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주의(Totalitarismo, totalitarianism)는 국가나 집단의 전체를 개인보다도 우위에 두고, 개인은 전체의 존립과 발전을 위한 수단으로 여기는 사상이며, 극우와 권위적 극좌의 정치 성향에서 공통분모로 나타나는 성향이다.

이들이 지배하는 사회는 독단주의가 발달되고, 회의주의가 부정된다. 전체주의는 야당을 금지하고 국가의 정책에 대한 개인의 반대를 제한하며 공공 및 사생활을 극도로 통제할 수 있는 정부 형태를 정의하는 정치 개념이다. 가장 극단적이고 완전한 형태의 권위주의라고 할 수 있다. 전체주의 국가의 정치 권력은 보통 한사람의 지도자의 통치, 국가가 통제하는 대중 매체를 통한 모든 선전 운동, 정치적 억압, 1인 숭배, 경제활동의 통제 및 언론의 제한, 대규모 감시와 광범위한 테러 등을 포함한다. 전체주의 국가는 공적 또는 사적 삶의 영역에서 권위에 대한 어떠한 제한도 허용하지 않는다. 전체주의 정권은 권위주의 정권과는 차이가 있다. 후자는 하나의 권력 보유자—한 사람의 "독재자", 위원회 또는 집단 또는 작은 규모의 정치 엘리트 집단—가 정치 권력을 독점하는 국가를 의미한다. 권위주의 국가는 정치 권력에 도전하지 않으면 사회에 일정한 자유를 부여한다. 권위주의는 “세계와 인간 본성을 변화시키려 하지 않는다." 반면에, 전체주의 정권은 경제, 교육, 예술, 과학, 사생활 및 시민의 도덕을 포함하여 사회 생활의 거의 모든 측면을 통제하려고 시도한다. 또한 정부의 목표를 추구하는 데 전 국민을 동원한다.


한나 아렌트

"조직되지 않고 구조화되지 않은 대중, 절망적이고 증오로 가득 찬 대중은 지도자들에게서 구원을 기대한다."


벤자멩 콩스탕은 “사회계약론은 모든 종류의 전체주의의 가장 끔찍한 보조자가 되었다”고 꼬집었다. 루소는 결코 전체주의 정권을 찬성하지 않았지만, 일반의지라는 이념이 많은 문제의 소지를 담고 있어 애초 취지와 다른 파장을 일으킨 것이다. - 신동아. [세상을 바꾼 책 이야기] 2013.07.19 / 647호 김학순. 장 자크 루소 사회계약론. 민주주의의 교과서인가 전체주의의 보조자인가.


피터 드러커 [경제인의 종말] 서문

우리시대의 문제들은 1920~30년대의 그것과 매우 다르고, 또한 우리들의 현실도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우리 시대의 문제들에 대해 대중들이 보인 반응들 중 일부는 불길하게도, 유럽을 히틀러 전체주의로 그리고 2차대전으로 몰고 간 '대중의 절망'을 반영하고 있다. 일부 집단들, 예컨데 인종차별주의자들 뿐만 아니라, 소위 좌파 '행동주의' 학생들의 일부는 그 행동이 놀라울 정도로 히틀러의 돌격대와 닮았다. 예를 들면, 어떤 사람에게 발언의 자유를 포함하여 어떤 권리도 허용하지 않거나, 인격 말살 운동을 벌이거나, 그리고 파괴와 야만적인 행동을 즐기거나 하는 것 등이 바로 그것이다. 그런 집단들이 사용하는 수사학을 보면, 히틀러의 연설과 가증스러울 정도로 닮았고, 마오쩌둥에서 부터 마르쿠제에 이르는 증오의 예언자들에게 공통적인 음산한 허무주의도 히틀러와 유사하다.

그들의 직계 조상은 1910~1930년 사이에 일어난 독일의 '청년운동'이다. 긴 머리에 기타를 치며 민속음악 등을 즐기는 것도 닮았다. 그리고 독일의 청년운동은 이상적인 '사회주의'로 출발했으나 히틀러에게 가장 광신적인 핵심 추종자들을 공급하는 것으로 끝났다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그런 집단들이 우익 혹은 좌익이든 간에, 30년전 전체주의자들과 마찬가지로, '아니요'라고 말하는 것이 적극적인 정책이라고 믿고 있으며, 동정심을 갖는 것을 약한 사람이나 할 짓으로 여기고 있고, 권력추구를 위해 이상주의를 조작하는 것을 '이상적'으로 생각한다. 그들은 우리의 가까운 과거로 부터 경험한 바로부터 하나의 커다란 교훈을 배우지 못했다. <증오가 절망에 대한 해답이 아니>라는 사실을 배우지 못했다는 말이다.

이 책을 나는 1933년, 그러니까 히틀러가 (1933년 1월30일) 독일의 권좌에 앉은지 몇 주뒤에 쓰기 시작했다. 이 책의 일부인 [나치 악마학에 있어 반유대주의가 차지하는 역할과 그것이 호소력을 지닌 이유에 관한 연구]는 1935년인지 1936년인지는 정확하지 않으나 오스트리아 가톨릭계 반나치 출판사에 의해 소책자로 출판되었다...


노명식 [자유주의의 역사]

제11장 20세기의 자유주의

자유주의자들을 몸서리치게한 것은 공격적이고 호전적인 이데올로기들의 주의, 주장들의 내용만 아니라 그 정신과 기질에 있었다. 즉 그 이데올로기들은 한결같이 전투적이고 자신에 넘쳐 자기들의 신념과 비전을 누구에게나 강요하려고 했는데, 그러한 자세와 정신은 자유주의자들의 비위에 전혀 맞지 않는 것이었다.

자유주의자의 눈에는 그러한 정신자세는 일찌기 계몽사상적 자유주의자가 싸워 승리를 거둔 바 있는 종교적 광신주의와 교조주의가 이제 아주 흉악한 세속적 형태로 다시 나타난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20세기의 이 세속적 광신주의는 18세기의 종교적 광신주의 보다 훨씬 더 위헙했다. 그 까닭은 자기들의 사상과 체제에 대한 지지를 강요하고 반대파들을 탄압하는 수단이 과학기술과 정치조직의 엄청난 발달에 의해 그 전보다 훨씬 더 효과적이 되었기 때문이다.

20세기는 버트란트 러셀의 말대로 "종교들의 전쟁 시대이고 그 종교는 이제 이데올로기라고 불리우는 종교이다."

자유주의자들은 그러한 종교가 역겨웠다. 자유주의자들도 제각기 자신의 의견이 있었다. 그러나 그 의견을 절대로 진리라고 우겨대지 않았다. 모든 진리는 과학적 실험에 따라 달라질 수있는 것이고 따라서 그것은 일정한 가설하에서만 진리일 뿐이었다. 자유주의자는 회의적 태도를 유지해야한다.

3. 냉전자유주의(2) 전체주의에 대한 분석

냉전이 열전으로 화한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에 열린 한 심포지엄에서 대체적으로 합의된 보고서에 의하면 현대 세계의 모든 전체주의 사회에 기본적으로 공통된 요소를 다음 5가지로 지적하고 있다.

1) 인간 존재의 모든면을 지배하는 어용 이데올로기
   이 이데올로기의 특성은 천년왕국적인 관점에서 인류전체의 최후의 완전한 사회를 강조하고 있다.
2) 거대한 일당 독재정치
3) 거의 완전한 무력독점
4) 거의 완전한 매스컴 독점
5) 비밀경찰에 의한 공포정치

여기에

6) 경제 전체의 중앙통제
7) 대중 동원 내지  대중 열광

좌익 전체주의의 본질을 파헤치려는 자유주의 학자들은 전체주의의 기원을 프랑스 혁명이래의 혁명적 자유주의에서 찾았다.

혁명적 사회주의 전통에는 일관해서 흐르는 중요한 전체주의적 요소가 하나 있는데 그것은 인류 역사의 마지막 단게에서 실현되는, 역사의 궁극적 목표인 천년왕국적 유토피아 사상이었다.

이 유토피아 사상이 전체주의로 하여금 사회의 개조뿐만 아니라 인간성 자체의 개조를 향해 전력을 기울이게 한다는 것이었다.

한나 아렌트는 전체주의가 거창하게 설계한 이 사상이 가져올 이 무서운 결과에 관해 "강제수용소는 인간성 변화를 실험하는 실험실"이라고 단언했다.

그러면 왜 좌익적 유토피아 사상이 그렇게 끔찍한 결과로 가게 마련일까? 유토피아 사상가들은 완전한 미래라는 사회적 비전에 집착하고 지나치게 열중하다 보니까, 현재의 개인들의 권리와 사람들의 고통에 무관심하게 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A.까뮈는 이를 두고 "한 사람의 희생이 전 인류의 구원에 공헌하는데 그까짓 개인들의 희생 따위가 무슨 상관이 있는가!"라며 마르크스를 빗대어 빈정대기도 했다.

자유주의 학자들 가운데는 좌익 전체주의의 세속적 유토피아 사상의 뿌리는 기독교의 천년왕국사상에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스도의 재림후 인류역사는 1,000년동안 에덴의 낙원과 같은 시대가 온다는 기독교 사관에 공산주의 유토피아 사상의 뿌리가 있다는 것이다. 마르크스 유물사관에 의하면 인류역사는 원시 공산사회에서 출발하여 노예제 사회, 봉건제 사회, 자본제 사회를 거쳐 일체의 사회적 모순도 계급투쟁도 없는 지상낙원의 사회주의 사회로 발전한다.

이 역사의 발전단계설은 마르크스가 헤겔에서 배운 것이고 헤겔은 아우구스티누스의 기독교 사관에서 배운 것이다.

좌익 유토피아 사상이 메시아주의적, 광신적 종교사상의 세속판이라면 그것은 자유주의의 합리주의와 관용정신에 전혀 맞지 않음은 말할 나위 없다. 공산주의에 대한 자유주의자들의 가장 유력한 비판은 그들의 유토피아 사상이 비과학적이라는 점인데, 비판의 두 기수는 칼 포퍼와 이사야 벌린이었다.

포퍼는 어떤 고상한 목표를 정해놓고 그 목표에 따라 사회 전체를 변경시키거나 재건하려는 시도를 <유토피아적 사회공학>이라고 부르면서, 그러한 시도는 목표달성에 필요한 모든 사실을 미리 다 알고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는데, 그런 전제야말로 무엇보다도 비과학적이라고 했다.

"사회실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시행착오에서 배운 과학적 지식을 현실의 사회에 적용시켜 나가는 것인데 유토피아적 사회공학은 과학의 그러한 기본 룰을 무시하는 것이다"

앞서 본 바와 같이 포퍼는 유토피아적 사회공학을 '홀리즘'이라고 했는데, 벌린은 이를 모니즘이라고 불렀다. 인간의 경험과 사회와 역사적 사실들은 한없이 다양하고 복잡해서 궁극적 진실은 누구도 미리 알 수 없는 것인데도 그 다양하고 복잡한 사실들은 하나의 체계나 하나의 사회질서에 통합하여 인간과 사회와 역사의 궁극적 본질을 하나의 체계로 설명할 수 있다는 단호한 태도가 '모니즘'이다.

벌린은 모니스트들은 사회적 진실을 사실 그대로 보지 못하는 오류로 말미암아 결국 정치를 생체해부로 만들고 사람들을 끔찍한 불구로 만드는 결과를 낳는다고 주장했다.