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운형(呂運亨, 1886년 5월 25일 ~ 1947년 7월 19일)은 일제하 공산주의 운동가, 언론인이었고, 해방 후 좌파 노선을 택한 정치인이다.
여운형의 친소 좌파 노선
해방 후 그의 정치적 행보를 보면 남한에서 활동하면서도 미국보다는 소련에 더 가까운 행동을 보였고, 이승만, 김구보다는 김일성을 더 신뢰했다. 조선공산당 책임비서 박헌영과 앙숙의 관계였던 것만 제외하면 거의 공산주의자에 가까운 사람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미군정 사령관 하지 중장은 박헌영은 포기하고, 여운형을 소련 및 김일성과 분리시켜 김규식과의 좌우 합작을 추진했으나 여운형의 피살로 수포로 돌아갔다. [1]
- 여운형이 북쪽에 보내는 좌우합작 계획 1946.12.15.
- 소련 측에 온갖 제안을 하며 반탁을 빌미로 이승만과 김구의 제거까지 논의하고 있다. 여운형 본인도 처음에는 반탁을 주장해 놓고서는 소련의 지시를 받았는지 1946년 벽두부터 찬탁으로 돌아섰다.
- ↑ 金·呂 양씨에 서한, 하지중장 좌우합작에 기대 <자유신문> 8월 28일자
合作努力에 큰 關心 「하」將軍, 金, 呂兩氏에 親書[肖] <동아일보> 1946년 08월 28일 석간 01면
合作努力(합작노력)에큰關心(관심) 하將軍(장군)·金呂両氏(김려양씨)에親書(친서)[肖] " <동아일보> 1946년 08월 28일 석간 01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