이 있다. 노무현은 뇌물을 받은 혐의 때문에 봉하마을 부엉이바위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는데 노무현이 살아있었을 당시에는 욕을 하던 사람들이 노무현이 자살하면서 신격화하기에 이른다.


공산권에서의 시체팔이

공산권에서 유독 시체팔이가 많이 일어난다. 엠버밍이라 하여 시체의 간단한 화장에서부터 방부 처리, 또는 사고 등으로 훼손된 시신을 복원 처리하는 기술을 통해 시체을 대중에게 보이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으로 소련의 레닌, 북한의 김일성, 김정일, 그리고 베트남의 호치민 등이 있다. 보면 알겠지만 이 인물들의 태반은 바로 그 공산주의 국가의 국부와 그 후계자에 해당하는 인물들이다.



시체팔이 유형

유명인 시체팔이


일반인 시체팔이

여담

유신시대 저항시인이었던 김지하의 경우 "죽음의 굿판을 걷어치워라"는 일갈을 했으며 최근 김문수 자유한국당 의원의 경우도 세월호를 죽음의 굿판으로 일갈하였다.

인명피해가 발생하는 대형 사건에서 나중에 번호사를 자칭한 시민사회단체라는 꾼들이 접근한다. 그러면서 희생자 모임은 정치적인 집단으로 변화한다. 유족들의 아품을 촉구하며 진실규명을 요구한다.


각주

  1. 이미 세월호 진상규명위원회가 문재인정권내내 가동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