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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일천(梁一泉, ? ~ 1946.04.14)은 1930년대 [[동아일보]] 기자로 혜산진 지국장(惠山鎭支局長)을 지냈다. 1937년 6월 4일의 [[보천보 사건]] 당시 보도기사를 작성했다. 호는 하암(河菴)이다. 해방 후 천도교 청우당(天道敎靑友黨)<ref>[https://ko.wikipedia.org/wiki/%EC%B2%9C%EB%8F%84%EA%B5%90%EC%B2%AD%EC%9A%B0%EB%8B%B9 천도교 청우당] 위키백과</ref> 중앙위원을 지냈다.
양일천(梁一泉, ? ~ 1946.04.14)은 1930년대 [[동아일보]] 기자로 혜산진 지국장(惠山鎭支局長)을 지냈다. 1937년 6월 4일의 [[보천보 사건]] 당시 보도기사를 작성했다. 호는 하암(河菴)이다.<ref name="ja"/> 해방 후 천도교 청우당(天道敎靑友黨)<ref>[https://ko.wikipedia.org/wiki/%EC%B2%9C%EB%8F%84%EA%B5%90%EC%B2%AD%EC%9A%B0%EB%8B%B9 천도교 청우당] 위키백과</ref> 중앙위원을 지냈다.<ref name="dong"/>


==약력==
==약력==
* 1932년 2월 15일 동아일보 혜산진 지국장에 임명됨<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32021700209203027&editNo=1&printCount=1&publishDate=1932-02-17&officeId=00020&pageNo=3&printNo=4007&publishType=00020 惠山鎭支局을 變更: 梁一泉 任支局長, 支局長 鄭聲鍾 依願解職] 동아일보 1932-02-17  3면 10단</ref>
* 1932년 2월 15일 동아일보 혜산진 지국장에 임명됨<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32021700209203027&editNo=1&printCount=1&publishDate=1932-02-17&officeId=00020&pageNo=3&printNo=4007&publishType=00020 惠山鎭支局을 變更: 梁一泉 任支局長, 支局長 鄭聲鍾 依願解職] 동아일보 1932-02-17  3면 10단</ref>
* 1938년 3월 1일 동아일보 혜산진 지국장 의원해직(依願解職)<ref>[http://db.history.go.kr/item/imageViewer.do?levelId=npda_1938_04_15_w0004_0840 惠山鎭支局 : 朱東林 任支局長, 支局長 梁一泉 依願解職] 동아일보 1938-04-15 조간 4면 10단</ref>
* 1938년 3월 1일 동아일보 혜산진 지국장 의원해직(依願解職)<ref>[http://db.history.go.kr/item/imageViewer.do?levelId=npda_1938_04_15_w0004_0840 惠山鎭支局 : 朱東林 任支局長, 支局長 梁一泉 依願解職] 동아일보 1938-04-15 조간 4면 10단</ref>
* 1946년 4월 14일 오전 11시 서울 팔판정(八判洞)<ref>[https://news.joins.com/article/15875596 <nowiki>[맛있는 월요일]</nowiki> 오래된 도도함, 팔판동 골목] 중앙일보 2014.09.2 / [https://www.mk.co.kr/news/culture/view/2019/10/791329/ 팔판동 八判洞 - 오래된 역사의 도도함이 지키는 동네] - 매일경제 2019. 10. 2</ref> 128번지 자택에서 작고.<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46041600209201008&editNo=1&printCount=1&publishDate=1946-04-16&officeId=00020&pageNo=1&printNo=6950&publishType=00020 人事往來(인사왕래)] 1946.04.16 동아일보 1면</ref><ref>[http://db.history.go.kr/item/level.do?levelId=npfp_1946_04_16_v0002_0410 하암 양일천(河菴 梁一泉)씨] 자유신문 1946년 04월16일 2면 8단</ref>
* 1946년 4월 14일 오전 11시 서울 팔판정(八判洞)<ref>[https://news.joins.com/article/15875596 <nowiki>[맛있는 월요일]</nowiki> 오래된 도도함, 팔판동 골목] 중앙일보 2014.09.2 / [https://www.mk.co.kr/news/culture/view/2019/10/791329/ 팔판동 八判洞 - 오래된 역사의 도도함이 지키는 동네] - 매일경제 2019. 10. 2</ref> 128번지 자택에서 작고.<ref name="dong">[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46041600209201008&editNo=1&printCount=1&publishDate=1946-04-16&officeId=00020&pageNo=1&printNo=6950&publishType=00020 人事往來(인사왕래)] 1946.04.16 동아일보 1면</ref><ref name="ja">[http://db.history.go.kr/item/level.do?levelId=npfp_1946_04_16_v0002_0410 하암 양일천(河菴 梁一泉)씨] 자유신문 1946년 04월16일 2면 8단</ref>


==참고 자료==
==참고 자료==

2020년 10월 16일 (금) 09:28 판

양일천(梁一泉, ? ~ 1946.04.14)은 1930년대 동아일보 기자로 혜산진 지국장(惠山鎭支局長)을 지냈다. 1937년 6월 4일의 보천보 사건 당시 보도기사를 작성했다. 호는 하암(河菴)이다.[1] 해방 후 천도교 청우당(天道敎靑友黨)[2] 중앙위원을 지냈다.[3]

약력

  • 1932년 2월 15일 동아일보 혜산진 지국장에 임명됨[4]
  • 1938년 3월 1일 동아일보 혜산진 지국장 의원해직(依願解職)[5]
  • 1946년 4월 14일 오전 11시 서울 팔판정(八判洞)[6] 128번지 자택에서 작고.[3][1]

참고 자료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